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교사가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인디언의 삶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유는 “인디언이 산을 너무 잘 탔고, 산에서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선교사는 ‘저렇게 빠르면 평지에서는 더 빠를 거야!’ 생각하고, 몇 명의 인디언에게 100M를 뛰게 하고 그 기록을” 측정했습니다. 놀랍게도 “산에서 펄펄 날던 인디언의 100M 평균기록이 일반인보다도 못했고, 게다가 100M를 뛴 다음 날 모두가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인디언이 산지에서 쓰는 근육은 발전했지만, 평지에서 달리는 근육이 퇴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짧지만,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감사가 참된 감사인지, 퇴화한 감사인지! 깊이 자문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현실을 보면, “오늘 우리는 입술로는 감사하지만, 쉽게 흔들리고 변질되는 감사, 퇴화한 감사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퇴화한 감사가 아니라, 날마다 더 커지고 깊어지는 감사로 살아가야 한다!” 말씀합니다.
본문은 “이방 땅에서 포로로 살아가던 선민의 감사와 찬양의 고백”입니다. 당시 “선민은 나라를 잃은 포로로 타국에서 살았지만, 원망과 불평보다, 오히려 감사와 찬양이 더 크고” 깊었습니다. 실제로 “본문을 자세히 보면, 내가 주께 감사하리다!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하라! 온 백성이 찬양하라! 찬양과 감사가 점점 더 커지고” 깊어졌습니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감사의 깊이가 깊어지면서, 이들의 삶은 더 큰 감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을 잘” 압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온 102명 중, 청교도는 불과 35명뿐”이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며, 몇 명이 더 사망했지만, 청교도의 신앙과 감사는 퇴화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 2020년! “추수 감사 주일인 오늘! 우리 각자의 감사도 이처럼 더 깊어지기” 원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부활절 예배는 물론 추수 감사 주일도 축소되어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그럴수록 “우리 감사가 깊어져야 하고, 그래야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감사가 “깊어질수록 어려움과 아픔을 온전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일하심, 나를 인도하고 채워주심을 더 크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 감사가 깊어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감사가 더 크고 깊어져야 내 삶이 이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은 “이방 땅에서 포로로 살아가던 선민의 삶이 크게 바뀌었음을” 말씀합니다. 구체적으로 “처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웠지만, 이제는 안위함과 감사가 더 크고” 깊어졌습니다. 과거에는 “기쁨으로 우물물을 길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천하만국에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할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과거에는 “포로로 삶의 방향성을 잃은 채, 매사가 위축되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으로 찬양할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핵심은 “상황이 나아졌기에 감사가 깊어진 것이 아니라, 감사가 깊어지면서 선민의 상황이 더 나아지고 좋아졌던 것”입니다. 감사는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책임지심,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심을 확신할수록, 더 커지고” 깊어집니다. 실제로 “감사가 깊어질수록, 내 삶의 아픔과 상처가 회복되고, 기쁨과 찬양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감사가 “깊어질수록,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욱 분명히 보고 듣고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내 힘과 계획, 과학과 의학, 사람과 세상의 도움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 생각합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나를 어렵게 할수록, 우리는 무엇이 피폐한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지! 바른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어려움과 아픔, 질병과 상처로부터 다시 일어나기 원한다면,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려면, 피상적이고 퇴화한 감사가 아니라, 깊고 온전한 감사가 필요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남에서 “샬롬 교회를 섬기는 김정하 목사는 과거! 어려운 환경에서도 구두를 닦아 많은 청소년을 후원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김정하 목사는 루게릭병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식도가 점점 굳어져서 음식물을 액체로 섭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김정하 목사에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집니다. 그럴 때마다 “김정하 목사가 반문하는 한결같은 질문이” 있습니다.
“왜 내가 받은 축복에 관해서는 묻지 않습니까? 내게는 2만 원짜리 구두통으로 수많은 청소년을 후원한 일, 자살하려 했던 사람을 살린 일, 투병 중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너무도 큽니다.” 기독교인의 “삶에도 불행과 아픔, 질병과 눈물이 있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병들고 넘어져서 얻는 감사가 크고, 외로움과 실패로 얻는 은혜와 감사도 참으로” 깊습니다. 실제로 “나아짐과 치유, 회복과 성장은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주어지지!” 않습니다.
나아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비결은 우리의 감사가 더 크고 깊어져야!” 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잃어서, 그 상실감이 참으로” 큽니다. 그래도 “감사를 계수하고 찾으면, 감사가 깊어지고, 마침내 우리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요셉이 “17세에 형들에게 팔려서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보디발 집에서 가정 총무로 안정을 찾는 듯했지만, 보디발 아내의 미혹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감옥에서도 “술 맡은 관원을 도왔지만, 복직한 관원이 요셉을 잊는 배신감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요셉의 삶이 형통했다고 말씀하는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형통하고, 왜 요셉이 형통한지, 의문이” 큽니다. 답을 찾으면 “요셉이 어려운 중에 형통하고 나아진 이유는 감사와 은혜의 조건을 찾고 계수함에” 있었습니다.
요셉이 “어려운 중에도 은혜와 감사를 계수하면서, 감사와 은혜가 더 깊어졌고, 그 깊어진 은혜와 감사가 요셉을 수렁에서 건져내었던 것”입니다. 깊어진 “감사가 가뭄으로 고생하는 가족을 살리고, 자신을 판 형들까지 더 나은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힘들고 더 어려워졌기에, 더더욱 퇴화한 감사, 입술만의 감사, 피상적인 감사를 이겨내야!” 합니다. 퇴화한 “감사는 아무리 많아도 내 삶을 더 낫게 이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추수 감사 주일에 전 교인이 감사의 글을 쓰자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글을 “쓰면 감사를 찾고 계수할 수 있고, 마침내 더 깊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고, “물질이 많아지고, 원하는 대로 된다고 우리 삶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직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커지고 깊어져야, 한 번뿐인 내 인생이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한주도 “은혜를 계수하여 감사가 깊어지고 날마다 더 나아지는 은혜가 있기” 원합니다.
2. 감사가 더 크고 깊어져야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말씀합니다. 포로가 “된 선민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감사보다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구원의 “우물을 잃었고,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과 목적을 잃고서 암흑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깊어지면서, ‘하나님이 나의 구원과 힘, 노래’라고 그 영적 고백이 점점” 견고해졌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는, 과거와 달리 밝은 미래를 꿈꿀 정도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가까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단어가 무엇인지, 맞혀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항상 행복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시공을 초월한다. 대상을 원하는 대로 항상 바꿀 수 있다. 돈이 들지 않는다. 거의 모두가 한다.” 정답은 “짝사랑인데, 누구도 짝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와 하나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하나님은 “항상 내 마음 문을 두드리며 가까이 다가오시는데, 우리가 이를” 외면합니다. 게다가 “세속적 이익만 추구하기에, 마침내 퇴화한 감사로 주님과 점점” 멀어집니다. 심지어 “우리는 주님과 점점 더 영적으로 멀어져도, 전혀 문제의식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고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공생애 끝에 졸고, 도망가고 부인해서, 참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가룟 “유다도 돈 받고 주님을 팔아서 성경과 역사에서 큰 오명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보면, 이처럼 큰 죄를 지었던 두 사도의 운명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사도로 쓰임 받았지만, 유다는 자살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멀어졌던 주님과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지만, 유다는 멀어진 채, 그대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와서 감사와 은혜가 깊어졌지만, 유다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전 15:6 절은 “부활의 주님을 목격한 영혼이 500여 명이나 되었다!” 말씀합니다. 문제는 “부활의 주님을 직접 목격했지만, 주님께 다가오지 않았기에 깊은 감사를 잃었고, 마침내 성경과 역사에서 그 존재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오늘, 바로 나부터 하나님과 나의 거리가 어떠한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나의 영적 거리를 측정하는 중요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들으려 하는가? 얼마나 하나님을 높이며 사는가? 얼마나 하나님과 대화하는가? 삶에서 하나님과 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친해졌다가 다시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지면, 삶의 방향성과 목적을 놓치기에, 절대로 바르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감사가 크고 깊어져서, 하나님과 더더욱 가까워지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웨덴의 “루터교 성도였던 루드빅 스톰은 불과 37세의 젊은 나이에 척추 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힘들게 살았는데, 유언처럼 남긴 귀한 찬양이” 있습니다.
“지금 있는 것 감사! 주님 가져가신 것 감사! 지나간 시간도 감사! 화사한 봄날도 감사, 울적하고 쓸쓸한 가을도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받지 못함도 감사, 궁핍할 때 주신 은혜 감사, 비와 구름 주심에 감사, 어둠도 감사, 시험과 분투도 감사, 실패에도 감사!” 가사를 “읽을수록, 뭐 이런 것까지 감사할 수 있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루드빅 스톰은 어렵고 힘든 중에도 하나님과 가까웠기에, 이처럼 귀한 찬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분이 감사의 글을 미리 보내셨는데,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감사보다 “아픔이 더 많았지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 경험한 회복과 치유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2020년! 가장 힘든 추수 감사 주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힘들다고 “세상으로 가까이 갈수록 답이 없고, 아픔만 커지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더 큰 은혜, 더 큰 감사로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