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50대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더 많은 위기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50대는 “정년퇴직의 압박이 크고, 아직 공부하는 자녀를 물질적으로 도와야 할 책임감도” 큽니다. 만일 “유학 중인 자녀가 더 공부하길 원한다면, 그 부담이 더 버거울 것”입니다. 게다가 “50대는 80이 넘는 부모를 섬기며 병원비를 부담하는 때도 많다고” 합니다. 또한 “50대는 본인도 젊기에, 먹고 살아야 하기에 그 삶의 중압감이 너무도” 무겁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50대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지금 나 먹고살기도 바쁘고, 과거 세대까지 섬기는 책임이 참으로” 큽니다. 고후 4:8~9절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50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각자 사방의 우겨 쌈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1년이 넘게 이어지는 팬더믹은 우리 삶과 가정 교회, 모두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허물어지고 불탄 현실을 원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 때, 술 관원으로 평탄한 삶을 살다가,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사정을 듣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주민은 큰 환난을 겪었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불탔고,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좋아질 희망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예루살렘이 불타고 허물어진 최악의 상황에서, 느헤미야 한 명의 마음을 움직여서 불타고 허물어진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는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은 영적, 경제적, 관계적 위기와 건강 문제까지, 삶의 많은 부분이 마치 예루살렘 성처럼 불타고” 허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힘들고 어렵다고 그대로 주저앉아 한탄만 할 수 없고, 오히려 팬더믹 이후를 준비하며 재도약을 계획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살아갑니다.

비록 “곳곳이 불타고 허물어졌지만, 내가 어떤 자세를 가지는가에 따라 지금의 위기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당분간 “느헤미야를 묵상하며, 팬더믹 이후 우리 삶을 어떻게 Rebuild 할지, 성경의 지혜를 배워가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 현실이 불타고 허물어짐이 크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살펴봅시다.

1. 허물어지고 불탔기에 안일함에 빠져 있지 말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4절은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말씀합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시대의 고위 공직자였기에, 수일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상과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동족이 겪은 환난과 허물어지고 불탄 예루살렘 사정을 듣고, 큰 위기의식을 느끼며,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금식 기도하며” 엎드렸습니다.

어쩌면 “느헤미야는 환난을 겪는 동족, 불타고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과 무관하게, 심히 안일했던 자신의 삶에서 위기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느헤미야 한 명이 가진 깊은 위기의식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편하고 큰 문제가 없으면,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 큰 위기의식 없이” 살아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 풍족함에 빠져서, 위기의식과 더 무관하게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주변에서 “아시안 혐오 범죄,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 속출, 경제 불황, 동성애로 인한 우리 자녀가 겪을 가치관의 혼돈이 극심해도, 큰 위기의식 없이” 살아갑니다. 이처럼 “위기의식이 없기에 영적으로 잠들고, 시각도 좁아지고, 우선순위조차 잃고” 살아갑니다. 물론 “일부러 불필요한 걱정과 발생하지 않을 위기감에 빠져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 내가 편해서 위기의식을 잃으면, 잠깐은 괜찮아도, 마침내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 시대의 풍성함과 평안함을 그대로 계승하며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후, 이스라엘은 솔로몬 때의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르호보암은 솔로몬 시대의 원로와 자신과 함께 자란 청년에게 어떻게 답변할지, 자문을” 구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르호보암은 당시 이스라엘에 팽배한 위기의식을 깨닫지 못하고, 청년 세대의 조언을 듣고, 솔로몬보다 더 무거운 세금 부과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르호보암은 현실이 너무 편하고 안일해서, 주변에서 제기되는 위기의식과 점점 멀어지면서, 마침내 국가가 남과 북으로 갈리는 엄청난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불타고 허물어진 현실에서, 위기의식은 내 삶을 Rebuild 하는 큰 원동력이 되지만, 지나친 안일함과 편안함은 무너진 삶을 Rebuild 함에 가장 큰 적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너무 잘 먹으니 음식의 귀함을 모르고, 타지보다 환경이 좋으니 감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너무 편하고 안락해서 도전의식이 없고, 본질을 놓치고 쓸데없는 것만 쫓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위기의식을 가질수록, 지금 내 삶과 영적 상태를 더욱 냉정하게 살필수록, 다가오는 미래를 더 효과적으로 Rebuild 할 수” 있습니다. 반복하지만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자는 메시지는 스트레스를 받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깨어 오늘 이 시대의 선과 악을 바르게 구분하고 점검하며 살자는 도전”입니다.

사람이 “건강 하려면 우리 몸 곳곳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를 잘 점검해야!” 합니다. 불타고 “무너진 현실을 Rebuild 하려면 반드시 영적 건강도 잘 살펴야!” 합니다. 고후 13:5절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말씀합니다. 실제로 “내 신앙의 온도가 찬지 더운지, 미지근한지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주의 일과 기도에 열정이 있는지, 예배와 말씀 묵상에 열정이 있는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나의 “심령에 감사와 기쁨이 있는지, 소망과 사랑이 있는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지금 “내 언어에 감사와 불평의 말 중 무엇이 더 많은지, 찬송과 유행가 가사 중 무엇이 더 많은지,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이유는 “오늘의 이 위기는 절대로 쉽게 극복되지 않고, 또한 나만을 예외로 빼주지도 않고, 곧 가까운 시기에 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매사에 위기의식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빌 4:6~7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합니다. 이제 “내 삶과 교회의 미래는 불타고 무너진 현실을 얼마나 말씀에 맞게 Rebuild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불타고 허물어진 현실을 극복해가는 Rebuild의 은혜가 있기” 원합니다.

2. 허물어지고 불탔기에, 삶의 방향을 다시 철저하게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불타고 허물어진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세상과 떨어져서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그동안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면 좋은 술을 만들어 아닥사스다 왕을 기쁘게 할까 생각하며 살았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이방인이고 이민자로 바사에서 성공하기 위해, 느헤미야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겠어요? 그러나 “하나니가 전해준 동족의 환난, 불타고 무너진 예루살렘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느헤미야는 모든 일상을” 멈추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큰 충격을 받고, 어떤 군사적 준비를 하거나,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과 떨어져 하나님과 독대하며, 주야로 금식 기도하며 삶의 방향을 철저히 하나님께” 고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느헤미야 한 명이 철저히 하나님께 향함을 사용하셔서, 예루살렘을 Rebuild하고, 이스라엘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불타고 “허물어진 현실을 이겨내려면, 우선 나부터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내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면 불타고 허물어진 현실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나부터 삶의 방향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이 과거를 향하고 있기에, 과거의 상처와 미움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내 “삶이 세상을 향하기에, 잘못된 전통과 상식에 붙잡혀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다는 “은 삼십에 주님을 팔았고, 입까지 맞추며 주님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정신 차린 유다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돈을 돌려주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당시 “유다가 나름대로 자기 잘못을 바로잡아 보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까요? 자기 “죄를 씻어보려고 동분서주할 때, 자신의 무기력과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요? 마침내 “그 끝을 보면 나무에서 곤두박질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유다는 “자기 죄를 깨닫고, 나름대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유다가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향했다면, 어쩌면 베드로처럼 힘 있게 쓰임 받았을지” 모릅니다. 팬더믹으로 “불타고 허물어진 내 삶과 신앙을 Rebuild 하려면, 내 삶이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심중에 “‘그래 한번 해보자! 밑져야 본전이지!’ 이 마음보다, 이번이 하나님을 향할 마지막 기회로 알고 하나님을 향해야 Rebuild가 가능할 것”입니다.

호 6:1절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다!” 말씀합니다. 지금의 “큰 위기에도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면, 어쩌면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팬더믹으로 흐트러진 내 신앙이 7월 예배 재개 후에도 똑같다면, 내 신앙은 그대로 잃을 수도” 있습니다. 1851년 11월 “메릴랜드에 사는 한 농부가 미국 재무성에 특이한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내용은 “미국의 모든 화폐에 In God We Trust 문구를 넣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864년 미국 의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정해서, 지금도 달러에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남아”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오늘날 미국의 번영이 엄청난 국력과 자원보다, In God We Trust, 이 고백 때문이다.” 말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이기에, 세계 곳곳에서 In God We Trust라는 전도용지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과 국가는 번영하고 하나님의 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말로만, 형식적으로만, 보이는 경우만, In God We Trust 태도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과 가정, 국가를 Rebuild 하려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고,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이라도 한결같이 그 삶을 하나님께 고정할 때, 이를 크게” 쓰셨습니다.

바울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하고 고정하였을 때, 유럽과 세계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하고 고정하였을 때, 역시 위대한 영적 열매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김익두 목사가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하고 고정하였을 때, 수많은 병자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허물어지고 불탔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다시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해서, 진정한 Rebuild의 능력을 체험하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