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부터 “초 교파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은혜의 배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병원선인 “은혜의 배는 수술실 6개, 침대 80여 개, X-Ray와 CT 촬영 기능까지 갖추고, 세계 곳곳의 오지에 정박하여 다양한 의료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배의 모든 활동은 자원봉사이고, 모든 비용도 스스로 부담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매년 은혜의 배에는 항상 500명이 넘는 헌신자가 승선하여 수많은 사람을 섬기며 살려내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전문직 종사자이지만, 오직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아프고 힘든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보면, 이처럼 살리고 세우기보다, 서로 경쟁하며 짓밟고,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이 더 복되고, 주께서 어떤 삶을 원하는지 잘 알지만, 세속적 삶에 더 깊이 빠져”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살리고 세우는 영혼을 통하여 힘있게” 일하십니다.
교회사에서 “지금의 목사, 장로, 집사 직분이 2세기에 규정되었기에, 본문의 감독과 장로는, 오늘날 목회자를 지칭”합니다. 바울은 “두 직분, 감독과 장로를 설명하며, ‘책망할 것이 없고!’ 이 말 외에는 중복되는 덕목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장로와 감독이 같은 직분이고, 그 자격과 필수 덕목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당시 바울이 본문의 내용을 쓸 때, 교회 안의 장로와 감독만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디도와 크레테 모든 성도와 훗날의 기독교인, 오늘날 목회자와 우리 모두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 것”입니다. 벧전 2:9절은 “우리가 택한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이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역에 따른 각 사람의 기능과 역할의 차이를 언급하셨지만, 모두 다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목사이기에 더 헌신해야 구원받고, 평신도는 더 적게 일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살리고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함을” 도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변 사람을 살리고 세우려면, 내가 먼저 살아나야 하고, 내가 먼저 영적으로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사니까 장로니까 오래 믿었으니까 말한다면, 이는 핑계와 변명”입니다. 어렵고 “힘든 지금! 우리가 주변을 살리고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우리가 살리고 세우는 삶을 살려면, 나부터 영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본문 9절은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당시 “크레테 교회의 감독과 장로는 바울이 말한 덕목을 모두 지켜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덕목은 인간적 결단과 각오가 아니라,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살리고 세우려면 무엇보다 영적으로 거듭나야!”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와 기독교인을 존중하기보다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 정리가”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교회를 욕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기독교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 소망 교회가 비판받는다면, 이는 교회 구조와 건물이 비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소망 교회를 다니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누군가의 비신앙적 삶과 태도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죄인인 “내가 살고 영적으로 서려면, 반드시 물과 성령의 은혜로 거듭나야!” 합니다. 내가 “거듭나서! 영적으로 살아나고 굳건히 서야, 주변에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렵지만 “만일 내가 물과 피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나는 살리고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사람을 죽이며 실족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이 모든 일간지와 방송, 다양한 SNS마다 넘쳐나고” 있습니다. 8개월 된 “아이 정인이가 입양되어, 8개월 만에, 양부모의 끔찍하고 가혹한 폭행과 방치로 끝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해맑은 “미소를 가진 아이가, 불과 몇 달 만에 검고 어두운 그늘을 남긴 채,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끔찍하게도! “양부모 모두 지금도 목회 중인 목회자 자녀이고, 둘 다 기독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동안 “기독교가 물질과 이성 문제, 배타성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솔직히 이번 일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참담합니다. 도대체 “기독교인이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일, 부끄럽고 참담한 일을” 저질렀을까요? 핵심은 “그들이 교회에 다니고, 기독교 교육은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 성령의 은혜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피로 거듭나지 않으면, 누가 어떤 죄로 어떻게 넘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려면 “먼저 내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비워진 심령에 하나님 말씀과 은혜가 채워져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수많은 영혼이 영적으로 살아난 이유는, 먼저 자기 죄를 온전히 내려놓는 회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로 “비워진 심령에 말씀이 채워지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살아났고, 다시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울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원한다면, 힘들어도 꼭 해야 할 영적 숙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며, 버려야 할 내 악함과 죄, 고집과 편견을 기록하는 회개 노트를 만들어 보기” 원합니다. 그렇게 “기록한 나의 죄를 용서하고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실제로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주일 예배 중 짧은 참회의 기도, 자기 전 드리는 짧은 기도로 내 삶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정말 “쉽지 않지만, 진심으로 회개 노트를 작성해 간다면, 넘어지고 아팠던 내가 다시 영적으로 살아나고 설 수” 있습니다.
힘들어도 “회개 노트를 충실히 작성해 간다면, 나는 물론 주변 사람을 살리고 세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이처럼 회개하며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은 채!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많은 영혼이 교회 마당만 밟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듭남 없이 “그저, 이 땅의 복과 성공만을 원하며, 이것만이 진짜 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듭나기 전 “베드로는 자기 살자고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주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거듭난 후! 베드로가 살아났고 굳건히 서서 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웠습니다. 바울도 “거듭나기 전 많은 사람을 핍박했지만, 거듭난 후, 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와 생명을 주심은 내 주변 사람을 살리고 세워야 할 사명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시간을 내서 회개 노트와 말씀 노트를 작성하며 나부터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주변의 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데, 쓰임 받기” 원합니다.
2. 살리고 세우는 삶을 살려면 주변 모두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장로와 감독의 덕목을 말하며 책망할 것이 없고! 이를 두 번 반복해서” 썼습니다. 여기서 “책망할 것이 없다, 아넹클레토스는 윤리적 자질을 강조하지만, 이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의 변화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당시 “크레테에서, 많은 사람이 장로와 감독의 말과 교훈을 안 듣고, 진리인 말씀과” 역행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독과 장로는 본이 되고 신뢰를 주는 삶으로, 반대하고 거스르는 영혼을 책망해야 한다! 말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이 틀려서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말씀은 옳지만, 이를 믿고 따른다는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본이 되지 못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기에, 외면당하고, 거부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디가 ‘나는 예수는 존경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말한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이 세상에 신뢰를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수많은 영혼을 살리고 세워갈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제품에는 유해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이는 “과거 세계 케첩 시장 1위인 하인즈가 방송과 신문을 통해 발표한 사과문 내용”입니다. 당시 “하인즈는 자체 조사를 통해, 장기간 섭취하면 인체에 해로울 첨가물이 케첩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이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문제는 “그 후, 매출은 곤두박질쳤고, 경쟁사의 소송도 줄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인즈는 무려 4년 동안 파산의 위기를 겪었지만, 다시 회복되어” 살아났습니다.
이유는 “비록 문제가 컸지만, 모두가 하인즈는 언제나 소비자를 먼저 생각한다는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하인즈는 소비자 만족도에서 항상 상위를 차지하며, 지금도 깊은 신뢰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살아나고 바로 서려면, 먼저 성도 간 신뢰가 회복되어야 하고, 세상에서 잃어버린 교회의 신뢰부터 다시 찾아야!” 합니다. 가정이 “회복되려면, 부모와 자녀, 부부가 서로를 향한 신뢰부터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물론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매우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이 세상에 신뢰를 주고 주변을 살리고 세우려면, 신행일치(信行一致)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말과 행동이 같은 언행일치를 말하지만, 기독교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실패하고 넘어져도, 우리가 믿는 대로 행동하여서, 세상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信行一致는 절대로 쉽지 않지만, 오늘날 모든 교회과 기독교인이 반드시 도전해야 너무도 중요한 영적 과제”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할 때, 기드온의 믿음도 좋았지만, 300명 군사의 믿음도 참으로” 신실했습니다. 생사가 걸린 “전쟁터에서 무기도 없이 항아리 횃불 나팔 함성으로 이긴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300명 군사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했고, 기드온을 철저히 신뢰함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300명 군사가 목숨을 걸고 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기드온이 信行一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복하지만, “信行一致는 참으로 어렵고, 마귀의 방해가 크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 명령”입니다. 분명한 것은 “信行一致를 실천할 수만 있다면, 나는 물론 주변 모두를 살리고 세울 수” 있습니다.
요 6:29절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교훈을 믿고, 이를 삶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信行一致를 이루려면, 성령께서 삶에서 가르쳐주고 생각나게 하는 말씀이 있다면, 힘들어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힘들고 “어렵기에, 내 힘으로 지금의 고난을 이길 수 없기에, 더더욱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내 뜻대로 살아서 실패한 경험이 너무 많기에, 이제부터라도 성령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지금부터라도 信行一致를 굳게 결단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힘들어도! “신뢰를 주는 信行一致의 삶으로 주변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