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산맥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에게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날마다 “해 질 무렵, 산 위에 있는 목동이 산밑을 향해” 외칩니다. “주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그 이름을 찬양합시다.” 그러면 “산 아래 있던 목동들이 같이 화답하며 하산을 시작”합니다. 목동들은 “매번 폭우와 폭설, 맹수의 공격 등 생각지 않은 위험이 많지만, 언제나 ‘주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고백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짧지만, ‘주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보호와 함께하심에 대한 깊은 감사의 고백”입니다. 2021년 “올해는 그 이전보다 팬더믹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을 소망하며, ‘견고한 반석 위를 걸어서’라는 표어로 시작했는데, 벌써 2021년도 마지막 주 송년 주일을”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송년 주일인 오늘, 여러분의 삶과 입술에는 감사와 한탄 중 무엇이 더” 많으세요? 과연 “하나님은 우리 입술에 어떤 고백이 더 많기를” 원하실까요?

미스바 “성회 전, 블레셋은 선민을 공격하며 너무도 힘들게” 했습니다. 선민은 “전쟁에서 두 제사장과 언약궤까지 빼앗길 정도로 연전연패”했습니다. 게다가 “미스바 성회 때, 블레셋이 갑자기 침공했지만, 은혜로 크게 승리”했습니다. 당시 “선민은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었지만, 하나님 은혜로 철제 무기로 무장했던 블레셋을 이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과 선민은 그 하나님 은혜에 감격하며, 미스바와 센 사이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웠습니다.

야곱은 “창 47:9절에서, 바로에게 자신의 인생 130년이 참으로 험악한 세월이었다.”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해 동안,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는데, 우리 삶과 교회에 여기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 은혜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기에, 내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살펴봅시다.

1. 우리가 항상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십계명의 “둘째 계명은 그 어떤 형상의 제작도 금했지만, 사무엘은 블레셋과 싸워 이긴 후, 미스바와 센 사이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웠습니다. 당시 “이 돌은 우상숭배를 위함이 아니라, 연약한 선민을 도우신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세워졌습니다. 만일 “선민이 블레셋 전쟁의 승리에만 집착했다면, 감사 예배만 드리고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벤에셀의 돌을 세움은 그만큼 하나님 은혜를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하나님 은혜로 블레셋을 이겨냈음을 후손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선민은 하나님 은혜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언제나 도우시는 하나님 은혜 안에서 살아가기” 원했습니다. 올해는 “참으로 다사다난했고, 특히 저를 비롯하여 총 16분이 가족과 이별했고, 팬더믹 중 교회 생활과 일상생활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저는 주일예배와 새벽예배를 지키고, 매주 칼럼을 쓸 수 있었음이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새로운 “성도들을 만나고, 건강하게 사역할 수 있었고, 새로운 임직자가 세워졌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물론 “2021년이 여전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도움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문제는 그 은혜를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했지만, 마치 안 받은 것처럼, 받은 은혜가 전부 사라진 것처럼, 망각하고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건망증이 “심한 남성이 택시를 탔는데, 갑자기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사분에게, ‘제가 어디로 가자고 했지요?’ 묻자, 기사분이 깜짝 놀라며” 답했습니다. “어! 손님 언제 타셨어요?” 문제는 “나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은혜를 모르는 영적 건망증 증세가 너무도” 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실족하지 않고 살 수” 않습니다.

제가 “LA에서 목회할 때, 존경하는 장로님 한 분이 치매로 기억을 잃어갔는데, 나중에는 따님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막내 따님이 “아버지를 방문했는데, 장로님이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로 ‘누구세요?’ 말씀하자, 그 딸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장로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순간까지 잊지 않고 기억했던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새한 교회 장로입니다. 그리고 새한 교회 전화번호는! 예수를 믿으세요!”

제가 “그 모습을 보고 목이 메었고, 장로님 사연이 교회에 알려지면서, 많은 성도의 기도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 어떤 경우에도 제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않고 천국 가게 도와주세요!” 우리가 “하나님 은혜와 도우심을 잊어버리면, 과거를 잃어버리는 것이고, 사실은 현재와 미래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삶의 의미와 가치, 방향성마저 다 잃어버리는 것이기에, 언제나 하나님 은혜와 도우심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신 32:7절에서, 사랑하는 선민에게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어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기억하려면 먼저 옛날을 기억하라! 과거에 받은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또한 “연대를 생각하라, 받은 은혜를 계수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도전”입니다. 끝으로 “후손에게 이르라! 이는 주변 모두에게 은혜를 공개적으로 말하며 전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깊이 생각하며, 주변 사람에게 전하고 가르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까지도 “팬더믹의 아픔과 어려움이 여전히 이어졌지만,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상처와 아픔보다 하나님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2021년 “송년 주일인데, 올해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는 삶과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하는 삶 중에서 무엇을 택할지, 이는 내 몫”입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은혜를 돌에 새기고, 원한은 흐르는 물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를 반대로 적용하여, 부정적인 것만 마음에 새겨서 밝은 미래를 스스로 막으며” 살아갑니다. 올해 “남은 시간에 받은 은혜와 도움을 깊이 기억하며, 더 나은 2022년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2. 우리가 도우신 은혜를 기억하고, 미래에도 계속 이어가며 헌신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이스라엘 전역을 돌며 사역과 헌신을” 이어갔습니다. 본문 16절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말씀합니다. 사무엘은 “에벤에셀의 은혜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해마다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서, 주님의 백성을 돌보며 받은 은혜와 도우심을” 이어갔습니다. 과거 “엘리가 실로에 머문 것과 다르게, 계속 에벤에셀의 은혜를 전하며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의 계속 이어지는 헌신을 통해, 이스라엘은 상처를 이기고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상급은, 은혜를 받은 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문제는 “은혜를 받고 헌신을 멈추면, 받은 은혜마저 놓칠 수 있지만, 반면에 받은 은혜로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이어가면, 그 열매는 계속 커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은혜를 받았지만, 내 상황과 처지에 따라 헌신을 이어가고 끊고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기독교인은 하나님 주신 도움과 은혜를 계속 이어가며” 헌신합니다. 갈렙은 “85세에도 여전히 강건하여 전쟁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갈렙은 수 14:12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고백했습니다. 갈렙은 “무려 45년간, 선민의 타락과 범죄, 하나님과 모세를 배척하는 악행을 모두 보았지만, 그래도 영육간의 건강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85세까지 사역을 계속 이어갔던 것”입니다.

2021년 “올해도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참으로” 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받은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고, 그 은혜를 얼마나 이어가고” 있으세요? 오늘 “우리는 은혜를 이어가야 함을 알지만, 부담스러운 수고를 싫어하고, 항상 쉽게 가기 원하고, 복잡한 일에 연루되지 않기를 원하는 소극적 사고가 더” 많습니다. 당연히 “받은 은혜가 이어지기보다 끊어져서 나도 모르게 영적 정체에 빠졌는데, 이마저 모르고” 살아갑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팬더믹 중에도, 올해 한 소망 교회에 채우신 은혜가 참으로” 컸습니다. 7월 “예배 재개 후 16가정이 등록하며 교육부가 매주 성장했고, 어려운 중에도 지역 사회와 교회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부터 우리 각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나갈 것인가에” 있습니다. 어려워도 “받은 은혜를 이어가며 헌신하면 미래가 더 나아지겠지만, 핑계와 변명으로 외면하면 모두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받은 은혜를 계속 이어가며 주를 위해 더욱 선한 싸움을 싸우며 헌신할 때”입니다. 만일 “나부터 받은 은혜를 이어가지 못하면서, 교회가 잘 되기를 원한다면, 이는 너무도 무책임한 모습”입니다. 2022년 “교회가 팬더믹을 극복하고 참 교회답게 성장하려면, 나부터 하나님 주신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하고, 더욱 헌신하는 태도를 이어가야!” 합니다. 19세기 “청나라에서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정부군은 매번 반란군에게 패배”했습니다.

여러 “장수가 출정했지만 연전연패해서 전세가 불리해졌을 때, 증국번이 정부군 장수로 출정했지만, 반란군에게 또 패한 후, 황제에게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연패연전! 비록 전쟁에서 또 졌지만, 그래도 이길 때까지 계속 싸우겠습니다.” 황제는 “증국번의 글에 감동이 되어 지원군과 물자를 계속 보냈고,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최근 “우리는 계속 이어지는 변종 바이러스에 연전연패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바이러스와 믿음으로 싸우기보다 지레 겁부터 먹고, 움츠러들고, 계속 싸우기보다 먼저 중도 포기를 하는 소극적 태도”입니다. 물론 “현실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고, 언제 이 어려움이 끝날지, 앞으로 2022년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전연패로 끝나기보다, 오히려 연패연전! 어렵고 힘들어도 영적 싸움과 헌신을 이어가야!” 합니다. 힘들어도 “지금은 사무엘처럼 하나님 은혜와 도우심을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중에도 사역과 헌신을 이어갈 때, 하나님 주시는 지혜와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포기가 너무 빠르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는 고집이” 많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할 수 있어! 계속 헌신해!’ 말씀하지만, 마귀는 ‘여기까지! 그만해!'” 속삭입니다. 다가오는 “2022년, 믿음과 헌신을 이어가려면 누구의 음성을 들어야!” 할까요? 송년 주일 “우리가 받은 은혜와 도우심을 계속 이어가며 밝은 2022년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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