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세 마디 말이” 있습니다. “다 그런데 뭐! 나 하나쯤이야! 다른 사람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뭐!” 반면에 “미래를 희망차게 하는 세 마디의 말도” 있습니다. “다 그래도 나는! 나 하나만은! 다른 사람은 하지 않아도 나는!” 짧지만 “이 글은 읽을수록 다시 한번 내 삶과 태도를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게 하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1년 신년 주일! 여러분의 입술과 심령에 어떤 세 마디 말이 더” 많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이전보다 더 나아지고 성장하기” 원합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경험이 많을수록 더욱 나아짐과 성장을”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 대다수가 나아지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이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아니! “사실은 누구나 나아지고 성장하는 방법을 알지만, 자기를 바꾸지 않아서, 항상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신앙인은 주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더 나아지고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갑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자기 삶의 두 가지 정황을 소개하며, 그중에 받은 하나님 은혜를 간증”합니다. 다윗은 “과거 어떤 사건을 겪으며,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었습니다. 기가 막힌! “원어는 ‘끔찍하다. 소름 끼친다.’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다윗은 웅덩이와 수렁! 유사한 단어를 반복하여, 자신이 겪은 고난과 역경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던 다윗을” 구하셨습니다.

그렇게 “위기에 빠졌던 다윗의 인생을 반석 위에서 힘있게 걸어가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새해를 맞은 오늘 우리의 상황과 기도 제목을 잘 대변해” 줍니다. 우리는 “2020년, 너무도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서 많이 힘들고 어려웠기에, 2021년,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끌어 올려주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우리 각자를 끌어 올려서, 견고한 반석 위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2021년 교회 표어를 ‘견고한 반석 위를 걸어서!'”로 정했습니다. 더는 “우리 성도들이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지 않고, 더는 기가 막힌 현실에서 아파하고 눈물 흘리지 않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신년 주일! 우리가 견고한 반석 위를 걸어가려면 무엇을 꼭 기억해야 할지!” 살펴봅시다.

1. 견고한 반석 위를 걸어가려면, 내 삶이 먼저 견고한 반석 위에 서야 합니다.

다윗은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구원받은 후, 받은 은혜를 이렇게” 간증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발을 반석 위에 서게 하셨다!” 여기서 “반석, 쎌라으는 큰 돌, 큰 바위를 뜻하는데, 이는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고, 위협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호와 막아주심, 은혜와 사랑을” 상징합니다. 생각할수록 “연약한 내 인생에 가장 견고한 반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뿐”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이 어제와 오늘, 내일,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보호하고 막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가 2020년의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먼저! 견고한 반석이신 주님 위에 서야!” 합니다. 주님만이 “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나를 누구도 위협할 수 없도록 지켜 주시고, 도우시고 세우실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가 웅덩이와 수렁에서 나오기 원하면서, 반석이신 주님 위에 서지 않고, 여전히 세상에 서서” 살아갑니다. 심지어 “서지 말아야 할 곳, 서면 안 되는 곳, 반드시 피해야 할 곳에 설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만, 반석이 아닌 모래 위에 서서 살아가기에, 쌓았다 무너지는 삶을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새해를 허락하심은 아직 늦지 않았고, 다시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주님! 가장 견고한 반석 위에 서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 명예와 성공, 모두 다 너무 빨리 지나가고, 쉽게 잃을 수 있고, 신뢰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건강과 젊음의 경우도, 나이가 들수록 모두가 평준화되어 감을” 아세요? 사람이 “50대가 되면, 공부를 많이 하나 적게 하나 지식의 평준화가” 일어납니다. 60대가 되면 “외모의 평준화, 젊었을 때 미모는 아무 소용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반석에서 멀어지고 벗어나면, 절대로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선민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타락할 때,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선민은 모세를 기다릴 인내심이 없어서, 아론을 부추겨서 금송아지를 만든 후 하나님이라 불렀고, 순식간에! 그동안 받아왔던 은혜를 모두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아론과 선민은 반석이신 하나님을 벗어나서 타락했지만, 모세는 반석 위에 서서 그 믿음이 더 굳건해질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반석 위에 서 있는 삶! 반석 위의 삶은 주님을 가장 신뢰하는 삶”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신뢰하는 만큼 열심히 쫓아가고, 신뢰하는 만큼 소중하게 여기며”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석이신 주님 위에 서지 않고 살아간다면, 이는 그만큼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주님만이 반석이라고 하지만, 실제 삶은 세상과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삶과 미래가 더 나아지고 성장하기 원한다면, 2021년! 우리 각자가 다시 반석 위에 서야!” 합니다. 20세기 초 “미국 대공황 때, 텍사스 뉴런던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뉴런던의 경제 불황이 해소되어 거리마다 새 자동차가 넘쳐나고, 은행에 돈을 저축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다 좋아 보였지만, 문제는 공황 중에 그토록 간절했던 신앙이 점점 느슨해져서, 주일과 수요일에 교회가 텅텅 비고, 기도 소리도 점점” 줄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뉴런던에서 석유로 얻은 재정으로 신축한 학교에서, 가스 누출로 인한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뉴런던의 가정 대부분이 아픔을 겪으면서, 다시 영적인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회개하며 교회로 몰려왔고, 가정마다 예배와 기도 소리가” 회복되었습니다. 짧지만 “이는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이 어디에 서야 할지, 내 반석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바르게 구분하고 살아가야 한다! 큰 도전을” 줍니다.

2021년 “첫 주일! 내가 반석이신 주님 위에 설지, 무너져가는 모래 위에 서서 살아갈지, 이는 내가 선택해야 하고 그 책임까지도 내가 져야!” 합니다. 부족해도! “내가 반석이신 주님 위에 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2021년 “한 해도! 한 소망 교회와 우리 각자가 반석이신 주님 위에 굳게 서서, 더 나아지고 성장해 가기를” 원합니다.

2. 견고한 반석 위를 걸어가려면, 내 삶이 정체되어 있지 말고 앞으로 걸어나가야 합니다.
다윗이 “본문에서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을 받은 후, 고백하는 두 번째 간증이” 있습니다.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다.” 여기서 “걸음이란 단어는 정체된 상황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전진을” 뜻합니다. 또한 “견고하게 하다! 원어 쿤은 ‘확립하다. 건립하다!’란 뜻으로, 흔들리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역동적 모습을” 강조합니다. 당시 “다윗은 구원받은 후, 그 삶이 반석 위에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갔습니다.

당시 “다윗이 스스로 자기 걸음을 견고하게 할 수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도록 이끄셨다는 간증”입니다. 2021년 “우리 한 소망 교회와 모든 성도의 삶이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반석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전진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 “한 소망 교회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가 걷는 걸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키심으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기뻐하는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길” 축복합니다.

생각해 보면 “2020년! 우리는 반석은 고사하고, 어디에 어떻게 빠질지 몰라! 전전긍긍할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전진은 “고사하고, 작은 외출은 물론 움직이지도 못하고, 답답함에 갇혀” 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분이 그렇게 정체됨이 습관으로 굳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욕과 열정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이, 변화산의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이 자세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굳건한 반석 위에 서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디슨은 “평생 1033개의 발명품을 남겼는데, 어느 것 하나도 하루아침에, 그리고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실패 후 또 일어나서 나아가고, 실패 후 또 일어나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명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는 중! 선원 대부분이 폭동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아무리 가도 보이지 않는 신대륙! 무얼 하려고 계속 가는가? 돌아가자!” 그러나 “콜럼버스는 낙담하지 않고, 계속 선원을 독려하며, 앞으로, 앞으로, 믿음을 가지고 전진했고, 마침내 신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전진에 “관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명언이” 있습니다. “날 수 없다면 뛰어라. 뛸 수 없다면 걸어라. 걸을 수 없다면 기어라. 무엇을 하건 앞으로 나아감을 멈추지 마라.” 문제는 “그냥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2021년! “우리가 반석이신 주님 위에서, 말씀 붙잡고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반석 위에서 전진하려면,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접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안 봐도 되는 것, 보지 말아야 할 것, 안 들어도 되고, 듣지 말아야 할 것에 마음을 빼앗겨”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복되어 더 나아지려면, 주님께서 보여주고, 들려주고, 말씀하는 대로, 주님 뒤를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 15:6절에서,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영혼이 500명이나 된다!” 말합니다. 문제는 “500명이 주님의 부활을 직접 보았지만, 마가의 다락방에는 120명만”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380명은 그 큰 은혜를 입고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영적 성장을 잃고 정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120명만 반석이신 주님 위에 서서, 주님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지만, 380명은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뒤따르는 삶, 반석 위에 서는 삶은 나와 내 가족의 장래를 더 선하고 복되게 만들어” 줍니다. 문제는 “과거에 내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았는가? 몇 대를 믿었고, 어떤 직분을 가졌는가? 이보다, 지금 내가 반석 위에 서서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가? 이것이 내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금 “우리 각자가 진심으로 나아지고 성장하길 원하고, 정체와 후퇴를 멈추려면, 반석이신 주님 위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뒤로 물러서는 삶, 쟁기를 쥐고 뒤를 돌아보는 인생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성경과 역사를 보아도 정체된 영혼은 한 번도 제대로 쓰임 받은 적이 없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021년! “우리가 세상이 아닌 주님 위에 서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뒤따르며, 매일 더 전진하고 성장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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