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3-08 “웨슬리가 대서양을 건너 조지아로 향하는 중, 큰 풍랑을 만나자 너무도 두려웠는데, 놀랍게도! 함께 탄 모라비안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찬송하며 평안해” 보였습니다. 웨슬리가 “풍랑 중 평안한 이유를 묻자, 모라비안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알고, 예수도 우리를 압니다. 그분이 함께하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훗날 “또 다른 모라비안 슈팡엔부르그의 네 가지 질문도 웨슬리의 삶에 큰 영적 도전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마음속에 증거가 있나요? 당신은 예수를 아나요? 예수께서 당신을 구원하심을 믿나요? 당신은 스스로 죄인임을 아나요?” 당시 “웨슬리는 8년 전에 안수받은 성공회 사제였지만, 구원과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삶에 무엇인가가 있고 없고는 숨길 수 없는데, 이는 부활을 체험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같은 교회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부활에 대한 체험적 신앙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본문은 “초대 교회에서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두 그룹의 차이점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성령을 체험한 120명과 부활을 목격한 500명은 부활을 정의하는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혹자는 부활의 증인답게 살아서 그 삶이 인정받았고, 혹자는 그렇지 못한 삶으로 책망받으며, 오명만”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보고 듣고 끝난 500명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던 120명을 본받아야!” 합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팬더믹의 고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신이 “확장되고 있지만, 언제 이 어려움이 끝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우리는 형식적인 신앙을 극복하고 굳건한 부활 신앙, 환난과 어려움에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부활이 무엇인지 그 정의보다, 부활을 믿고 체험해서, 그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부활의 능력을 바로 알고 체험한 삶이 어수선한 이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더 힘있게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부활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부활을 체험한 삶”입니다. 2021년 “부활주일! 부활을 체험한 영혼의 삶이 무엇인지, 나의 삶은 어떠한지!” 살펴봅시다.

1. 부활을 체험한 영혼의 삶은 매일 은혜로 살아갑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그 후 40일간 이 땅에서 사역하다가, 제자들이 보는 중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실제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주께서 돌아가신 유월절과 50일의 시간 차이가 있기에, 사도들은 약 40일간 주님과 동행한 후, 약 10일가량 매일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주님의 사후에 낙담과 좌절이 적지 않았지만,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기도와 말씀,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갔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하나님 은혜로 다시 기도하며 말씀을 기억해 냈고, 성령을 체험한 후, 다시 사명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500명이 부활을 목격했지만, 그들 모두가 은혜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오직 “120명만 은혜로 살아서 성령을 체험했고, 그 인생이 온전히 거듭나서 땅끝까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상식과 과학으로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초자연적 은혜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악한 세상에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은혜로 살아가지 않고 세속적으로 살아가기에, 부활에 관한 확신도 점점” 잃어갑니다. 당시 “사도들은 은혜로 살아가려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습니다. 행전 1:13~14절은 “사도와 주님 가족 여러 형제자매가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말씀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귀한 도전이” 있습니다.

먼저 “120명 성도는 기도하며 은혜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과거 “항상 ‘누가 큰지!’ 다투던 제자들이 기도하며 은혜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여전히 박해와 핍박이 있었지만,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로 은혜의 자리를 지켜서, 더는 흔들리지 않고 영육이 굳건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아도 이를 지켜내지 못하면, 인간은 매번 부활 신앙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 선물이지만, 이를 받고 누리며 지키는 것은 철저히 내 몫”입니다. 최근 “우리가 힘들고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쉽게 넘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핵심은 “할 수 있고, 해야 함을 알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려 가기에, 우리가 점점 은혜와 부활 신앙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천사의 목소리는 어떨까?'” 연구했습니다.

우리는 “천사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례로 “천사는 롯에게 소돔을 빨리 떠나라고 재촉했고, 기드온에게 용기를 내서 힘써 미디안과 싸우라고 명령했고, 엘리야에게 힘을 내서 음식을 먹으라고 강권했고, 투옥 중인 베드로에게 빨리 잠에서 깨라고” 명했습니다. 이처럼 “천사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지키라고 재촉하고 명령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마침내 “천사의 목소리는 항상 말씀을 듣고 믿음을 지켜서 은혜받아야 함을 도전했기에, 항상 강하고” 엄했습니다. 오늘도 “성령은 연약한 나에게 ‘일어나라, 서둘러라, 힘을 내라, 용기 내라!’ 말씀하는데, 이 말씀에 순종할 때, 내가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힘써서 지켜야 할 것보다, 안 지켜도 되는 무의미한 것을 지키려고 힘을” 씁니다. 부활 신앙은 “내 믿음을 지키려는 열정의 깊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히 11장은 “초대 교회에서 믿음을 지켰던 성도의 삶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도가 “부활의 복음을 지키려고 조롱과 채찍질, 결박과 투옥, 심지어 톱으로 켜는 박해를 받았고, 곳곳에서 유리하며 궁핍하고, 토굴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세상 누구도 그들의 믿음과 은혜, 부활의 복음을 지키는 열정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올해 “부활주일, 하나님은 힘든 현실이지만, 우리가 말씀 붙잡고 믿음을 지키며 은혜롭게 살아가라!” 도전합니다.

이유는 “지금의 고난이 끝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더 나은 내일, 다가오는 역전과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은 “주의 재림까지 반복되겠지만, 선한 싸움을 싸우며 말씀을 지키는 삶, 은혜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삶은 매일” 필요합니다. 비록 “세상의 도전과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더욱 말씀 붙잡고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한주도 “우리가 주신 말씀을 지키며 부활의 은혜를 체험해서, 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기” 원합니다.

2. 부활을 체험한 영혼의 삶은 매일 성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행전 1:12절은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말씀합니다. 당시 “사도를 포함한 120명은 주님의 승천 후 예루살렘에 모여서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고전 15:6절은, 500명이 일시에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지만, 이들 중 대다수가 세상으로” 흩어졌습니다. 핵심은 “성전 중심으로 산 삶과 성전을 떠난 삶이 남긴 열매가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부활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성전 중심의 삶은 항상 성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성전에서 받는 은혜와 영적 능력으로 우리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전 중심으로 살아가려면, 지금보다 하나님과 교류가 더 깊어져야!” 합니다. 누가는 “120명 성도가 성전 가까운 곳에서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과 교류가 더 깊어졌다!” 말합니다.

당시 “사도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서, 성전 가까운 곳에서 매일 하나님께 더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교류가 깊어지면서, 받는 은혜 역시 깊어졌고, 선택과 판단, 생각과 삶의 기초가 부활 신앙으로 다져졌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형식적 신앙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깊지 않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언급하는데,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그저 명맥만 유지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팬더믹을 “겪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점점 더 얕아지고 소원해짐을” 절감합니다. 물론 “팬더믹으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이 크지만, 과거보다 하나님을 찾고 말씀 앞에 서는 횟수가 줄었고, 기도와 헌신도 많이” 줄었습니다. 문제는 “아닌 줄 알고, 이래서는 안 된다 생각하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며, 하나님께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연약한 인간이 생존에만 힘쓰고, 하나님과 교류가 줄어가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 때, 많은 사람이 금을 캐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향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하루속히 가서 더 많은 금을 캐겠다는 일념으로, 말이 지쳐서 쓰러질 정도로” 서둘렀습니다. 문제는 “너무 급해서 병이 들어갔고, 점점 전진속도가 느려졌고, 마침내 목적지에 이를 수조차” 없었습니다. 반면에 “청교도는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으로 서부로 향하며 6일을 열심히 가고, 주일에는 예배드리며 하나님과 깊이 교류하며, 안식을” 취했습니다.

마침내 “서부 개척자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힘들수록 “성전 중심의 삶, 하나님과 깊이 교류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류함이 바쁜 세상에서 늦어 보이고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내 힘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는 힘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어려움에서 부활을 체험하려면, 다시 일어나서 힘있게 살아가려면, 먼저 하나님과 교류가 더 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류가 깊어져야, 나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고,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생각나게 함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류가 깊어져야, 내가 어떤 일을 계획해도, 주께서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삶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잘 되면 잘 된다고, 하나님과 교류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삶의 다양한 어려움을 열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드린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과 깊이 교류하는 영혼을 절대로 외면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멈추었을 때, 그는 정욕과 쾌락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더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마침내 거룩한 성전에서 우상을 숭배하기까지” 했습니다. 훗날 “솔로몬은 그토록 많은 것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교류가 끊어져서 모든 것이 헛되다! 한탄하며 생을” 끝냈습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체험하려면, 무엇보다 다시 성전 중심의 삶, 하나님과 더 깊은 교류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을 정도로 언제나 한결같으시기에, 나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렇게 “성전 중심의 삶이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류가 깊어질수록, 우리 삶은 매일의 아픔을 이기고 더 나아질 것을” 믿습니다. 2021년 “부활주일, 성전 중심의 삶을 회복해서, 부활의 삶을 체험하고 누리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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