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 “네팔인이 경기도 용인의 모 사찰에서 네팔의 불교를 알리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유는 “네팔인이 한국 불교 신자에게 부처의 고향이 어딘지 물었는데, 너무 충격적인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응답자 중 “7%만 부처의 고향이 네팔 룸비니임을 알았고, 무려 85%가 인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네팔인은 한국 불교 신자에 대한 섭섭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외국인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 하면 한국의 감정이 어떨까요?”

그렇다면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면서 예수에 관해 무지한 채 교회 마당만 밟는다면, 하나님 마음이” 어떨까요? 요 17:3절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말씀합니다. 신실한 “신앙생활은 예수가 누군지 알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를 들어서 익숙한 분, 나를 사랑하는 분으로 어렴풋이 알 뿐, 체험적 신앙이 아니고, 심지어 예수를 바로 알려는 사모함도 없기에, 영적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자, 많은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원컨대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이고,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외적으로는 “무리가 주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치며 따랐지만, 내적으로 이들은 예수가 누군지 잘” 몰랐습니다. 마침내 “예수를 모르고 따르던 무리가 불과 5일 만에, 주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기독교인은 “생각지 않은 고난을 만나면, 더욱 하나님을 찾거나, 아니면 아예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합니다. 생각할수록 “두 모습 다 이해할 수 있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을 더 기뻐하실지, 팬더믹 이후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을 더 지혜롭다 칭찬하실까? 깊이 자문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호 6:3절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말씀합니다. 부족해도 “우리가 알려고 하면, 충분히 예수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악할수록, 기독교인은 더더욱 예수를 깊이 알아가며,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종려 주일인데 “우리가 예수를 바르게 알고 따라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예수를 알고 따라가려면, 간접적 신앙이 아니라, 내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이 길에 겉옷을 벗어서 편 것은 주님을 왕으로 환영하는 표시”였습니다. 특히 “종려나무는 승리와 기쁨을 뜻하는데, 주로 승전 후 개선할 때, 왕을 영접할 때 많이” 썼습니다. 비록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고백했지만, 이는 지금 주님께 구원받기 위해, 주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며 환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이 행한 모습을 따라 했거나, 어쩌면 군중심리에 빠져서 이처럼 행동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만일 “이들이 예수를 바로 알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믿고 따랐다면, 어떻게 5일 만에 주님을 배반할 수” 있겠어요? 구원은 “공동체가 한꺼번에 체험하기보다, 개별적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며 체험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겉으로 보이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을 직접 인격적으로 체험한 영혼만이 누릴 수 있는 영적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흉내 내고, 기분과 감정으로 인한 변덕스러움은 절대로 체험적 신앙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 입술로 예수 없이는 죽을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영접한 신앙으로 주님을 따를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현대 “교회의 비극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직접 만나지 못한 영혼이 점점 늘어가는 것”입니다. 더 “큰 비극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영혼이 교회에 미치는 입김이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아달랴가 “다윗의 후손을 다 죽일 때, 여호세바가 다윗의 자손 요아스만 겨우” 살렸습니다.

그렇게 “무려 7년을 숨겨서 양육했고, 마침내 제사장 여호야다가 숨어있던 7살의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훗날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하며 선행도 있었지만, 특별히 왕하 1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의 신앙이 변했다는 증언”입니다. 실제로 “요아스는 여호야다 사후! 우상숭배에 깊이” 빠졌습니다.

심지어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무참히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신앙에 편승한 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신앙, 자기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가정을 보면 부부가 신실한 가정도 있고, 배우자 중 한 분만 신실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배우자 중 한 명이 잘 믿고, 부모와 자녀 중 한쪽만 잘 믿어서가 아니라, 각자가 예수를 직접 만나서 믿음으로 따라가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무엇인가를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이 어떤 농부의 집 이불장에 숨었는데, 러시아 수색대가 집마다 칼로 이불을 찌르며 세밀하게 수색”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나폴레옹이 농부에게 감사를 표하자, 농부가 짓궂게” 물었습니다. “폐하! 적병이 칼로 이불을 찌를 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러자 “나폴레옹이 정색하며, 부하에게 ‘이놈을 총살하라!'” 소리쳤습니다.

다음날 “농부를 총살하려는데, 갑자기 황제의 근위병이 멈추라고” 소리쳤습니다. 당시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 생각한 농부는, 나폴레옹이 전해 준 쪽지를 보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불장에 있을 때 내 기분을 이제 알겠나?” 우리가 “설교를 듣고 아멘! 화답하고, 주변 동역자와 함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예수를 내 구주로 고백하는 체험적 신앙, 인격적 신앙이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보고 “들어서 아는 신앙, 익숙한 신앙과 내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체험적 신앙이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내 신앙은 무리처럼 군중심리로 따라가는지, 아니면 예수를 체험적으로 알고 따라가는 신앙인지, 깊이 자문해야!” 합니다. 구원은 “군중심리로 쫓아다니는 신앙이 아니라 체험적 신앙을 통해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해도 “직접 주님을 만나고 따르는 신앙은 복음과 같은 길을 걸어가지만, 간접적 신앙은 곁길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간접적이고 형식적 신앙은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큰 상처와 후회로 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데, 한 주간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십자가가 내 이야기, 내 고백이 되는 은혜가 있기” 원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을 직접 체험하므로, 어떤 고난과 어려움에도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기” 원합니다.

2. 예수를 알고 따라가려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당시 “많은 무리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소리치며 열렬히 주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환영과 열정은, 불과 5일 후, ‘십자가에 못 박아라!’로 돌변”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을 환영했던 무리와 주님을 십자가로 몰아간 무리가 얼마나 겹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따랐기에, 그들은 쉽게 변질되었고, 성경에 오명을 남겼던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주님을 환영했는가? 얼마나 많은 무리가 주님께 환호했는가? 이보다 얼마나 그 믿음과 뜨거운 환영을 유지하고 지켰는가?”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로 알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한결같이 주님을 따라가야 영적 체험이 깊어지고, 말씀을 통해 받는 은혜도 더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알아가다가 멈추고, 상황에 따라 Up-Down이 너무도” 심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과 생각이 흔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 믿음만은 한결같아야 하나님 채우는 힘을 공급받고, 예수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주님은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는데, 내가 주님을 한결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민 갔지만, 몇 년 후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습니다. 남은 것은 “이방인 며느리 룻과 오르바였는데, 오르바는 동족에게 돌아가고, 룻만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룻이 “베들레헴에 올 때, 생활고, 이방인으로 당할 차별, 문화와 언어 장벽, 많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많은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끝까지 하나님과 어머니를” 붙좇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룻의 한결같음을 보시고,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얻게 하시고, 마침내 메시아의 족보에 그 이름을 올려” 주셨습니다. 당시 “룻은 어떤 특출한 능력이 없었지만, 다만 한결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갔던 것”입니다.

인생은 “항상 Up-Down이 반복되어, 뜻대로 안 될 때, 시험과 상처로 넘어질 때, 원치 않는 질병으로 아플 때, 너무 힘들어서 믿음의 뿌리마저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승리는 흔들림이 작은 신앙, 한결같은 신앙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삶의 어려움이 극심해도, 한결같으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열어” 주십니다.

최근 “교도통신은 이집트 룩소르 버스터미널에서 구두닦이로 살아가는 시사란 70세 여인의 삶을 세계에” 소개했습니다. 시사는 “결혼 후 3년 만에 남편이 심장병으로 죽고, 어린 딸을 키워야 하는데, 사회 정서상 여성이 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 이집트의 가정 폭력이 만연해서, 어린 딸의 학대를 염려하여 재혼도” 포기했습니다. 당시 “여성의 사회 활동이 금기시되었지만, 시사는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사는 생존을 위해 남장을 하고,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벽돌 굽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공사 현장에서 여성임이 밝혀졌지만, 동료들이 눈감아 주어서 어렸던 딸을 결혼까지 시킨 후에도, 시사는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중에도, 시사가 한결같이 자기 일자리를 지킨 지금, 이집트의 문화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난 “2015년, 이집트 정부가 시사를 ‘일하는 여성 대표’로 선정하여 시상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여성 인권이 바닥을 치던 상황,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체제에서, 시사가 한결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시사가 “한결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중, 얼마나 외롭고, 마음 졸이며” 살았을까요? 그런데 “오늘 우리 인생도 시사처럼 아픔과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주인으로, 내 부모로, 내 친구로 나와 함께하시기에, 더더욱 내 믿음을 한결같이 지키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팬더믹으로 “인한 시험과 상처가 크지만, 세상이 악하고 힘들어도,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구원받아야 하기에, 내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한결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내 인생이 시험과 상처로 넘어져 아파하기보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체험적으로 알고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종려 주일이고 “이제 고난주간인데, 십자가를 묵상하는 특별 집회를 통해 내가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더 신실하게 따라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