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New Normal, 사회적 거리 두기, Untact, V 세대, Corona Blue!” 코로나-19 이후 “새롭게 바뀔 일상을 New Normal이라 부르고,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미 꽤 익숙해져!” 있습니다. Untact는 “실제적 접촉보다 비대면 문화를 뜻하는데, 악수 대신 목례, 온라인 예배, 온라인 모임 등이 그 구체적인 예”입니다. 또한 “Corona Blue!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도 계속 증가추세”입니다.
V 세대! “용감하고(Valiant) 다양하며(Various) 활기찬(Vivid) 청년층이 Virus 세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은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팬더믹인 코로나-19를 겪으며, 그 변화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울수록 더 바르게 믿어야 훗날 신실한 영적 유산을 남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선하고 복된 영적 유산을 남기려면, 세상의 변화가 빠를수록 더 불변하는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갈 때, 롯이 함께” 했습니다. 한때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부가 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이 소돔에 정착하며, 둘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브라함은 “타락하여 심판받게 된 소돔을 위해 하나님께 여섯 번 기도하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습니다. 반면에 “롯은 소돔에서 겨우 살아났지만,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과 더” 멀어졌습니다.
동시대에,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롯은 이방인의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둘의 “결정적 차이점은, 아브라함과 롯이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심히 달랐고, 당연히 남긴 영적 유산도 같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코로나-19의 재앙은 우리 개인의 삶은 물론 미국과 전 세계의 삶과 미래를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앞으로 일상생활과 신앙생활, 직장생활과 문화생활 등 모든 것이 다 바뀔 것”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를 살다 보면, 엄청난 변화로 인해 많이 놀라고 당황할 것이며, 새롭게 배워야 할 것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것이기에, 내 삶의 태도와 자세도 당연히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겁먹고 두려워하지 말고, 더 신실한 신앙생활로, 코로나-19 이후 바뀔 세상을 지혜롭게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어떤 믿음과 자세로 준비하는가에 따라, 내가 남길 영적 유산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 우리가 이방인의 조상이 아닌 믿음의 조상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믿음의 조상이 되려면, 우리 삶의 방향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의 심판 소식을 듣고, 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가갔습니다. 당시 “소돔의 심판이 임박했기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소돔 심판을 알릴 수 없었기에, 롯과 소돔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롯은 소돔이 심판받을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두 딸과 함께 살 수 있었지만, 세상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만일 롯이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하며 기도했다면” 어땠을까요?
만일 “롯이 소돔 전쟁 때, 318명을 이끌고 자신을 구해준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힘있게” 도왔을까요? 그러나 “롯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을 찾지 않았고, 소알조차 두려워서 작은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롯은 어려울 때, 삶의 방향성이 정반대였기에, 남긴 영적 유산도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어디를 무엇을 바라보는가! 삶의 방향성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눈이 위를 보면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지만, 아래를 보면 삶의 방향이 이 세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눈이 “긍정을 보면 긍정적 삶이 되지만, 부정을 보면 부정적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는 “물질과 명예, 권력과 자존심을 좇았던 내 삶의 방향이 얼마나 무익하고 어리석었는지” 책망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에서 의지하고 소중히 여겼던 것이 불과 몇 달 만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는 연약한 인간의 시각과 삶의 방향이 더더욱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함을” 강권합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이기에, 코로나-19를 겪으며, 절망하고 큰 상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롯처럼 계속 비관과 절망에 빠져 살아간다면,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말 지혜로운 영혼은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께 삶의 방향을 더더욱 깊게 고정”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도가 아브라함처럼 깊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삶의 방향이 고정되어야, 우리 삶이 아브라함처럼 다시 풍요롭게 회복될 수 있고, 악한 세상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바로에게 고백한 것처럼,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인 후, 20년 밧단아람 이민 생활이 힘들었지만, 하나님께 삶의 방향을 고정해서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세겜 땅에서 “디나가 추행을 당하고, 두 아들이 피의 복수를 자행한 후에도 야곱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힘들수록 더더욱 하나님께 삶의 방향을 고정해서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세겜의 공격을 믿음으로 이긴 후, 더 아름답고 풍성한 영적 유산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영적 유산은 “나의 치열한 노력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바르게 남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시다. 버거운 “이민 생활이지만, 하나님께 삶의 방향을 고정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이유라! 유명한 복음성가의 가사를” 소개합니다.
예수는 내 힘이요, 나의 기쁨 내 참 소망 그 이름의 생명이 내 삶의 이유라.
내가 사나 죽으나 그 이름을 위하여 내 모든 것 다 드리니 나를 받으소서.
오직 주만 따라갑니다. 오직 주만 높임 받으소서. 내 평생에 그 이름을 그의 선하심을 세상에 노래합니다.
그 이름의 크신 능력 영원한 생명이 내 삶의 이유라.
작년 5월 마지막 주일 “10년을 섬겼던 교회를 사임했는데, 참으로 많이 막막하고” 힘들었습니다. 심중에 “앞으로 사역을 할 수 있을지, 이 상처를 어떻게 이길지! 많이” 두려웠습니다. 당시 “매일 걸으며 들었던 ‘내 삶의 이유라!’ 이 찬양이 저를 많이 위로하고 세워” 주었습니다. 당시 “참 많이 힘들고 부족했지만,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가 사나 죽으나 그 이름을 위하여! 예수는 내 힘이요! 나의 기쁨! 내 참 소망! 이 고백이 저를” 살렸습니다.
코로나-19는 “엄청난 재앙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절대로 무기력하게 쓰러질 수” 없습니다. 힘들수록! “더더욱 주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삶의 방향이 주님을 향하면, 주님께서 나를 받아주고, 책임져 주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귀한 영적 유산을 남기도록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주도 “더더욱 하나님께 삶의 방향을 고정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귀하고 복된 영적 유산을 남기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믿음의 조상이 되려면, 어려움 중에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롯은 “소돔 심판을 겪은 후! 너무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롯이 소돔에 있던 그 많은 재산을 다 잃었기에, 망연자실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롯의 모습은 무기력을 넘어 절망했고,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소돔을 구해보려고, 하나님께 당돌한 질문까지 하며” 다가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십니까? 세상을 심판하신다면 정의로우셔야지요!”
그리고 “소돔을 위해 무려 여섯 번이나 간절히” 구했습니다. “만일 소돔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살려주세요! 45, 40, 30, 20, 10명이 있어도 살려주세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기도를 듣고도, 책망하거나 기막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내용을 읽을 때마다, 너무도 아쉽고 안타까운 질문이 계속” 제기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조금 더 구해서, 의인이 1명만 있어도 살려주세요! 매달렸다면” 어땠을까요? 아니! “만일 아브라함이 의인이 전혀 없어도, 무조건 살려주세요! 구했다면 하나님이 이를” 외면했을까요?
비록 “롯의 무기력과 포기보다 낫지만, 아브라함의 기도가 중간에 멈춤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여섯 번의 기도도 들으셨는데, 또 기도한다고 아브라함을 책망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분이 막막하고 힘들다!” 하소연합니다. 충분히 “롯처럼 낙담하고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과연 하나님은 어떤 자세를” 기뻐하실까요?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낙담과 포기에 빠진다면, 코로나-19 이후 희망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기 원한다면, 회복을 원한다면, 아픔이 클수록 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는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다시 열리지만, 포기하면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만, 포기하는 영혼을 억지로 강권하지 않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사고로 우유가 가득한 그릇에 빠진 후, 그 반응이 전혀” 달랐습니다.
한 마리는 “너무 쉽게 절망하고 포기해서 마침내 우유에 빠져 익사했지만, 다른 한 마리는 끝까지 살겠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수영하며” 움직입니다. 놀랍게도! “개구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면서 우유가 점점 걸쭉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굳어졌고, 마침내 딱딱한 버터로” 변해갔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포기하는 삶과 포기하지 않는 삶의 결과가 얼마나 다른지! 깊은 도전을” 줍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도 큰 위기지만, 오히려 포기하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포기하면 “그동안 내가 노력해온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포기하면 “앞으로 쌓아갈 모든 것, 가족과의 관계, 인간관계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믿음이 구원받기까지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기에, 포기는 구원마저 빼앗아” 갑니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고통이 아무리 커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도 중,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베드로는 “끝까지 큰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어려움에 부닥치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후! 베드로는 주도적으로 다른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신했고,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비록 “나중에 후회했지만, 너무 늦음을 알고, 자살로 그 삶을 비참하게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다는 버림받고 말았지만, 베드로는 쓰임 받았다!”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면목 없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성령까지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회개보다 자신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고, 마침내 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둘 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둘 다 포기한들 누가 뭐라고” 했겠어요? 그러나 “포기했는가? 포기하지 않았는가? 이로 인해 둘이 남긴 영적 유산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힘들수록! “우리는 포기는 하나님 음성이 아니라, 마귀의 음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건! 어떤 죄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만일 “지금 어렵다고 포기하면, 미래에는 더 쉽게 포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으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지만, 포기하면 이방인의 조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주도 “삶이 어려워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음으로 귀한 영적 유산을 남기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