어떤 “목회자가 쓴 글을” 소개합니다. “큰 성공을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만 바라자! 큰 지위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만 바라자! 큰 교회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만 바라자! 큰 부요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만 바라자. 큰 명성을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만 바라자!” 짧지만 “현대 기독교인이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는지 그 속내를 잘 알 수 있는 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막연한 것, 이유 없는 강요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례로 “설명도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데, 무조건 따라오라면, 사람의 마음은 닫히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일을 해야 할 이유, 믿어야 할 이유를 정확히 체득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열정적으로 따라갈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가 원하는 성공과 지위, 큰 교회와 부유함, 명성은 모두 다 예수 안에”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예수 위에 세워진 모든 것은 든든하지만, 예수 없이 세워진 모든 것은 모래 위의 집처럼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따를 이유를 찾았을 때, 내 삶이 바뀌고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욕을 당하자, 야곱의 아들들은 히위 족속에게 할례를 요구하며 복수를 계획”합니다. 그리고 “사흘 후, 야곱의 아들들은 히위 족속의 모든 남성을 죽이고, 짐승과 재물을 다 빼앗았고, 이를 들은 야곱은 주변 다른 족속의 보복을 생각하며,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따라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야곱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하나님을 따를 이유를 명확하게 체득하고, 받은 말씀대로 순종하여 위기를” 이겨냈습니다. 팬더믹은 “주님만 따라 살아야 할 우리 삶을 흐릿하고 복잡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따르지 말아야 할 대상을 따라가게까지”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팬더믹이 하루속히 끝나길 원하지만, 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없기에, 막막함과 답답함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은혜는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지, 왜 따라가야 하는지,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 이 질문의 답을 찾음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당분간 “Follow Me! 성경의 영적 거장들이 어떻게 주님을 따라 살아갔는지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야곱이 하나님을 따른 이유를 통해, 우리가 왜 주님을 따라서 살아가야 할지!” 살펴봅시다.

1. 하나님만 따르며 살아갈 때,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면 고을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에서를 피해 하나님을 만났던 곳,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합니다. 당시 “야곱 가족은 생명과 전 재산을 지키려고, 모두 이방 신상을 버리고, 의복을 바꾸고 정결하게 한 후 벧엘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따른 결과, 하나님은 사면 고을을 다 두렵게 하셨고, 야곱 가족을 철저히” 보호했습니다. 여기서 “야곱 가족이 장식품을 제거하고 의복을 바꿔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야곱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기에, 하나님께서 그 식솔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다!”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 삶도 야곱처럼, 내가 아닌 가족이나 지인 중 누군가로 인하여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때로 “생각지 않은 자연재해와 팬더믹처럼, 내 의지와 무관한 고난에 빠져서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지금 우리의 경험처럼,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더 꼬이고 복잡해져” 갑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물질과 건강, 두려움과 위축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는 참으로 버겁고 힘들지만, 하나님께는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참 해결자임을 확신한다면, 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따라가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게! 이것은 안 되고, 저것은 되고!’ 자기주장을 펴지 않고, 하나님께 모두다” 맡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많은 문제로 힘들어하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면 “덜 힘들어서, 하나님께 맡겨서 문제가 해결된 체험이 없어서 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교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언더우드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남긴 기도문이” 있습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는 땅에 저희를 옮기셨습니다. 지금은 조선의 마음과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고 어두움만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 눈이 볼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언더우드가 “조선에 도착한 후, 모든 것이 생소하고, 생각지 않은 문제가 이어질 때마다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어쩌면 “언더우드는 훗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맺어질 열매를 전혀 꿈꾸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가 모든 문제, 아픔과 눈물에도 순종하며 하나님께 맡겼을 때, 길이 열렸고 풍성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힘들고 아플 때,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반면에 “할 수 없고 잘 모르면서, 자신 없으면서 혼자 해 보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은 불 신앙”입니다. 맡기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고, 그 은혜를 따라갈 때, 문제를 해결 받는 간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문제로 아파하는지, 내가 해결하려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께 맡기는지!” 확인합시다. 행전 12장에서 “야고보가 죽은 후,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유대인을 기쁘게 하려고 베드로도 죽이려” 합니다.

당시 “베드로는 내일이면 죽을 상황인데,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울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베드로가 “둔하고 생각이 없고, 피곤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다 맡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 전부를 맡겼을 때, 천사가 초자연적 방법으로 베드로를” 구했습니다. 당시 “베드로를 살리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불 신앙이자 영적인 무기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맡기되, 대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실 것을 확신하며 맡겨야!” 합니다. 내가 “해결하려 하면 길이 막히지만, 맡기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인데 “더 깊은 기도와 말씀으로, 팬더믹으로 인한 문제, 이민자로 겪는 나만의 문제, 모두를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받을 은혜를 온전히 체험하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하나님을 따르며 살아갈 때, 내 인생이 선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 “가족 모두는 세겜에서 일군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벧엘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는 중 “야곱의 가족은 이방 신상을 버려야 했고, 의복을 바꿔 입어야 했고, 귀걸이와 모든 장식품도 다 내려놔야!” 했습니다. 성경은 “야곱 가족 중에도 이방 신상을 가진 영혼이 있었고, 세겜에서 이방 민족을 따라 살면서 속사람이 아닌 겉 사람을 치장하며 살았음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 안팎을 모두 다 바꿔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가족이 겉을 바꾼 것은 앞으로 그 속사람이 하나님만 따르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비록 “타력으로 이렇게 되었지만, 야곱의 가족은 하나님을 따름으로 인해 안팎이 모두 선하게 바뀌어” 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안전과 건강을 원하며, 더 많은 복과 풍성함을 누리며 더, 잘 되려고 교회로” 나옵니다. 문제는 “자신은 안 바꾸면서, 환경과 상황, 밖이 바뀌길 원하며 주님을 따르기에, 그 신앙이 매일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과 내 생각을 따라서 살면, 바뀌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고, 문제 해결보다 문제 확대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 신앙, 내 속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내 속 사람이 바뀌어서, 신실함으로 주님만, 주님부터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언행이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나 하나 바뀌어서 무슨 큰일이 있겠나!’ 생각하며, 나 하나가 바뀌는 것을 과소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대로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르려면, 나부터 내 속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비록 “나 하나 바뀌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어도, 나 한 명이 바뀌는 것이 내 미래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테말라 “알로몽 지역은 산으로 뒤덮인 척박한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1970년대까지 “알로몽은 우상숭배와 알코올 중독, 폭력과 성적 타락이 가득한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였던 마리아노가 ‘내가 너를 선택하였다!’ 하나님 음성을 듣고 회심하여, 신실한 목회자로” 바뀌었습니다. 놀랍게도 “마리아노 한 사람의 변화가 알로몽 주민의 속사람과 삶의 방식까지 바꾸어” 갔습니다. 과거 “매달 6 트럭 분의 농작물이 생산되었는데, 사람들의 안팎이 바뀌면서, 하루 평균 50 트럭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범죄율이 급감하고 가정이 회복되고, 토지까지 비옥하게 바뀌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땅이”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변화되어 주님을 따르는 것은 갑자기 한꺼번에 한날한시에 일어나지 않고, 한 명이 바뀌면서” 시작됩니다. 목사로서 “말씀 한번을 전하면, 모두 다 회개하고 변화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일부 몇 명의 변화를 통해 가정과 교회, 지역이 서서히 바뀌어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변화되지 않는 다수와 안팎이 바뀌는 소수 중 어디에 서야!” 할까요? 나의 “속사람의 변화는 인간적 결단과 각오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 “공생애 때, 사도들은 서로 크다고, 서로 크려고 다투며 너무도 무기력”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체험 후, 사도들의 겉과 속사람이 바뀌어서 세상 것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아갔고, 기도와 말씀으로 각자가 철저하게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게 “바뀌어서 주님을 따랐기에, 사도들 개개인과 교회, 지역과 세계,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사순절 특새가 반환점을 도는데, 지금부터라도, 우리 각자가 더더욱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꾸준히 “말씀 앞에 섰던 영혼은 계속 이를 지켜야 하고, 그렇지 못했던 영혼은 다시 말씀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삶이 복잡해서 말씀이 잘 안 들렸어도, 기도하는 심정으로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정말 “이번에는 내가 바뀌어서 팬더믹과 삶의 어려움을 이기겠다는 각오로 내 겉 사람과 속사람을 바꿔가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나를 주관하고, 내 겉과 속이 바뀌면서, 그동안 못 보고, 못 듣던 것을 체험하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바뀌어 주님을 따른다면, 내 삶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사순절인데 “한주도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여 나부터 온전히 바뀌어서 주님을 따르며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