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들은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두 명의 어머니를 자주” 비교합니다. 하나는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이고, 다른 한 명은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입니다. 아그리피나는 “아들을 황제로 만들려고 남편인 클라우디오 황제를 독살했지만, 불행하게도, 훗날 자신이 황제로 세운 아들 네로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반면에 “모니카는 아들의 깊은 영적 방황에도, 끝까지 기도하여 성 어거스틴을 만들어 역사와 교회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당시 “두 어머니는 자녀가 잘 되고 성공하라고! 더 나아지라고 최선을 다하여” 도왔습니다. 그러나 “한 명은 세속적 방법으로 자녀를 도와서 비극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하나님 방법대로 자녀를 도와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세상 “어느 부모도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자녀도 부모를 자기 뜻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는 하나님께서 맺어준 관계이기에 서로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도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한나에게 “사무엘은 기도로 얻은 아들, 브닌나에게 받은 수모를 씻어준 아들, 첫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한나는 “이처럼 귀한 사무엘을 직접 키우고 싶었지만, 본문 22절에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겠다!” 또한 “본문 28절에서, 엘리에게,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겠다.” 고백합니다.

그리고 “젖을 뗀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습니다. 심히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도우시는 것이 최선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한나의 기도대로 사무엘을 직접 도우시고 그 평생을” 책임지셨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잘 되어 인정받고, 성공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특히 “많은 이민자가 자녀의 성공을 돕기 위해 그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많은 부모가 자녀를 도울 바른 방법을 잘 몰라서, 자녀의 인생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다면서 자녀를 치열한 경쟁, 비교와 편견, 세속적 방식을 동원해서 자녀를 더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사랑하는 우리 자녀를 진심으로 도우려면, 그 방법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인 “오늘, 한나가 사무엘을 도운 방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녀를 도울지!” 살펴봅시다.

1. 우리 자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엘가나와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잘 양육할 수 있는 믿음과 물질, 모든 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젖을 갓 떼어 한창 재롱부리고 예쁠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핵심은 “부모가 사무엘을 양육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한나가 어린 사무엘이 건강하고 신실하게 성장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항상 도우시고 책임져 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비록 “어렸지만, 사무엘은 그렇게 한나의 기도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자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어두운 영적 암흑기를 극복한 시대의 리더로 힘 있게 쓰임” 받았습니다. 부모는 “물질과 정성, 좋은 환경과 만남을 제공하며 사랑하는 자녀를 도울 수 있지만, 가장 큰 도움은 자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은, 누구도 그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인생은 평생 영적 곁길에 빠지지 않고, 신실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자녀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로 인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얼마나” 많을까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경쟁, 인종차별, 문화적 이질감 역시 얼마나” 크겠어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찾는 과정,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세상과 부딪히며 겪는 아픔과 눈물도 얼마나” 많겠어요?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자녀를 키우고,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를 섬겨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마음과 달리,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며 겪는 상실감과 아픔도 얼마나” 크겠어요? 안타깝게도 “인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자녀가 이 모든 문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도우려 해도, 돕는다고 해도, 자녀들이 겪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 자녀가 하나님을 이미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모든 문제와 장애물을 믿음으로 풀어갈 것”입니다. 삶에서 “겪는 수많은 문제에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 말씀에서 답을 찾아서, 절대로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비록 부모가 기도와 많은 정성으로 도와도 우리 자녀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큰 능력이” 있습니다. 마가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 큰 다락방을 가지고, 주님의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도,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베드로를 박해할 때도 기도처를” 제공했습니다. 이처럼 “신실했던 마리아가 아들 마가 요한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지만, 불행히도,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와 동행한 1차 선교 사역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달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마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베드로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고, 마가복음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자녀에게 잡은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말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돕는 최고의 방법은, 자녀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인생은 세상 그 어떤 풍파에도 쉽게 실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의 30%, 미국 재벌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대인의 영향력은 줄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유대인 “부모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철저하게 자녀를 교육하며 돕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유대의 절기를 통해 하나님 은혜와 말씀을 가르치며, 말씀에 맞게 행동하며 살아가도록” 돕습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살아가기에, 세상에 미치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악한 세상에서 사람답게,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 말씀 앞에 서도록, 말씀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야!” 합니다. 세상이 “악하고 힘들기에, 더더욱 하나님 앞에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5월 “첫 주일인데, 가정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서 더욱 복된 가정으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2. 자녀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본문 28절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경배는 굽히고 절하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한나는 “많은 제물을 정성껏 준비해서, 예배드리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혹자는 “사무엘이 젖을 뗀 아이여서 하나님께 경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말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한나의 교육으로, 충분히 예배드림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사무엘이 여호와께 경배했음을 강조한 이유는, 한나가 사무엘을 도우며 예배자로 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무엘은 젖을 뗀 후부터, 평생 하나님께 신실한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돕는 또 다른 최고의 방법은, 자녀가 예배자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예배를 통해 듣고 배우는 하나님 말씀으로 삶의 고민과 아픔을 이겨낸다면 얼마나 귀하고” 복될까요?

예배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불투명한 미래를 책임져 줄 가장 강력한 영적 방패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우리 자녀가 만날 갈등과 어려움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팬더믹을 “통과하며, 많은 기독교인이 예배의 감격을” 잃었습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가 1년의 세월을 보내며, 예배에 대한 감격과 뜨거움이 많이” 식었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예배의 능력을 잃었기에, 자녀도 예배의 능력을 잃어가는지도” 모릅니다.

당회는 “오는 7월 첫 주일부터, 큰 변동 사항이 없는 한, 모든 예배와 교육부, 친교 사역까지 정상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우리 각자와 모든 부서는 사역의 정상화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되 거룩한 예배를 위해, 신실한 예배자로 서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예배를 통해 바알과 아세라,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숭배를 통쾌하게” 이겼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반나절을 뛰놀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제물 주변에 도랑을 파고 물을 세 번이나 부었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이적을 선민과 우상 숭배자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갈멜산 영적 전쟁을 통해, 선민이 예배의 능력을 직접 체험하여 회복되길 원해서, 이처럼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면서까지 예배를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팬더믹 이후, 미래를 준비하려면, 무엇보다 예배를 통해 받는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나를 도우시고 답변하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위로와 치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막혔던 인생이 다시 열리고, 멀어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나아가서 십자가 복음과 구원이 다시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배 회복이 나와 우리 자녀를 돕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홈런 가정예배를 추진하려” 합니다. 가정예배를 “드린 경험이 없다면 부모와 자녀 모두 어색할 수 있지만! 가정예배로 자녀를 도울 수 있다면, 어색함에 지지 말아야!” 합니다. 유아세례 “교육 때 부모에게 ‘자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라.’ 숙제를 내면 모든 부모가 큰 은혜를” 받습니다. 처음은 “어색해도,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가 가장 뜨겁기 때문”입니다.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도, 자녀를 위한 간절한 기도, 자녀와 함께 드리는 가정예배는 이전보다 자녀를 더 깊게 사랑하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비록 “아이가 어려도 예배드리는 부모의 모습이 그 기억에 남을 것이기에, 가정예배는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팬더믹은 “우리 삶을 좁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하나 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에 “무엇보다 가정예배를 회복하여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돕고 합력하는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야!” 합니다.

특히 “우리 부모부터 참된 예배를 회복하고, 정해진 시간은 물론 삶에서 예배자로 살아가는 믿음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부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우리 자녀의 실족을 막을 수 있고, 삶의 장애물을 넘어가게 하고, 낙담과 좌절을 이기게 하는 가장 큰 영적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주일인 “오늘, 모든 가정마다 예배가 회복되어, 팬더믹을 이기고 서로를 진심으로 돕는 믿음의 명문 가정으로 세워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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