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계는 코로나-19의 주요 변종 바이러스로 영국발 알파형, 남아공발 베타형, 브라질발 감마형, 인도발 델타형이 있다!” 발표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발견된 기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입실론, 이오타, 세타, 제타, 카파, 람다, 뮤형 등이고, 주요 변종 바이러스까지 합하면, 무려 11종이나” 됩니다. 최근 “미국 내 코로나 사망자가 매일 2000명을 넘고 있는데, 무려 99.7%가 델타 변이여서, 학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코로나-19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독감처럼 풍토병으로 세계 곳곳에 남을 것이다!” 기사를 보며 “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마치 사탄, 악과 같다!”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마귀의 미혹과 악행은 천지 창조부터 주의 재림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악이 집요하게 이어지는데, 인간은 너무 연약해서, 악을 두려워하고, 다양한 변명과 핑계로 악을 피하고, 대적해 보지도 않고 포기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약 4:7절은,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말씀합니다. 지혜로운 “신앙인은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의 특성을 똑바로 알고, 언제나 하나님 말씀 붙잡고 이어지는 악을” 이겨냅니다. 느 6장은 “성벽 재건 공사 막바지에, 대적자의 공격과 방해, 협박이 참으로 집요했다.” 말씀합니다.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계속 만나자고 미혹했고, 봉하지 않은 편지를 발송하여 느헤미야의 반역을 고발하려”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선민의 유지들과 선지자들까지도 뇌물을 받고 악행에 합세”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와 선민은 성벽 재건 공사는 물론 집요하게 이어지는 대적의 미혹과 공격에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52일 만에 모든 공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을 이겨낸 결과”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집요하게 악이 이어진다고, 모두 다 악함에 위축되어 실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을 이겨내고 더 크게 쓰임 받는 영혼도 주변에 참으로” 많습니다. 지금도 “집요한 악의 공격이 이어지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보다 더 강하고, 독생자의 사랑, 십자가 보혈로 우리가 악을 이겨내도록 돕고 함께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집요한 악이 이어져도, 우리가 이를 어떻게 이겨낼지!” 살펴봅시다.
1. 악이 집요하게 이어질수록, 우리가 악한 일에 쓰임 받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4절은 “대적자의 이름을 도비야, 산발랏, 여 선지자 노야다, 그 남은 선지자들로” 말씀합니다. 선지자! “한네이빔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세운 종이란 뜻이지만, 본문의 선지자는 이처럼 선하게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선지자로 “거룩하게 부름을 받았지만, 주변 사람을 세우고 살리기보다 뇌물을 받고 거짓을 일삼았고, 느헤미야를 비방하며 협박했고, 선민이 범죄 하도록 미혹하는 등, 하나님 일에 계속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선지자란 이름에 맞지 않게, 오히려 악한 일에 더 크게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일을 오래 감당해서 익숙해지면, 자신이 선하게 쓰이는지, 악하게 쓰이는지, 유익한지 무익한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점점” 둔해집니다. 안타깝게도 “심중에 ‘나는 참 잘해! 선해! 열심히 하고 있어!’ 스스로 자기 체면에 빠져서 살아가기에, 마침내 자기도 모르게, 원하지 않으면서, 선함보다 악한 역할로 쓰임 받을 때가 점점 더 많아져” 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지금까지 생명을 주신 이유는, 부족해도 항상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 주변 사람을 살리고 세워가는 선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교회 중직자로, 부모와 자녀로, 다양한 역할을 주신 목적 역시, 선한 역할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소나기란 단어의 삼행시를” 아십니까? “소-소방차가 불난 집 불을 끈다. 나-나는 신나게 구경을 했다. 기-기절했다. 우리 집이었다.”
지혜로운 “영혼은 지금 누구 집이 불타고 있는지, 내 주변의 문제가 무엇인지, 지금 내가 가정과 교회에서 선한 역할을 감당하는지, 아니면 악역, 걸림돌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며” 살아갑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 세상의 인간을 세 가지 곤충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첫째, “거미형 인간으로, 평소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남을 힘들게 해서, 베이컨은 이를 이기적인 사람, 있어서 안 될 사람으로” 평했습니다.
둘째 “개미형 인간, 부지런하지만 끼리끼리만 잘 뭉쳐서, 세상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사람, 개인주의적 인간으로” 말했습니다. 셋째 “꿀벌 형 인간, 함께 열심히 꿀을 만들어 자신과 모두에게 유익을 주기에, 꼭 필요한 사람, 이타주의적 사람으로” 평했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해야 할지, 어떤 유형에 속해서 살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악역이 아니라, 선하게 쓰임을 받으려면,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거짓 선지자는 거짓과 악에 익숙해져 있었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었기에, 성벽 재건 공사의 중요성을 몰랐고, 하나님의 종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끊임없이” 대적했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었기에, 정말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만 찾아서, 집요하게 악행을” 이어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악한 역할로 쓰임 받으며 힘들어” 합니다.
문제는 “스스로 괴로워하면서도,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악한 역할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게다가 “영적으로 잠들어서 기도와 말씀에서 멀어지면, 나는 나도 모르게 영적인 미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쓰임 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세상의 상식보다 훨씬 우월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선하게 쓰임 받으면, 집요한 악이 이어져도 굳건한 믿음으로 사람은 물론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론과 “모세는 출애굽을 위한 거룩한 사명을 함께”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명은 선민을 넘어지게 하는 일에 쓰였고, 한 명은 선민을 세우는 데” 쓰였습니다. 차이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고, 깨어 있음에”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던 모세는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을 끊었지만, 영적으로 잠들었던 아론은, 끊어진 애굽의 악을 선민과 다시 이어” 주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안에 모세처럼 영적으로 깨어 있기보다, 아론처럼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영혼이 더 많아지기에,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가고, 기독교인이 십자가 복음과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최근 “팬더믹이 심각하고, 세상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가기에, 우리는 더욱 영적으로 깨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선악을 구분하고, 어떤 경우에도 악하게 쓰임 받지 않고 오히려 악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 되려면, 세상에서 집요한 악이 이어져도, 선하게 쓰임 받는 영혼이 많아져야!” 합니다. 한주도 “우리와 한소망 교회가 영적으로 깨어서, 악한 세상에서 선하게 쓰임 받기” 원합니다.
2. 악이 집요하게 이어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 강함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집요한 “악이 이어졌지만, 본문 16절은 52일 만에 끝난 성벽 공사의 결과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이 듣고 두려워할 정도로, 대적이 낙담할 정도로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악이 “집요하게 이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기필코 승리하도록 이끄셨음을” 말씀합니다.
오늘도 “영적 전쟁은 물론 모든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기에, 우리는 지금 내가 싸우는 싸움이 하나님 뜻에 맞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만일 “내가 내 고집과 이익, 자존심을 위해 싸운다면, 하나님 주시는 승리는” 없습니다. 힘들어도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싸우며 살아가야,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나를 이기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보다 하나님이 더 강함을 알지만, 문제는 이를 머리로만 알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이 이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에 너무 쉽게 포기하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부족해도, 내가 하나님 편에 서면, 우리는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닌 줄 알면서,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보다, 하나님이 이번 한 번만 내 편에 서주길 원하는 불 신앙에 빠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 서고, 항상 하나님이 승리 주심을 믿는 영혼을 통해” 일하십니다.
1866-09-02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가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당시 “토마스 선교사는 복음의 볼모지 한국에 성경을 배포하겠다는 비전으로 왔지만, 안타깝게도, 제너럴서면 호에서 하선하자마자 박 춘권의 칼에 죽으면서, 한국 땅에 몇 권의 성경을 남겼는데, 이 성경들이 놀라운 이적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토마스가 “죽으며 남긴 성경 한 권이 선교사를 죽였던 박 춘권을 훗날 안주 교회의 영수로 인도”하였습니다.
다른 “성경 한 권이 영문 주사 박영식에게 전달되어 그 집 벽지로 쓰였고, 그 집을 방문한 박영식의 조카 이영태가 벽지를 보고 변화되어 복음을” 수용합니다. 훗날 “이영태는 성서 번역위원이 되었고, 박영식의 집은 평양 최초의 교회, 널다리 골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선 토마스 선교사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집요한 악이 이어져도, 하나님이 항상 승리하심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을 이기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요, 모든 것의 주권자이고, 영원하신 분, 전지전능하신 분, 편재하신 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악이 집요하게 이어져도, 악보다 더 강한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악이 집요하게 이어져 갈수록, 우리는 낙담하여 포기하지 말고, 말씀과 믿음으로 더욱 힘을 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에 좌절하지 않고, 한결같이 이기게 하시는 승리의 하나님을 믿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낙담과 “좌절은 마귀의 도구이지, 우리를 구원하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도구가” 아닙니다. 이에 “우리를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는 소망과 믿음, 긍정과 평안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미래에 대한 소망보다 절망이 더” 컸습니다. 10년 만에 “재산과 남편, 두 아들까지 잃었고, 나이 들고 건강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집요하게 이어지는 아픔에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었기에, 마침내 보아스를 만나서 오벳을 낳고, 존귀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오미와 룻은 집요하게 이어지는 고난으로 충분히 좌절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 편에 서서 낙심을 이겨내고 승리했던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누구도 ‘나는 좌절하고 절망해도 괜찮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에, 기독교인이 패하도록 절대로 방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에 낙심하기보다, 항상 이기게 하는 하나님 붙잡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어야, 악한 세상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주도 “집요하게 이어지는 악이 쉽지 않지만, 더욱 승리의 하나님 붙들고 살아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