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5월! “조선인 1033명을 태운 영국 상선이, 40여 일만에 멕시코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조선인 대부분은 성공 후 금의환향을 꿈꾸었지만, 실제로 그들을 기다린 것은 무더위와 낯선 풍토, 노예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인 노동자는 에네켄, 용설란으로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매일 “평균 17시간 가시가 가득한 용설란을 만지며 일해서,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어서, 일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지옥 같은 4년 계약이 끝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조선인은 절망과 포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멕시코에 정착했고, 후손들에게 한국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특히 “3.1 운동 때, 많은 멕시코 이민자가 재산의 1/20을 독립자금으로 기부하며, 극심한 어려움 중에도 능동적인 자세와 태도로 새로운 이민역사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최근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힘들고 버거워서, 곳곳에서 ‘힘들다! 못 살겠다! 큰일 났다!’ 한숨과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어려움과 고난보다, 이를 극복하려는 능동적 태도와 자세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450명 “바알 선지자가 온종일 제단 주변을 뛰놀고, 자해까지 하며 바알을 찾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나서서 제물을 잡고, 12개 돌을 세우며,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갈멜산 “전쟁까지, 선민은 바알 숭배와 영적 머뭇거림 때문에, 그 어려움이 날로” 깊어졌습니다. 이처럼 “깊은 영적 고난과 아픔, 머뭇거림에서 선민을 살려낸 것이 바로 엘리야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였습니다. 오늘 “우리 삶이 어려울수록, 더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모두가 처음 당하는 이 고난을 어디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코로나-19가 끝나면 생각하겠다!’ 말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입니다.

실제로 “고난보다 고난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기에, 지금부터라도 어려움을 대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와 태도를 연습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반드시 십자가 복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 태도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어려움을 이기는 능동적 태도로, 가장 먼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본문 30절에서 “엘리야는 백성이 가까이 다가오자,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수축하다! “와예랍페는 ‘병을 치료하고 고치다!’란 뜻으로, 그만큼 제단이 무너져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가장 먼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 주변에 12지파를 상징하는 돌 12개를” 쌓았습니다. 구약에서 “제단을 쌓는다는 말은 예배를 회복하다! 하나님을 다시 찾는다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영적으로 무너진 선민을 다시 세우기 위해, 정치와 경제를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예배 자세와 태도를 새롭게 하여, 극심한 영적 고난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에서 많은 것을 빼앗고 무너뜨렸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예배를 잃고, 예배드리는 태도가 변질되어 감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편재하기에, 온라인 예배와 현장예배 어디서나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문제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에”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고, 그 이후를 바르게 준비하려면, 무엇보다 내 삶에서 무너진 제단이 다시 굳건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어려워도! “제단을 다시 쌓을 때,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세겜에서 “야곱은 안정된 삶을 누렸지만, 점점 제단을 쌓는 삶을” 잃어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디나가 세겜 땅에서 치욕적인 일을” 당합니다.

게다가 “분노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족속을 몰살해서, 야곱은 세겜 족속의 복수가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창 35:1절에서, 벧엘로 올라가서 다시 제단을 쌓아라!” 명령하셨습니다. 당시 “두려웠던 야곱은 하나님 말씀에 다시 힘을 냈고, ‘그래! 다시 단을 쌓자!’ 능동적인 태도로,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움과 고난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 명령대로 다시 제단을 쌓으며” 일어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으려면, 예배에 소홀했던 모습, 예배를 멀리했던 모습을 온전히 회개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일부러 12개 돌을 취해서, 이스라엘 12지파 전부를 마음에 품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일부가 아니라, 12지파 전부가 영적으로 무너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림에서 너무도 멀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12개 돌로, 12지파 모두가 온전히 회개하며 다시 제단을 쌓기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 “예배가 무너지고, 여전히 어려움에 빠져 허덕이는 이유는 회개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은 “예배드리지 못함을 아파하지만, 실제 삶은 여전히 무너진 제단을 방관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내 만족보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만큼 깊고 온전해야 하고, 그래야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을 수” 있습니다. 일부 “생각나는 죄를 내려놓음보다, 마음 깊은 곳부터 무너진 영적 제단을 다시 쌓도록 내 심령을 다 비워내는 것이 회개”입니다.

어떤 여인이 “어릴 적 살아왔던 집을 사면서, 가장 먼저 우물을 복원하기” 원했습니다. 당시 “그 우물은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오물이” 가득했습니다. 인부들이 “우물에서 상당량의 오물을 제거했지만, 여인은 계속 ‘더 파달라!'” 요구했습니다. 마침내 “우물 밑바닥에서 주전자 하나가 나오자, 여인이 ‘이제 되었다!'” 말했습니다. 인부들이 “이유를 묻자, ‘우물을 처음 팔 때, 제가 그 주전자를 넣었는데, 그것이 나왔기 때문이다!'” 답했습니다.

이처럼 “회개는 내 심령의 오물을 파내다가 중간에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심령 가장 깊은 곳, 정말 밝히고 싶지 않은 아픔까지도 하나님께 다 내려놓는 것이 회개”입니다. 무너진 “제단은 내 결심과 각오로 쌓을 수 없고, 내 속의 깊은 죄를 온전히 비우려는 능동적 태도, 회개가 있어야, 다시 예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기독교인은 먼저 내 안에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나부터 “바르지 못한 예배의 삶을 회개하고, 다시 능동적 태도로 예배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한주도 “내 삶의 죄를 돌이키는 온전한 회개로 다시 제단을 쌓아가는 능동적 태도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2. 고난을 이기는 능동적 자세를 가지려면,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엘리야는 “바알 숭배로 영적인 암흑기와 같은 시대에, 한결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시대의 아픔과 어두움을 극복하려고 나서는 능동적인 태도가” 없었습니다. 오직 “엘리야만 바알 숭배를 이겨내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생명을 걸고 갈멜산 전쟁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목적은 “무너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당시 엘리야의 능동적 태도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선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선택함에”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선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코로나-19를 이기고 더 나은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우리 선택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삶의 어려움이 점점 기회로 바뀌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에게는 “두 자부, 룻과 오르바가 있었는데,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었지만, 오르바는 철저하게” 잊혀졌습니다. 이유는 “룻이 어려울수록 더더욱 하나님 기뻐하는 선택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룻의 베들레헴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시모를 돕고 하나님을 택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보아스와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선물로 받고, 아름답고 귀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룻의 능동적인 태도, 하나님 기뻐하는 선택이 그 인생은 물론 역사까지도 바꾸었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고난을 이기는 능동적 자세로 살아가려면, 지혜로운 선택이 반복되어, 거룩한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본문 34절은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하라! 그리하니, 또 그리하라! 같은 단어가 네 번 반복됨에 주목해야!” 합니다.

부족해도! “우리 각자가 하나님 기뻐하는 선택을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반복되면 생활이 되고, 생활이 반복되면 내 신앙 인격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선택을 계속 반복하는 능동적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습관과 버릇의 산물이기에, 아름다운 인생은 아름다운 습관이 계속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추한 인생은 추한 습관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속적 “문화, 거짓과 패역이 쌓여 습관이 되면, 그 삶이 어떻게 선할 수” 있겠어요? 반대로 “말씀을 가까이하고, 신실하게 제단을 쌓으며 기도하는 습관, 정직한 습관, 사랑하고 용서하는 습관이 쌓이면, 그 삶이 얼마나” 복되겠어요? 우리가 “어려움을 이기려면, 이제부터라도 능동적 태도로 선한 습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마귀는 “항상 조금 더! 나중에! 아직은! 망설이게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지금부터 선한 습관을 만들어가라!” 말씀합니다.

아직 “안 늦었기에, 기도하는 습관을 만들어가면, 내 삶은 세상의 어려움을 능히 이기고, 하늘의 은혜로 채워질 것”입니다. 아직 “안 늦었기에, 말씀 보는 습관을 지니면, 고난을 이기는 하늘의 지혜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안 늦었기에, 다시 제단을 쌓는 습관을 만들어가면, 내 인생과 가족, 교회 미래를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습관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만, 반복하고 반복하여 내 삶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편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제공하는 사역을 통해, 어려움을 이기는 능동적 자세,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가기” 원합니다. 매일 “접하는 한 소망 만나와 다니엘 기도운동을 통해,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으로 한 친구 찾아가기를 통해 전도의 습관을 만들어야 하고, 성경 필사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하고, 온라인 심방 카드를 통해 아픈 영혼을 돌보고 섬기는 습관도 만들어가야!” 합니다. 문제는 “기회가 분명히 있지만, 내가 고난을 이기려는 능동적 태도,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가려는 자세가 없음에”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어렵지만, 선한 습관을 만들어서 하나님 기뻐하는 선택으로 날마다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