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가 예배 중, 가장 차가운 바다가 무엇인지 묻고, 직접 썰렁해!” 답했습니다. 이어서 “가장 뜨거운 바다가 무엇인지 묻고, 사랑해! 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평소 남편과 소원해진 여 집사가 목사의 말을 집에서 인용하기로” 결심합니다. 귀가 후!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를 묻자, 남편이 몰라!” 답했습니다. 아내가 “썰렁해! 답했고, 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를 묻자, 남편이 잠시 생각하다가, 여얼.. 바다! 라고” 답했답니다.

우리 “인생은 조금만 방심하면, 소중한 것을 쉽게 잃어버리고, 나아지기보다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반면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퇴보를 넘어 전진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전진과 “나아짐은 인간적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나아짐과 “전진은 세상이 아닌 영적인 체험이 깊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온 성도가 한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떡을 떼는 기쁨이” 컸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미하고, 모두에게 칭송받고, 구원받는 자가 날마다” 더해갔습니다. 이유는 “본문 20절 말씀처럼, 초대교회에 기름부음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역동적인 초대교회가 사도들이 순교해 가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습니다. 게다가 “곳곳에서 이단과 적그리스도가 출연해서, 많은 성도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곳곳에서 거짓이 횡행했고, 심지어 하나님과 예수를 부인하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요한은 “당시 교회가 더는 퇴보하지 않고, 오히려 전진해야 했기에! 간절함으로 펜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도 “우리 삶에 다사다난! 여러 가지 일들, 어려움과 탈도” 많았습니다. 인간관계가 “끈끈하게 되기도 했지만, 관계가 깨지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아지길 원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올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다면, 내년에는 이전보다 나아지기 원하는 소망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새해를 주심은, 우리 각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송년 주일인 오늘! 올해보다 더 나은 새해가 되기 위해서, 퇴보보다 전진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봅시다.

1. 퇴보에서 전진으로 나아가려면,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대조적 단어들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쓰면서, 당시 시대적 상황을” 설명합니다. “나감과 속함, 진리와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부인과 시인!” 요한이 “이처럼 대조적 단어를 반복함은, 바른 분별력으로 더 나은 것을 선택하라는 도전”입니다. 특히 “본문 18절은,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말씀합니다.

요한은 “지금도 적 그리스도의 공격이 여전히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마지막 때이기에, 시간이 많지 않기에, 더욱 바른 분별력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바른 “분별력이 있어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이단의 공격을 이길 수 있고, 재림의 주님을 바르게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선택과 분별은 사소한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항상 눈앞에 있는 숙제”입니다. 실례로 “점심 메뉴부터 영생과 구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혹자는 “인류 최대의 고민이 자장면과 짬뽕 무엇을 선택할지에 있다!” 말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음식점은 짬짜면을 새롭게 개발해서 팔고”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생각할수록! 과거의 이 광고 문안은 정말 옳은 말”입니다. 이유는 “바른 분별력의 유무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삶의 모습은 과거에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던 기준, 분별력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바른 분별력으로 전진하려면, 항상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은 “초대교회 많은 사람이 분별력을 잃은 결과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보다 세상 철학을 좇아서 교회를 떠났고, 주님을 부인하였다!” 이미 “기름 부음의 은혜를 받았지만, 복음보다 세상 철학에 마음을 더 많이” 빼앗겼습니다.

바른 “분별력을 잃었기에 영적으로 흔들렸고, 교회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이 말씀 위에 바로 서는 삶은 너무도 중요한 영적 명제”입니다. 말씀만이 “인생의 등과 불이 되어서, 우리를 바른 분별력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왕들을 다윗의 길을 따른 왕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따른 왕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역대 “왕 중, 바른 분별력을 가진 왕은 다윗의 길을 따라서 국가를 선하게 통치”했습니다.

반면에 “분별력을 잃은 왕은 여로보암처럼 우상 숭배로 국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남 유다는 4명의 선한 왕, 아사와 여호사밧,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항상 바른 분별력으로 다윗처럼, 말씀에 기초하여 국가를 통치”했습니다. 특히 “말씀대로 유월절을 준수해서, 국가가 풍성하고 부강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생각과 사상은 우리를 선하게 이끌 수도 있고, 악한 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항상 나에게 바른 분별력을 주어서, 한결같이 선하게”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을 기초로 살아서! 삶의 방식부터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에이든 토저는 “내가 영적인지 세속적인지, 다섯 가지 질문으로 구별할 수 있다!” 말했습니다. “행복보다 거룩함을 추구하는가? 내가 받는 축복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림을 추구하는가?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잘못 살기보다 바르게 죽기 원하는가? 내 견해보다 성경을 따르는가?”

이 “다섯 가지는 말씀에 서 있는 사람만 바르게 답할 수 있는 질문들”입니다. 올해 “정말 수고하셨는데, 저는 여러분이 이 질문을 토대로 새해를 설계하기” 원합니다. 바른 “분별력으로 새해에는 행복보다 말씀에 기초한 거룩함을 추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받는 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부족해도 “십자가를 지고, 잘못 살아가기보다, 바른 죽음을 소망해야!” 합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울수록! 내 생각보다 성경의 교훈을 더 굳게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미혹하는 세속적 사고와 이단이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탈현대주의, 인본주의적 사고는 이미 도를 넘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과거 어떤 시대보다, 더 바른 분별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실제로 “세상 것을 다 소유해도, 바른 분별력을 잃으면 영생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성경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것은 놓쳐도, 성경을 토대로 한 분별력은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인생과 미래에 하나님 주시는 전진과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말씀에 기초한 바른 분별력으로 항상 더 나아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2. 퇴보에서 전진으로 나아가려면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 “이단은 공통으로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더럽고 죄인인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육신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초대교회 이단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이 가장 큰 사랑임을 몰랐고, 인간을 구원할 가장 온전한 공감적 이해자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거짓, 프슈도스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위조품, 모조품, 가짜를” 뜻합니다.

초대교회는 “진짜를 외면하고, 가짜, 모조품, 짝퉁 신앙으로 약해져” 갔습니다. 마침내 “많은 영혼이 영적 분별력을 잃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에게 집중하던 신앙이 세상 철학에 미혹을 받아서, 복음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에 “요한은 다시 교회와 성도가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만능이란 단어가 환영받았지만, 요즘은 특징 없는 모습으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진과 발전은 매사를 다 잘 하는 만능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함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악할수록! 우리는 진짜 하나님이신 예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유는 “가짜를 추종하면 내 신앙이 가짜가 되지만, 진짜 하나님을 추종하면, 내 믿음도 진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진짜와 가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올 때! “여성이 가방을 머리에 쓰면 가짜이고, 가슴에 안고 뛰면 진짜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내 신앙이 진짜이면 당당하지만, 가짜이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은 열매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진위를 논할 때, 자타가 공인한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참 하나님이고 인간이다. 그리스도이다.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절에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타(他)! 베드로는 행전 4: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말했습니다. 그 외에도 “역사에서! 세계 곳곳의 교회에서! 수많은 신앙인이 지금도 주님을 통해 구원의 확신, 전진의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 3:17절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자타는 물론, 하나님도 인정”하셨습니다. 결국 “진정한 전진은 세상 철학이 아닌 주님께 집중하는 신앙이 되어야 가능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켄 블랜차드는 “춤추는 고래의 실천이란 책에서, 위대한 사람의 공통점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모두 고집스러울 만큼 강한 집중력이 있고, 목표를 이루기까지 한눈팔지 않는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오늘날 “첨단 장비를 가지고도 힘든 여정이었기에, 당시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을까요? 당시 “어떤 기자가 어떻게 그렇게 높은 산을 정복할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힐러리 경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한 걸음 한 걸음 집중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저도 중간에 장애물이 많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집중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답했습니다.

우리 “삶이 퇴보하는 이유는, 내 삶이 집중력을 잃고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집중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삶의 응집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기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 집중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삶의 장애물이 아니라, 장애물에 집중력을 빼앗기는 약함에” 있습니다. 2020년도 “올해처럼, 생각지 않은 문제, 다양한 문제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눈앞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 집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힘들어도 “멈추고 포기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께 집중해서 나가는 영혼을,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2020년! “우리가 세상보다 주님께 집중해서, 퇴보가 아닌 전진하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