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 아이들만의 책 “‘팬인가? 제자인가?’는 세상과 구별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도전합니다. 팬은 “어떤 팀과 선수를 열정적으로 좋아해서, 그 팀의 유니폼을 벽에 걸어두고, 자동차 범퍼에 스티커까지 붙이고 다니지만, 정작 팬은 경기에 나서지!” 않습니다. 또한 “팬은 좋아하는 선수에 관해 지식적으로는 잘 알지만,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팬은 “좋아하는 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응원하는 팀을 쉽게 바꾸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제자가 아닌 팬이 너무” 많습니다. 팬은 “원하는 대로 되면 열심이지만, 뜻대로 안 되면 상처받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버리기까지” 합니다. 팬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에 관해 지식으로는 잘 알지만,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자는 팬은 어디까지나 팬일 뿐이다!” 말합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 기독교인으로 자부하는 팬이 너무 많은데, 과연 나는” 어떻습니까?

어쩌면 “나도! 교회는 나오지만,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에 빠져서 살면서, 전혀 가책조차 없는 팬인지! 깊이 자문해야!” 합니다. 요한은 “본문 3절에서,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 계명은 절대로 무겁지 않다!”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 말씀이 무겁다며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너무 “쉽게 우상과 이단 철학에 빠져서 불신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초대교회는 세상과 다른 삶은 고사하고, 오히려 세상과 점점 유사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세상과 달라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함! “하나님 명령은 출애굽 선민은 물론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이 땅을 살아가는 내게도 주신 도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신앙인이 황금만능주의, 성공 지향 주의, 거대화를 꿈꾸며 영적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현대 교회는 복음을 잃어갈 뿐 아니라, 그 어떤 기관보다 더 이익집단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알면서 지키려 하지 않고, 갈등과 분쟁, 미움과 원망이 많은 교회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몇 달 만에 다시 예배와 사역을 재개해야 하는데, 이전과 분명히 달라야 하고 세상과 다른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교회와 기독교인의 삶이 과거는 물론 세상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게다가 코로나-19의 아픔까지 더해진다면, 그 악영향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부터 팬이 아닌 제자로,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보다 “나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세상과 달라야, 나와 가정,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에, 이 악한 세상과 다른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다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로 이 악한 세상을 이기는 삶입니다.

요한은 “본문 4절에서, 세상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일부가 아닌 모두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말합니다. 이긴다! “니카는 완전한 승리, 천국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요한을 통해 복음을 들었지만, 복음을 제대로 믿지 못했고, 마침내 세상에” 패했습니다. 이에 “요한은 본문 8절에서, 초대교회가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성령과 물과 피! 셋을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가 필요하다!”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매사에 가르쳐주고 생각나게 하시는 은혜로” 채우십니다. 또한 “세례받을 때 물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 삶에 풍성한 은혜를” 채우십니다. 요한은 “초대교회가 이단과 우상숭배를 이겨내려면, 다른 무엇보다 성령과 물, 피를 통한 은혜가 꼭 있어야 함을 도전”했습니다. 당시 “연약한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은혜가 있어야 세상과 달라질 수 있고,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를 포함한 현대인에게는 네 가지 굶주림이” 있습니다.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리에 대한 굶주림, 미움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에 대한 굶주림,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공의에 대한 굶주림, 실수와 넘어짐이 가득한 세상에서 용서의 굶주림” 여기서 “다양한 인간의 굶주림은 악한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많은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여전히 세상 것으로 내 삶을 채우려” 합니다. 여전히 “내 고집과 생각, 세속적 고집에 빠져 믿음과 점점 멀어지고, 제자가 아닌 팬이 되어” 갑니다.

마침내 “하나님 믿는 믿음까지 저버리고, 세상에 동화되면서도 아무런 가책조차”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한 번도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채, 여전히 세속적 사고와 내 고집으로” 살아갑니다. 심지어 “많은 신앙인이 세상과 다르게,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해 보지 않고, 영적 패배의식에 빠져” 살아갑니다.

믿음은 “내 고집과 세상 것을 내려놓음에서 시작되고,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를 체험해야 더” 깊어집니다. 믿음은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는 것과 비례하여 더” 신실해집니다. 요나가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가 있었지만, 자기 고집에 빠져 모두를 풍랑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거대한 물고기 뱃속에 갇혀 사흘 밤낮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 은혜가 채워졌을 때, 요나는 니느웨를” 살렸습니다. 인간의 “고집은 자주 문제를 만들지만,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는 항상” 옳습니다. 인간의 “고집은 후회가 많지만,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는 후회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잘 알면서도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보다 내 주장, 세상 상식을 더 깊이” 추종합니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국경 도시 펠드리히를 포위하자, 시가 비상 회의를” 소집합니다.

많은 “시민이 ‘도시가 폐허가 되기 전 항복하자!’ 말할 때, 한 사제가 일어나”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힘을 의지하면 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부활절인 오늘 예정대로 교회 종을 치고 예배를 드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펠드리히 “시민 모두가 이에 동의해서, 우렁차고 기쁨이 가득한 찬송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갔습니다. 당시 “프랑스 군대는 이 찬송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강력한 구원병이 왔다고 판단하여, 군대의 퇴각을” 결정했습니다.

펠드리히는 “상식과 현실의 어려움을 내려놓고,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로 승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은혜를 확신하는 영혼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영적인 승리와 자신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불과 “몇 달 만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서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더 간절히” 필요합니다.

최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도전과 자극, 은혜와 말씀을” 채우세요? 만일 “반복하여 채우시는 도전과 은혜가 있다면, 고집부리지 말고 이를 붙잡고” 순종하세요! 지금 “내게 채우시는 말씀과 은혜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채우시는 은혜와 확신으로 살아갈 때, 니카! 최종 승리가” 있습니다. 한주도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와 믿음으로, 팬이 아닌 제자로 세상과 다른 삶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2. 다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살려는 열정으로 날마다 믿음의 증거가 깊어지는 삶입니다.

요한은 “본문 9절에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주신 복음의 증거가 있다!” 말합니다. 문제는 “초대교회가 이 복음의 증거를 잃어서 불신에 빠졌고, 마침내 구원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본문 12절에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요한은 “죄인인 인간이 성자 하나님이 있어야 생명, 하나님 증거로 생명이 있고,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가 있다!” 말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하나님 증거를 상실하면서, 십자가 복음마저” 잃었습니다. 게다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죽어가는지도 몰랐고, 반드시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열정조차 빼앗겼던 것”입니다. 마침내 “초대교회는 세상과 너무도 유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증거를 오늘 우리가 쓰는 간증으로 바꿔” 봅시다! 간증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만난 표적과 경험으로, 내 신앙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오늘의 “문제는 평생 예수를 믿었지만, 직분은 있지만, 하나님께 받은 은혜, 나를 살려주신 은혜에 대한 체험, 살아있는 영적 간증이” 없습니다. 이유는 “제자가 아닌 팬으로 살아온 형식적 신앙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간증은 내가 영적으로 죽지 않고 반드시 말씀대로 살아내겠다! 어떻게 해서든 말씀대로 살아보겠다는 열정이 있어야,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전히 체험한 간증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단기 선교 참석자는 다시 단기 선교에” 동참합니다. 이유는 “선교 현장에서 하나님 사랑을 깊이 누리고, 자신이 영적으로 다시 살아난 간증 때문”입니다. 오지에서 “불편하고 힘들지만, 열악한 환경이 고되지만, 단기 선교를 통한 간증이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간증이 “나를 새롭고 바르게 살려는 도전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간증은 세상과 다르게 살아내려는 영적 뜨거움이 있어야 가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변덕으로 오락가락하는 신앙은 절대로 깊은 간증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린 매춘부였지만, 주님을 만난 후 암울한 삶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당시 “주님을 따를 때, 사람들의 수군거림, 무시와 외면, 배척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더는 세상을 어둡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다! 결단하고 바르게 살겠다는 열정으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침내 “그렇게 신실하게 살려는 열정 때문에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간증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간증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채우시는 은혜로 살아내려는 노력이 간증을 만들고, 그 간증이 내 삶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선한 싸움을 싸울 때, 세상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세상을 이기는 간증이 더 또렷해지고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1942년 “수많은 유대인이 가스실로 끌려가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조금이라도 건강해 보이고, 노동력이 있어 보이는 영혼만” 살렸습니다. 당시 “한 남성이 끌려와서 낡은 옷 한 벌을 받았는데 그 안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남성은 “어려서부터 암송한 말씀에 깊은 도전과 위로를 받았고, 삶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수용소 생활에 최선을” 다합니다. 매번 “배급받은 물의 절반으로 세수하고, 깨진 유리 조각을 주워 면도까지 하며” 버텼습니다.

마침내 “그는 살 수 있었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써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세계적 심리학자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입니다. 죄인이기에 “기독교인답게 살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야, 세상을 이기는 간증, 증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부족해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길 간증을” 주십니다. 그 간증이 “남은 내 삶이 어디로 갈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지! 바른 지혜를” 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간증, 증거가 넘어진 나를 세워주고,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할 힘을” 줍니다. 한주도 “우리가 되는대로 살지 않고, 바르게 살려는 결단과 간증으로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