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4일, 한국에서 대학 입학을 위한 수능 시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입장한 뒤, 많은 부모의 발걸음이 서둘러서 교회/성당/사찰로” 향했습니다. 자녀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부모는 교회/성당/사찰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당일 “대부분의 교회와 사찰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학부모들로 가득” 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도”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부모의 간절한 기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쩌면 모든 부모가 가진 공통점일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자녀를 위한 기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일서의 끝 절인 2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요한은 “본서의 수신자를 동역자와 제자가 아닌 자녀로”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녀들아! ‘테크니온’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테크니온은 “부모가 자녀를 향하여 가장 깊고 애틋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문제는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테크니온’을 무려 8번이나 쓰며 사랑을 표현했지만, 초대교회 성도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우상을 숭배하며, 요한이 전해준 복음과 영생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당시 “사도 요한은 이를 보고 마음이 심히 아팠을 것이고, 초대교회 성도를 위해 간절한 기도와 눈물로 본서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지난달 “각 교회학교 학부모와 화상 모임을 가지며 매우 반가웠지만 미안함이 더 컸고,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시 “학부모 대부분이 너무도 간절한 중보기도 제목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자녀의 신앙생활이 더 신실해지도록!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도록!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그만큼 “아이들이 영적으로 많이 나태해졌고, 규칙적인 생활방식마저 잃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겪고서 방학을 맞았기에, 더 영적으로 느슨해졌던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본인이 본이 되지 못해서, 자녀가 영적으로 나태해졌다!” 아파했습니다.

또한 “어떤 부모는 자녀가 대학에 가면서 교회를 등졌는데,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코로나-19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만, 우리 자녀의 영적 회복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크지만, 지금은 우리가 더욱 우리 자녀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부모인 “우리가 우리 자녀를 위해 정말 간절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항상 지켜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 유사한 말이” 반복됩니다. 전자인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초대교회 성도를” 뜻합니다. 특히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범죄 하지 않는다! 말하는데, 여기서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뜻합니다. 후자인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뜻합니다. 요약하면 “주님께서 주의 자녀를 지키셔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지키다. 테레오는 보호하다. 유일한 위탁물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초대교회 성도가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주님께서 그들을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 주시길 간절함으로 기도하며, 요한일서를 끝맺었던 것”입니다. 과거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골프와 자식이다.” 실제로 “어떤 부모도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오죽하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 했겠어요? 문제는 “자녀를 지켜 주는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유능한 부모도 자녀를 악한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우리 자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온전히 지킬 수 있기에, 우리 기도가 더 간절해져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부모가 장성한 자녀를 억지로 예배자리로 끌고 올 수 없고, 오히려 예배자리로 끌고 오면 부작용만 더 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우리 자녀가 영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항상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세상의 미혹과 우상 숭배를 분별하여 극복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유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만이 우리 자녀를 믿음 가운데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부모는 마음과 입술로만 기도하지 말고, 자녀에게 귀한 본을 보이며, 자녀를 지켜달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입술의 “기도보다 본을 보이며 드리는 기도가 우리 자녀를 더 굳건히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부모가 아들을 최전선으로 보내며, 네가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매일 새벽 5시면 우리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당부했습니다. 아들은 “최전선에서 힘들 때마다, 부모의 간절한 기도로 하루하루 용기를” 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새벽 5시에 보초를 서는데,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생각나서,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순간! “‘타앙!’ 적군의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당시에 “만일 아들이 무릎 꿇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위기”였습니다. 부모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보인 기도의 본이 아들을 살렸던 것”입니다. 세상은 “청소년기의 나태함과 방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지만, 모든 청소년이 다 그렇지!” 않습니다. 두렵지만! “부모가 바른 본을 보이지 못함이 자녀의 나태함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학부모 “기도회에서 몇 분의 말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우리 자녀가 교회의 분쟁을 본 후에 교회를 더 멀리해요!”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에서 어른들의 분쟁이 우리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영적으로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부터! 신실한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 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부터 주님을 본받으며, 영적 제자에게 바른 본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바울부터 본을 보이며 자신을 영적으로 지켰기에, 주변의 많은 영혼을 영적으로 지키며 살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부모가 자녀의 본이 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기에, 이제부터라도 부모가 본이 되려 노력할 때, 주께서 우리 자녀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더 깊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는 “지났고, 되돌릴 수 없지만, 이제부터라도 부모인 우리가 어떤 본을 보이는가? 노력 여하로 우리 자녀의 믿음을 지킬 수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인 “우리가 항상 본을 보이며, 간절하게 우리 자녀를 위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깊이 체험하기” 원합니다.

2. 우리 자녀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은 “본문 20절에서, 초대교회 성도에게 참된 지각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말합니다. 여기서 “지각! 디아노이아는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알게 하다. 기노스코는 체험적인 앎, 인격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초대교회 성도가 자기 자신과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우상에 빠짐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각이 없고, 진리이신 주님을 알지 못함에 있다!” 말했습니다.

요한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깊이 알았던 주의 백성들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보고, 눈물과 깊은 안타까움으로 기도하며 본 서신서를 적어갔던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죄인인 인간이 자기 혼자 힘으로 하나님을 지각하고 알아갈 수”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원하지만, 실제 삶의 방향은 죄를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통계자료는 2019년 모바일게임 시장 매출 규모가 685억 달러였다!” 발표했습니다.

지금도 “게임 시장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용자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모바일게임 인구가 무려 1억 4천만! 국민의 절반이 게임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인 1억 4천만 중, 우리 자녀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자녀가 게임과 신앙생활 중, 무엇에 더” 열광하나요? 또한 “우리 자녀에게 게임과 신앙생활 중, 무엇이 우리 자녀들에게 더” 유익할까요?

세상의 “부모 모두는 자녀가 게임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택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 자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면, 게임과 하나님 중 무엇을” 택할까요? 작은 불꽃 하나가! “유명한 복음성가 가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의 사랑 이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이처럼 “모든 부모의 공통된 기도 제목은 우리 자녀가 하나님 사랑을 반드시 경험하길, 지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구체적으로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을 지각하고 체험적으로 알기까지,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우리 아이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요! 말해도 안 들어요! 매일 싸워서 집안이 전쟁터에요!” 하소연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자녀와 갈등 중 지쳐서, 때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한탄하며 기도를 중단하고” 아파합니다. 마침내 “마음은 자녀가 하나님을 알아야 함을 알지만, 지쳐서 기도를 포기하고” 맙니다.

심지어 “많은 부모가 자녀의 내면에서 영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몰라서, 자기 기준대로 되지 않는다고, 먼저 기도를 포기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내 마음대로 안 되어 힘들수록, 더더욱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마음대로 된다면 아무도 기도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마음대로 안 되기에 더 기도해야 할 역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장 간절한 부모의 기도가 끊어지는데, 누가 내 자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겠어요? 마가는 “1차 선교사역에서 중도 포기하여, 훗날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에 실마리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초대교회 일꾼으로 힘있게 세워진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한 다락방을 제공한 마가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힘들다고 “중도 포기한 아들을 보고, ‘내가 잘못 가르쳤어!’ 자책도 컸을 것”입니다. 모두에게 “욕먹고 외면당하는 아들, 그래서 아파하는 아들을 보고, 엄마로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나 “어머니의 포기 없는 기도가 마가를 살렸고, 오늘날 마가복음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기도는 “절대로 쉽지 않고, 응답이 더딜수록 기도는 더 어려워지고, 소망보다 절망이” 커집니다. 그래도 “부모는 주님께서 우리 자녀를 만나주시길, 다시 예배를 회복하길, 주께서 항상 함께해 주시길,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가 “기도를 포기하면 소망이 꺼지지만, 다시 기도를 붙들면 자녀가 살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교회 모든 어른이 우리 교회학교 자녀들의 미래와 신앙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민자로 “바쁘고 분주하지만, 그래도 교회학교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절대로 느슨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에 대한 지각이 깊어지고, 어떤 풍파에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올여름에 우리 자녀들이 허송세월하지 않고,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부모의 포기하지 않는 기도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