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은 “1517-10-31, 비텐베르그 대학 정문에 95개 조항이 붙으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종교개혁 이전, 루터의 철저한 자기 개혁이 먼저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루터는 “엄한 아버지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운 심판 주로” 인식했습니다. 항상 “죄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하여, 사소한 일까지 회개하며 고해성사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루터가 시편과 로마서 연구를 통해 복음을 깨달으며, 자기 개혁이 먼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 후, 그 자리에 말씀을 채우면서, 자기 개혁을 넘어 종교개혁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는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문제들로 뒤엉켜”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를 풀어야 할지, 어떻게 또한 왜 개혁해야 할지, 그 실마리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개혁이란 단어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기에, 더더욱 바른 개혁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은 “세계적 팬더믹 중 맞이하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개혁은 “사람의 방법, 세상의 철학과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유는 “진정한 개혁의 시작과 기초가 하나님과 성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행전 13:22 절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했다! 말씀하지만, 실제 다윗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수많은 “환난과 장애가 있었지만, 특히 오늘 본문을 통해 다윗의 인생이 참된 개혁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다윗에게 “밧세바 사건은, 그 인생에서 가장 잊고 싶은 사건,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처럼 지우고 싶은 사건을 통해, 마치 루터처럼, 진심으로 회개하며 자신을 철저히 개혁해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한 회개로 비워진 심령에 하나님 말씀을 채움으로 개인과 국가를 새롭게 개혁해 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코로나-19는 우리 삶과 신앙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놓았기에, 더더욱 참된 개혁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참 개혁을 위한 하나님의 자극제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개혁은 남이 아닌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개혁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꼭 필요하고,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도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종교개혁 “주일인 오늘, 참된 개혁을 위해 무엇이 그리고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살펴봅시다.

1. 개혁을 체험하려면, 먼저 내 죄를 철저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나단은 “다윗이 계속 죄를 깨닫지 못하자, ‘당신이 그 사람이라!'” 호통쳤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나단의 이 책망이! 그동안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던 다윗을” 깨웠습니다. 만일 “다윗이 ‘네가 감히! 나는 문제 없어! 내가 왜 죄인이야!’ 죄의식 없이 당당했다면, 다윗 개인은 물론 국가 전체가 더 힘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 한 마디에 자신의 악한 죄, 잔인함, 영적으로 잠들었던 모습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다윗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채우신 많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해서, 음행에 빠진 악행을 철저히 회개했던 것”입니다. 당시 “다윗은 자신의 죄가 온전히 드러나서 무안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 철저한 회개가 다윗을 참된 개혁으로” 이끌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다 그럴 수 있어! 왜 내게만 그래!’ 죄의 심각성이” 없습니다. 문제의식이 “없기에 범죄에 대담하고, 치명적 죄를 범해도 죄책감조차” 없습니다.

특히 “오늘 이 시대를 주도하는 탈현대주의는 절대적 개념보다 상대적 개념을 더” 강조합니다. 실례로 “나부터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에 죄를 모르고, 범죄 한 후에도 죄의식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롬 6:23 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개혁은 내가 죄를 인정하는 만큼, 회개하는 만큼 더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힘들지만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얼마나 부족하고 악한가? 철저한 인정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내가 내 죄를 인정하면, 무안해지고, 오명이 될 수 있다!”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내 죄를 철저하게 인정하고 회개할수록, 오히려 나를 더 높여주고, 더 크게” 쓰십니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은 길선주 목사가 혼자만 아는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다. 친구가 죽으면서 얼마의 돈을 그 아내에게 전해 달라고 했는데, 제가 그것을 착복했다. 내일 당장 찾아가서 그 돈을 갚겠다.”

그러자 “많은 성도가 너도나도 그동안 간직해온 깊은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1907년 대부흥 운동은 철저한 회개로 시작된 성도 개개인과 교회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1992-06-18 “서울 모처에서 많은 교계 인사가 모여 한경직 목사의 템플턴 상 수상을 축하하는데, 한 목사가 충격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한 죄인이다. 이런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하고 축복해 주셔서 한국 교회를 위하여 일하도록 이 상을 주셨다.”

당시 “한경직 목사의 짧은 이 고백은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교회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함이 자신을 정결하게 했고, 타인을 정결함으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두 목사처럼 공개적으로 나만 아는 깊은 죄를 고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는 내 추악한 죄를 회개해야, 참 개혁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체면과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 씁니다.

죄를 “고백하면 잃을 것이 많다고 생각하여 회개하지 않고, 마침내 개혁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은 절대로 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죄로 인정하지 못하는 완악함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내 삶을 참된 개혁으로” 이끄십니다. 삭개오가 “주님과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재산 절반을 내놓고, 토색한 것은 네 배를 갚겠다!’ 과감하게” 선언했습니다.

삭개오는 “‘나는 도둑이고 죄인이다!’ 수치스럽고 무안했지만, 철저한 회개를 통해 참 개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죄인인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죄가 쌓일 수밖에 없기에,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악과 죄가” 커집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도 그동안 회개하지 않고 쌓인 죄로 인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회개하는 영혼을 정죄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말했습니다. 죄는 “악하지만, 회개하고 내려놓음은 아름다운 결단이고,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영혼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개혁은 “의지와 결단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해서, 철저히 죄를 인정함에서” 시작됩니다. 힘들어도! “생각나는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서, 참된 개혁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2. 개혁을 체험하려면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다윗은 “‘당신이 그 사람이다!’ 치욕적인 책망을 듣고도, 계속 나단의 책망을” 경청했습니다. 당시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에는 정말 두려운 경고가” 많았습니다.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어! 칼이 네 집을 떠나지 않고 재앙이 있을 거야! 네 아내가 백주에 욕을 당할 거야!” 놀랍게도! “이처럼 강하고 두려운 말씀이 다윗을 책망하며, 그 삶을 개혁으로 이끌었지만, 다윗은 조금도 하나님 말씀에 항의하지 않고,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엄청난 “죄를 지적받아서 무안할 수도 있었지만, 다시 말씀 앞에 섰기에, 다윗의 개혁은 더” 온전해졌습니다. 개혁은 “철저하게 말씀으로 돌아가고, 말씀 앞에 서야만 가능한 은혜”입니다. 종교개혁은 “Ad Fontes(본질로 돌아가자),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 본질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문제는 “당시는 물론 오늘도! 성경과 무관한 인간적 전통이 교회와 세상을 주관하기에,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 말씀과 점점 멀어지는 선택과 결정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 말씀 앞에 서서 살아가야 함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조차 말씀을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구태의연한 이야기로 여기기에, 하나님 말씀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두렵게도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외면하기에 더욱 깊은 죄에 빠져서, 마침내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말씀과 “멀어지기에, 개혁은 고사하고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은혜는 내가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정비례하여” 임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말씀은 아무리 큰 죄인도, 구제 불능의 악도 새롭게 개혁으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황해도 안악 출신의 깡패로, 모두가 싫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영접하여 완전히 새롭게 된 후, 항상 성경을 가까이하며” 살았습니다. 길에서도 “성경을 읽다가 전봇대 또는 행인과 부딪히기” 일쑤였습니다. 평생 “매일 2장씩 신구약을 읽었고, 총 신약 1000 독, 구약 100 독을” 했습니다. 특히 “세례받기 전, 1년 동안 신약을 100 독한 일화가 가장” 유명합니다. 김익두 목사는 “기도로 병을 고치는 목사로 유명한 데, 그 능력의 기초는 성경,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어두운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고, 말씀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채우며 자신의 삶을 개혁해 나갔던 것”입니다. 자신부터 “철저하게 개혁하였기에,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개혁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부터! 내가 먼저 말씀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특히! “말씀과 무관한 개혁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말씀의 홍수 시대로, 그 어떤 때보다 말씀에 접근하기가 많이” 쉬워졌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좋은 신학 자료, 인터넷 강좌, 설교, 많은 말씀이 있지만, 문제는 내가 다양한 핑계와 변명으로 말씀 앞에 서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말씀 앞에 서지 않음이 점점 습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슬 서말도 꿰어야 보배이듯, 아무리 말씀이 주변에 많아도, 내가 말씀 앞에 서고, 하나님 말씀을 영접해야 개혁이 가능한 것”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들지만,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하고, 말씀으로 내 신앙을 무장해야!” 합니다.

성경은 “유월절 준수 여부로 선한 왕과 악한 왕을” 구분했습니다. 특히 “남 유다의 선왕이었던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는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은혜로 출 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회복은 흐트러진 선민 공동체가 다시 말씀 앞에 서는 능력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굴곡 많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말씀 앞에 섰을 때, 한결같이 영적 개혁이 일어났고, 국가와 역사의 개혁이 줄을 이어서”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인과 “불신자의 가장 큰 차이는 말씀 앞에 서는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 새롭게 개혁을 소망할 때, 말씀 앞에 서는가? 세상 앞에 서는가? 깊이 자문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들고 어려운 지금! 다시 말씀 앞에 서서 나와 교회가 말씀으로 개혁되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