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는 “1955년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래, 지금은 세계 120여 국가에 37,000여 개의 매장을 가진 세계적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맥도날드의 엄청난 성공에는 창업자 레이 크록의 경영철학이 큰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열정과 경험이 핵심 경영철학이다. 리더는 직접 음식을 만들어 배달한 사람이어야 한다!” 실례로 “과거 CEO 중 프레드 터너는 빵을 구웠었고, 찰리 벨은 호주에서 점원으로 일했던 경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찰리 벨은 ‘내 피에 케첩이 흐른다!’ 말할 정도로 열정적인 리더”였습니다. 열정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란 태도가 아니라,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 이것밖에 없다!’ 집중과 간절함이 있어야 가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그나마 있던 열정을 빼앗아서, 위축과 한탄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내적인 결핍과 연약함도 문제지만, 이보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을 잃어감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유는 “열정을 잃으면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 미래는 물론 구원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겟세마네 동산을 향한 주님과 사도들의 생각이 달랐겠다!” 생각했습니다. 사도들에게 “겟세마네 동산은 열정을 잃고 깊이 잠든 치욕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주님에게 겟세마네 동산은 인생의 마지막 밤, 가장 간절히 기도했던 열정의 장소”였습니다. 같은 “장소, 시간, 상황이었지만, 열정의 유무로 희비가 갈렸을 것”입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열정을 잃고, 위축과 낙담이 커가면서 Corona Blue가 점점 더 퍼져가고” 있습니다. 열정을 “잃어가며,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고, 열매와 의욕 없이,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아니! “열정이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은 점점 식어가고, 세속적이고 이기적 열정만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 3:19 절에서, 차지도 덥지도 않은 어정쩡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열심을 내라!” 열심을 내면 “못 보던 것을 보고, 못 듣던 것을 듣고, 닫혔던 문이 새롭게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을 내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 은혜가 내 삶을 더 강하고 단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든 현실을 살아가지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열정이 무엇이고, 어떤 열정이 진짜인지!” 살펴봅시다.
1. 열정은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있어야 합니다.
본문 44절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말씀합니다. 사 복음서 중 “오직 누가만 주님의 기도하는 열정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다!” 표현했습니다. 의사들은 “주님께서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중, 모세 혈관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본 절을” 해석합니다. 혹자는 “주님께서 땀이 줄줄 흐르도록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 모습이 마치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해석합니다.
당시 “주님의 기도는 공생애 전체를 통틀어, 가장 뜨겁고 열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주님은 다음 날 있을 십자가 죽음을 아셨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바로 지금! 그 밤부터 시작될 고난을 위하여, 열정적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이를” 준비하셨습니다. 반면에 “3인의 사도는 훗날 성령의 임재 때는 열정적으로 기도했지만, 바로 지금!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열정을 잃어서 잠들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열정이 뜨거웠던 시간과 경험이 있지만, 문제는 ‘바로 지금 그 열정이 있는가?'”에 있습니다. 많은 분이 “과거의 열정, ‘왕년에 내가!’ 외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지금은 내가 예전 같지 않다. 열정을 잃었다.’라는 고백이” 됩니다. 물론 “과거의 열정이 지금 나를 있게 했지만, 하나님은 바로 지금! 내 열정을” 원하십니다.
지금 “열정이 있어야 내 삶의 아픔과 어려움을 이기고, 느슨해진 삶이 회복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만일 “지금 열정이 없으면, 어쩌면 계속 열정 없이 되는 대로, 습관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싶고, 해야 할 것, 하나님 기뻐하는 것을 미루지 말고, 열정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된다! 틀렸다! 늦었다! 마귀의 음성을 이겨내고, 지금 열정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삭개오가 “여리고에 오신 주님을 뵈려고 돌무화과나무 위까지” 올라갔습니다. 또한 “주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그 인생을 바꾸는 열정적인 고백을” 합니다.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 이에 “주님은 눅 19:9절에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삭개오가 나중에 주님을 뵙기로 했다면, 열정 없이 주님을 대했다면” 어땠을까요?
당시 “주님의 여리고 방문은 공생애 중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다행히 “삭개오가 바로 지금! 열정을 가지고 주님께 다가갔을 때, 회복과 치유,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열정이 있어야, 과거의 죄를 회개하여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열정이 있어야 미래가 있고, 영생과 구원도 놓치지!” 않습니다. 지금 “코로나-19로 길이 안 보일 정도로 힘들수록! 낙심과 위기가 클수록! 더더욱 지금 열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열정을 말씀하는데, 마귀는 ‘옛날에 다 했었어! 나중에, 사정이 괜찮아지면!’ 지금 열정을” 가로막습니다. 최근 “저는 이상하게 밤 9시에 다니엘 기도를 드린 후, 무엇인가 먹을 것을” 찾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항상 제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제도 먹고 오늘도 또 먹어요? 내일 먹고 오늘은 그냥 참아요!” 생각해보면 “참 섭섭한데, 지금 무엇인가 먹고 싶은데, ‘어제 먹었다. 내일 주겠다!’ 이 말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과거에 “하나님 은혜를 받았어도! 누구나 지금도 은혜받기” 원합니다. 미래에도 “하나님 은혜가 있지만, 누구나 지금도 은혜받기” 원합니다. 문제는 “지금 하나님 은혜를 받기 원하면서, 안타깝게! 나는 지금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잊은 채” 살아갑니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오늘의 수고,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과거는 시효 지난 수표이고, 미래는 약속어음이고, 지금 현재만 내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자산과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내가 어떻게 바꾸고 가꿀 수” 없습니다. 최근 “제가 설교와 칼럼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 앞에 서야 한다! 예배 회복이 필요하다!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내가 말씀에 대한 열정, 예배와 기도에 대한 열정, 봉사와 헌신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 코로나-19를 이기고, 내 삶을 더 풍성하게 가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주도 “바로 지금의 열정을 잃지 말고, 항상 풍성한 열매 맺으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우리 열정이 하나님과 한 방향을 향해야 합니다.
본문 42절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말씀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의 두려움과 아픔을 아셨기에, 가능하면 이를 피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열정적으로 기도하셨지만, 그래도 하나님 뜻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열정적으로 “기도하셨지만, 그 열정이 내 위주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과 한 방향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사도들은 잠들었고, 하나님과 전혀 다른 방향에 서” 있었습니다. 물론 “사도들이 성령을 체험할 때는 하나님과 같은 방향의 열정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사도들은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고, 열정도 전혀” 없었습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이 낙담하고 좌절하지만, 혹자는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며 코로나-19를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나의 열심과 열정이 하나님과 한 방향에 서 있는가?”에 있습니다.
만일 “지금 내가 가진 열정이 하나님과 반대라면, 그 열정은 나와 주변 모두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한 명의 인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 말했지만, 하나님과 무관한 열정을 가진 인재는 오히려 수십 수백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게 꼭 필요한 열정은 반드시 하나님과 한 방향, 주 안의 열정이어야!” 합니다. 이유는 “주 안의 열정과 주 밖의 열정은 맺는 열매와 받는 상급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969년 “설립된 스튜 레오나드 슈퍼마켓의 초창기 시절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달걀이 상했다고 교환을 요청했는데, 직원이 ‘정말 우리 가게에서 달걀을 샀는지!'” 의심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달걀 몇 개 때문에 내가 여기를 다시 왔겠냐?’ 항의하며, ‘다시는 스튜 레오나드에서 물건을 안 사겠다!'” 선언했습니다. 이 일 후 “스류 레오나드에서 ‘고객은 항상 옳습니다.’ 이를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규정으로” 제정했습니다.
두 번째 “규정도 ‘고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첫 번째 규정을 다시 보라!'”로 정했습니다. 월마트도 “모든 직원에게 고객이라는 단 한 명의 상사만 존재합니다!” 강조합니다. 부족해도! “우리의 열정, 선택과 결정이, 고객을 향한 열정을 가진 기업들처럼, 하나님을 향한다면 얼마나” 귀할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내 열정이 있다면 우리 미래가 얼마나” 밝을까요?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을”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내가 하는 일, 주변 사람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 안의 열정으로 지금 내가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하고, 내가 감당해야 하기에 주신 일”입니다. 또한 “지금 내 주변 사람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맺어주신 것”입니다. 골 3:23 절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께 하듯 하나님과 한 방향에서 자녀를 키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께 하듯, 하나님과 한 방향에서 부모를 섬기는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하듯 열정을 가지는데, 왜 열매가” 없겠어요? 주님은 “공생애 때, 가족과 친지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고” 힘들었습니다.
막 3:21 절은 “주님의 친족이 주님이 미쳤다며 붙들러 왔더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을 체험했고, 초대교회의 위대한 리더로 헌신했다!” 말씀합니다. 이유는 “과거에는 주님과 역행하였지만, 바로 지금! 주 안의 열정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열정을 가진 일, 정말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 하나님과 같은 방향에 있는지! 주 안의 열정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만일 “지금 내가 가진 열정이 주님과 한 방향이면, 곁길로 가지 말고, 계속 그 열정을 지켜야!” 합니다. 반면에 “주님과 다른 방향의 열정이라면, 빨리 방향을 돌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살기 위해! “구원받기 위해서, 복 받기 위해서, 내 열정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닌 줄 알면 “더는 고집부리지 말고, 내 열정이 주님의 말씀과 계획에 맞도록 다시 재정립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한주도 주 안의 열정으로 매사에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