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7-05!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영화배우 숀 코너리를 버킹엄 궁전에 초청하여 기사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이로써 “배우였던 숀 코너리는 영국의 기사로, 그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1981-07-29, “평범한 처녀였던 다이애나가 찰스 황태자와 결혼하여 영국 황실의 황태자비로 그 신분과 삶이” 달라졌습니다. 이처럼 “죄인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내 전인격, 내 삶의 방식, 내 영적 신분, 내 미래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조지 맥도웰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변화된 신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주님의 신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다!” 기독교인 됨은 “외모와 겉이 아닌, 내면과 영적 신분이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더는 “죄와 사망의 종이 아니라, 복음을 영접하여 천국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이 여전히 천국의 상속자가 아닌 세상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천국의 상속자로 다 가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악한 세상에 이리저리 치이며 위축되어” 살아갑니다. 본문에서 “바울과 디도, 그리고 크레테인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과 디도, 그리고 크레테인 모두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차이점은 “바울과 디도는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후, 천국의 상속자로 당당하게 살았지만, 크레테인은 여전히 과거와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크레테인이 더는 악한 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의 상속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원했습니다. 팬더믹을 “겪으며, 기독교인인 우리는 항상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 하나님 백성과 자녀로서 가졌던 정체성과 권세, 은혜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생과 신앙생활이 항상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지만, 우리는 ‘지금의 영적 위축이 너무 길어져서, 이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불안감과 걱정이 점점 커져” 갑니다.
문제는 “힘들고 어렵다고 계속 위축되어 사는 삶과 천국의 상속자임을 깨닫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영혼의 미래가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마귀의 미혹이 강해도, 나는 천국의 상속자임을 확신하며, 다시 일어나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천국의 상속자로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천국의 상속자이기에, 더는 과거에 붙잡혀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 3절에서, 자신과 디도의 과거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리석었고, 불순종했고, 속았고, 정욕과 향락, 악독과 투기, 가증함과 미움이 많았다!” 그러나 “바울과 디도는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았고, 그 후 천국의 상속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디도는 “이 특권을 알았기에, 뒤돌아보며 과거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크레테인은 여전히 과거의 악행에 붙잡혀서, 전진은 고사하고 옴짝달싹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천국의 상속자로 살아가는 것처럼, 크레테인도 악한 과거와 단절되어 살아가길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많은 분이 “모두 함께 마음껏 찬양하며 예배드리고, 악수하고 친교 할 수 있었던 과거가 그립다!” 말씀합니다. 저도 “항상 북적이던 교회 로비와 체육관,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교회학교 예배실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때때로 “복도를 걸어 제 방으로 들어갈 때, 찡한 마음에 울컥할 때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과거를 바꿀 수도 없기에, 우리는 과거를 우리 삶에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실제로 “지혜로운 영혼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디딤돌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영혼은 아픈 과거가 걸림돌이 되어,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뒤만 바라보며, 제자리걸음만” 반복합니다. 소돔이 “심판받을 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당시 “롯과 두 딸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소돔의 아픈 과거를 끊어버리고, 다시 미래로 나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만일 “이들이 아브라함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면” 어땠을까요? 과거 “롯을 구하려고 318명을 동원했고, 소돔을 위해 여섯 번이나 구했던 아브라함이 롯의 가족이 찾아오면, 당연히 힘껏 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과 두 딸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과거의 상처에 빠져 웅크린 채 살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롯은 두 딸과 동침하여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물론 하나님도,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이겨내고, 당당하고 신실한 천국의 상속자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과거에 붙잡혀 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느슨해진 내 신앙을 다시 회복할까? 어떻게 더 나은 교회를 만들까? 어떻게 우리 자녀를 바르게 키울까? 어떻게 더 힘있게 주님의 일을 감당할까?’ 다시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계속되는 팬더믹으로 인한 상처와 위축, 아픈 과거를 믿음으로 이겨내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 천국의 상속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967년 “이스라엘의 총리가 된 골다 메이어는 자서전에서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내 얼굴이 못생긴 것에 감사합니다. 나는 못났기 때문에 기도했고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나의 약점은 국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의 절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당시 “골다 메이어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지만, 국민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12년간 수상직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녀는 “질병으로 나약해지려 할 때마다 하나님을 붙들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수상답게 사는 삶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매번 과거의 아픔과 상처, 지금 겪는 환난에 붙잡혀서 아파만 하며” 살아갑니다. 어려움이 “길어지면서, ‘할 수 있다.’ 보다 ‘할 수 없다. 힘들고 괴롭다.’ 무기력만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픈 과거를 믿음으로 끊어내야, 내가 천국의 상속자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팬더믹으로 “과거에 가졌던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것을 아파하고 아쉬워한다고 내 삶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더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 억울함과 아쉬움은 모두 떠내려 보내고, 오히려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를 채워가야!” 합니다. 이제 “수요일부터 사순절 특새가 시작되는 데, 두려움과 기대감이 참으로” 큽니다.
어떻게 “40일간 매일 말씀을 나눌지, 건강하게 잘 버텨낼 수 있을지, 두렵고 떨리지만, 그래도 새롭게 부어 주실 은혜, 변화되는 우리 성도의 삶을 생각하면, 설렘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픈 과거를 철저하게 벗어나서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하고, 기도 자리에 서야 하고, 다시 하나님을 과거보다 더 굳건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과거의 아픔을 디딤돌로 삼아, 천국의 상속자답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2. 천국의 상속자로 살아가려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본문 5절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말씀합니다. 바울은 “과거의 악함을 이기고 천국의 상속자로, 구원받은 이유를 성령의 새롭게 하심때문이다!” 말합니다. 크레테인에게 “과거의 악함과 죄가 컸지만, 바울과 디도가 이를 바꿀 수 없었고, 오직 성령의 은혜만이 크레테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꾸어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크레테를 위한 가장 큰 기도 제목은, 크레테인이 성령 세례를 경험하고 성령 충만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이 다르고, 성경은 성령 세례가 아닌 성령 충만을 명령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 세례는 “죄인이 처음으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를 체험한 후, 임재하신 성령과 계속 끊임없이 교제하며 하루하루 동행하는 삶을” 뜻합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이 천국의 상속자가 되려면, 성령 세례는 물론 성령 충만을 경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 은혜에 대한 사모함과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을 체험하겠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겠다.’ 갈급함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전 1:13~14절은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기 전, 120명 성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기도하였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당시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사도들이었기에,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뜨거웠을까요? 또한 “주님을 미친 사람 취급했던 가족도 얼마나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했을까요?
확신하건대, “누구도 다른 짓 하거나, 대충 어정쩡하게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직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기도하며 성령 충만을 받아, 천국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갈급함과 사모함이 점점 식어가는 것”입니다. 영적 “냉랭함이 틀린 줄 알지만, 과거에는 안 그랬다고 말하면서, 갈급함 없이” 살아갑니다. 갈급함이 “없음은 그만큼 은혜에 대한 절실함이 없는 것이고, 세상에 빠져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갈급함이 “없음은 지금의 어려움을 이길 힘이 성령 충만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갈급함이 “없음은 영적으로 아직 미숙하고, 여전히 자기 고집과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우리 영적 선조는 성령 충만을 위해 엄청난 희생과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너무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성령의 은혜를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1850-01-06, “영국 콜체스터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습니다. 당시 “어떤 소년이 자기가 출석하던 교회를 갈 수 없어서, 가까운 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출석했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출타하여, 평신도 한 분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평신도는, 사 45:22절,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본문을 가지고, 너무도 더듬거리면서, 투박함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지루한 설교 끝에 그 평신도가 소년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우세요?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아가세요!” 놀랍게도 “이 한마디 말씀에 형식적 신앙생활을 해오던 소년이 회심했고, 훗날 찰스 스펄전 목사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상황도 아니고, 설교자도 아니고, 지금 내 안에 갈급함과 사모함이 있는가?”에 있습니다. 비록 “상황이 좋지 않아도, 내가 사모함과 갈급함이 있으면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천국의 상속자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 특새는 힘들고 어려운 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기회”입니다. 지난 “2020년 3월 15일, 사순절 특새 중 팬더믹으로 교회가 멈추었는데, 이번 특새를 통해서, 성령 충만함을 입고, 다시 예배와 우리 삶이 회복되길” 원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성령 충만한 천국의 상속자로, 악한 세상에 위축되지 말고 승리할 수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