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이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점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이 ‘악하고 어둡다!’ 한탄하면서, 자신의 영적 건강을 점검하며 살아가는 영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나를 영적으로 점검하는 질문들’을 제시했는데, 각자가 속으로, 이 질문들에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가? 예수를 믿고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졌는가? 예수를 믿고 은밀한 죄책감이 사라졌는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자신이 있는가? 예수를 믿고 원수도 사랑하게 되었는가? 예수를 믿고 자아가 죽었는가?”
우리가 “이 질문들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 있게 ‘아멘!’ 답하는지에 따라서 내 영적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민자인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서, 시험과 상처 때문에,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건강 검진보다, 영생을 위해, 영적 건강 점검이 훨씬 더 중요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합이 “아람 전쟁에서 전사하고,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왕인 아하시야부터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깊이 숭배했고, 게다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중병에 걸려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엘리야가 건재해 있었지만, 아하시야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영적 점검을 하지 않았기에, 시대적 어두움은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최근 “코로나-19의 재확산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주변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죽겠다!’ 푸념만 할 뿐,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너무도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삶이 힘들수록, ‘하나님과 관계가 바른지! 나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 더욱 철저하게 점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영적 점검이 깊고 철저할수록, 내 인생이 더더욱 새롭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점검은 “잠든 나를 깨우고 자극해서, 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 능력이” 있습니다. 비록 “현실이 어두워도, 각자가 깊은 영적 점검을 통해 다시 일어서려 한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힘들수록, 더 철저한 영적 점검이” 필요합니다. 오늘 “두 가지 질문을 통해 나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점검해” 봅시다.
1. 나는 ‘어려울 때,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이를 통해 내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아합이 죽고 “북이스라엘은 모압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고, 그 계승자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중병에” 걸렸습니다. 이처럼 “주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 아하시야가 가장 먼저 한 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당시 “엘리야가 이 소식을 듣고, 아하시야에게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죽을 것이다!” 여기서 “바알세붑은 파리를 숭배하는 블레셋 우상”입니다.
기막히게도! “아하시야는 가장 위급하고 어려울 때, 파리를 숭배하는 우상을 가장 먼저 찾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아하시야의 영적 상태가 피폐했고,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랄 때, ‘하나님! 엄마’를 찾지만 ‘아빠!’는 찾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버지’란 존재가 그만큼 우리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위급하고 어려울 때, 신뢰하고 의지하는 대상을 가장 먼저” 찾습니다.
만일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반면에 “급하고 힘들 때, 돈이 생각나면 돈을 섬기는 사람이고, 사람이 생각나면 그 사람을 깊이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누가,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세요? 어쩌면 “지금 생각나는 그것이 바로 내가 가장 의지하고 신뢰하는 대상일 것”입니다.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의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자매는 가장 먼저 주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사로가 죽은 후, 무려 나흘이 지나서야 베다니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두 자매는,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주님을 가장 먼저 찾아가서 엎드렸고, 마침내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 “나 자신에게 솔직히 자문해!” 봅시다. “나는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가? 사람에게 전화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먼저 보는가? 인터넷 검색을 하는가?”
정말 “어려울 때, 물질을 찾는지, 하나님을 찾는지! 자문해!” 보세요! 만일 “위기 중에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고, 말씀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면, 그 영혼은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반면에 “위급하고 힘들 때, 사람과 과학, 물질을 먼저 찾는다면, 내 신앙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세상 것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한계가 있고, 나에게 영생을 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명한 “연극 ’15분’의 주인공은 세상적으로 탁월한 청년”입니다.
어느 날 “청년이 가슴 통증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폐암 말기여서 앞으로 15분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청천벽력의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청년이 쓴 논문이 저명한 학술지에 실린다는 축하 엽서가” 도착했습니다. 이어서 “백만장자 삼촌이 엄청난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엽서, 피앙세가 결혼을 허락한다는 엽서가 연이어” 도착했습니다. 당시 “청년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백만장자, 학문적 성과, 결혼까지 한 날에” 얻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불과 15분 후,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허망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연약한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돕고 세우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물론 “이 땅을 살면서 물질과 명예, 학벌과 인맥도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는 “평소에 가능했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어떤 교우가 “한국의 부모님이 아픈데, 찾아뵙지 못해 너무 힘들다며 기도를 부탁해” 왔습니다.
저도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파킨슨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날로 “말이 어눌해지고 거동이 불편해져서, 어머니의 고생이 점점 커져” 갑니다. 그러나 “전화로 안부를 물을 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위로와 기도뿐”입니다. 살면서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있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하고, 더 기도해야!” 합니다. 힘들 때! “푸념과 한탄보다, 말씀 앞에 서야 하고, 기도로 하나님을 붙들어야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원치 “않는 중병으로 힘들다면, 아하시야처럼 다른 것 찾지 말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 방법,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수록, 영적인 점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는가?’ 확인하고, 믿음으로 굳건하게 바로 서야!” 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들수록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는 신앙으로 승리하는 한주가 되기” 원합니다.
2. 나는 어려울 때, “어떤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가는가?” 이를 통해 내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본문에서, 우상숭배에 빠진 아하시야에게, 하나님의 책망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생각할수록 “아합과 그 아들 아하시야에게까지 가혹하고 거북한 책망의 말씀을 전하는 엘리야의 심정이 참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또 다른 위대한 순종의 모습이” 나옵니다. 당시 “아하시야의 사자들이 바알세붑을 찾아가는 중,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사자들은 “엘리야에게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서, 바알세붑에게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아하시야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당시 “아하시야 사자들은 생명을 걸고 이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았던 아하시야와 말씀에 순종하는 엘리야와 아하시야 사자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현대사회를 말씀의 홍수시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차에서, 산책 중에,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을” 듣습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활동이 어려워져서, 우리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말씀을” 듣습니다. 문제는 “말씀을 많이 들음보다,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꼭 물어야 할 질문이”이 있습니다. “나는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대로 얼마나 순종하며 살아가는가?”
삼상 1:17절은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합니다. 이는 “당시 대제사장 엘리가 한나를 축복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당시 엘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고, 두 아들은 불량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한나가 눈물로 기도할 때, ‘술을 끊어라!’ 말함은, 엘리가 그렇게 기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나가 하나님께 사무엘을 선물로 받은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엘리의 축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한 한나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많은 분이 “아프고 힘들 때, 주의 종에게 기도 받기를” 원합니다. 물론 “목사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의 기도보다, 받은 기도대로 순종하는 성도의 믿음이 더 힘이 있고” 강력합니다. 핵심은 “목사의 기도에 백번 ‘아멘!’하는 것보다, 오히려 한 번 순종함이 영적으로 나를 더 강건하게 하고, 내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이 매일 말씀을 읽고 듣는다면서 ‘나는 신실해!'” 자위합니다. 그러나 “많은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오히려 많이 읽고 들은 말씀이 내 의로움과 교만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말씀을 많이 들음보다, 들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기독교인에게 “백문이 불여일견은 백문이 불여일행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라!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많은 “신하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헛수고라며, 대부분 대충 일하다가”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한 신하만 왕의 명령대로 물을 길어다 붓고 또 붓자, 우물 바닥에서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음 날 “순종한 신하가 왕에게” 보고합니다. “도저히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큰 금덩이가 나와서 이렇게 바칩니다.” 이에 “왕은 정말 수고했다! 그 금덩어리는 명령에 순종한 그대의 것이다!”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똑똑한 체하며, 편안함을 찾다가 망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사람, 말씀대로 우직하게 순종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현실에 직면해 있지만, 우리가 다시 한번 확인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함과 간절함으로 듣는가? 그리고 들은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가?”
분명한 것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만큼만 내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최근 “성령께서 내게 반복하여 주시는 말씀, 부담되지만 꼭 감당해야 할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부터 순종해야!” 합니다. 문제는 “순종하지 않기에 길이 막히는 것이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앞서가셔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반복하지만 “순종하는 만큼만 내 믿음의 깊이요 그릇”입니다. 영적 점검!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는지 확인하며 한주도 은혜로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