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국제회의 통역사였던 최정화 교수가 Angel Aura란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Aura는 사람이 가진 선한 기운을 뜻하기에, Angel Aura는 긍정적인 에너지, 선한 영향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최정화 교수는 “성공한 리더들의 공통점은 학벌과 재능, 물질과 탁월한 지위보다, 오히려 선한 기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이 일반 사람보다 많았다!” 말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내성적인 사람도 일평생! 평균 만 명의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친다고” 합니다. 문제는 “모두에게 있는 영향력이 과연 선한가? 악한가? 얼마나 하나님 뜻에 맞는가?”에 있습니다. 잠 31장은 “현숙한 여인을 설명하고 있는데, 현숙함이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국어사전은 “현숙함을 여성에게 적용하여, 여성의 마음이 어질고 정숙하다!” 정의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현숙함! 원어 하일은 힘과 능력, 선한 영향력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일! 현숙함은 고정되고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변화되는 모습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현숙함은 주변 사람, 내가 속한 공동체에 끊임없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또한 “성경적 현숙함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가질 수 없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아 누릴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잠 31:10절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말씀합니다.

많은 부모가 “선한 영향력, 현숙함을 잃어서, 자녀와 후손에게 ‘나처럼 살아가라!’ 말하기보다 ‘나처럼 살면 안 된다!'” 말합니다. 2020년 “코로나-19를 겪으며, 교회와 기독교인을 향한 비판과 공격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많은 교회가 부주의하여 코로나-19 진원지가 되어서 전도의 길이 점점 더 막히고” 있습니다.

이유는 “2020년을 돌아보면, 교회와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현숙한 삶과 역행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지금처럼, 현숙함을 잃어버린 채 남은 삶을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다시 영적으로 깨어서 현숙한 삶을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020년 “대림절 셋째 주일! 우리가 현숙함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현숙한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현숙한 신앙인은 매사에 깊은 준비성으로 타인을 이롭게 하며 살아갑니다.

본문 21절은 “자기 집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말씀합니다. 여기서 “홍색 옷은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열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옷”입니다. 게다가 “당시 홍색은 싸지 않은 고가의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현숙한 여인은 집안사람 모두가 추운 겨울에 따뜻할 수 있도록, 고가의 홍색 옷을 미리 준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장소적 배경을 팔레스타인으로” 부릅니다.

팔레스타인이 “포함된 중동은 여름에는 폭염때문에, 겨울에는 습한 우기이기에, 눈이 거의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12월 중순! 중동에 폭설이 내리는 기상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70년 만의 눈 소식으로 주요 도로가 폐쇄되고, 학교가 휴교하고, 3만 가구 이상이 전력 공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당시 이집트는 무려 112년 만의 눈 때문에 열사의 상징인 피라미드가 눈에 덥히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잠언이 기록된 삼천 년 전이라면, 눈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숙한 여인은 눈이 거의 오지 않았지만, 눈이 와도 괜찮을 정도로 모든 것을 미리미리 꼼꼼하게 잘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꼼꼼한 준비 때문에 집안 식구 누구도 눈과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하다! 잘 알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을 위해 미리미리 꼼꼼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바쁘다고! “힘들었다고! 다양한 핑계로 항상 문제에 직면해야 비로소” 준비합니다. 때로 “귀찮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준비 없이 그냥 임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삶에서 맺는 열매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매사를 미리미리 준비하면, 하고자 하는 일을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고,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면, 타인에게 편안과 안정감을 주고, 더욱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하나님께서 준비되지 않은 영혼을 안 쓰시고, 아니, 쓰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데, 어떻게 그 인생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어요? 그러므로 “현숙한 신앙인은 항상 철저한 준비로 하나님의 때, 방법대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쓰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를 보면, 열 처녀 모두가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중, 열 명 모두” 잠들었습니다.

당시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이 늦을 것까지 예상하여, 여분의 기름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신랑이 늦을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기름 살 돈이 있었지만, 만일의 사태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섯 처녀는 준비성이 없어서 어리석다! 책망받았고, 또한 천국 잔치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가?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는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인과 주변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철저히 준비하며 살아가는 현숙함이 참으로” 부족합니다. 양병십년 용병일일, “이는 군사를 양육하는 데 10년이 걸리지만, 그 군사를 사용하는 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루를 쓰기 위해 10년을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는 불합리하고 시간 낭비처럼 보이지만, 십 년을 준비한 군대는 어떤 적과 싸워도 절대로 패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잘 준비된 현숙한 신앙인은 세상의 어떤 도전과 공격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올해의 끝이 다가오는데, 어떤 일을 행하셨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오셨나요?

이제 “코로나-19의 백신이 개발되면서 어둡고 힘든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숙제는 우리가 다시 성령의 음성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지! 바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와 한소망 교회도 세속적 계획과 통계가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내일을 준비할 때 현숙할 수 있고, 그래야 다시 넘어지지!” 않습니다. 2020년 “대림절 셋째 주일! 영적으로 잘 준비하여 현숙함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원합니다.

2. 현숙한 신앙인은 선하고 복된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본문 26절은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말씀합니다. 여기서 “입을 열어, 원어 파타흐는 어떤 용기의 뚜껑이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일상생활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사람은 말이 많으면 실수가 잦고, 실수가 잦아지면 현숙함, 선한 영향력이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숙한 여인은 뚜껑을 열 듯 말을 시작하면 그 말에 지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현숙한 여인은 입을 열어서 인애함, 헤세드 선과 충성스러운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현숙한 “여인의 입에는 법, 토라!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 하나님 말씀이” 가득했습니다. 종합해 보면, “현숙한 여인은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말을 시작하면 지혜로운 말, 선하고 충성스러운 말, 하나님 말씀에 맞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의 지혜는 배워서 가질 수 있는 인간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약 3:10 절은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말씀합니다. 문제는 “말을 한다는 것보다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실제로 “패역한 말과 저주는 본인은 물론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그 입술에 지혜와 인애함, 말씀이 있다면, 그 현숙함이 얼마나” 크겠어요? 현숙한 “신앙인은 이처럼 말하는 태도와 자세, 마음가짐과 내용부터 세상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도 예외 없이 말로 인한 상처로 아파하고 힘들어한 경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선한 말이라고, 맞는 말이라고, 좋은 의도로 말한 것이 항상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숙한 신앙인답게 말하려면 세 가지 질문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참말인가? 거짓이 없는 진실을 말하는가? 지금 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인가? 감정 때문에 과격하거나 공격적이지 않고, 친절한 말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의 언행은 현숙하지 못했고, 항상 오락가락함이” 많았습니다. 이유는 “베드로의 말이 어눌하고 문법적으로 틀려서가 아니라, 현숙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의 말에는 항상 자기 과시와 부풀려 말하는 허세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모두가 그의 말을 듣기” 원했습니다. 갑자기 “베드로의 말이 유창해지고, 고급 헬라어를 구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입을 열어 십자가 복음, 부활의 주님을 선포하였기에, 하루에 삼 천명 오 천명의 영혼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베드로의 인생이 180도 바뀐 이유는 베드로의 중심이 바뀌었고, 그 말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누군가와 대화하고 말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말은 진실과 거짓 중 무엇이 많고, 필요한 말과 불필요한 말 중 무엇이 많고, 친절한 말과 공격적 말 중 무엇이 많은지! 깊이 물어야!” 합니다.

현숙한 “언어는 입술이 아니라, 현숙한 신앙과 삶, 현숙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됩니다. 만일 “내 말이 공격적이라면 내 마음이 공격적인 것”입니다. 역으로 “내 말이 부드럽고 따뜻하다면, 내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두께의 책 한 권에는 약 이만 단어 정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인이 하루에 쓰는 단어가 평균 약 삼만 단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루에 쓰는 단어가 책 한 권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루 동안 사용하는 말을 책으로 만든다면, 훗날 내가 한 말이 책으로 남는다면, 모두가 현숙한 말을 하려고 힘쓰며 살아갈 것”입니다. 실제로 “계 20:12 절은,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씀합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입술과 삶으로 표현한 모든 언행을, 하나님께서 전부 다 알고 계신다!” 말씀합니다.

특히 “우리 말이 누군가, 어쩌면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을 세울 수도 있고 넘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알건 모르건, 내 말에는 큰 영향력이 있기에, 우리 말은 반드시 현숙해야!” 합니다. 2020년 “힘들고 버거운 시기를 보내며, 우리 입술의 말이 과연 현숙했는지!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자문해” 봅시다. 2020년 “대림절 셋째 주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 말이 더욱 현숙해져서, 날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