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도축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돼지가 좋아하는 콩을 도살장까지 쭉 뿌려 놓으면, 돼지는 콩을 주워 먹다가 도축장 안으로 들어옵니다. 돼지는 ‘사람이 왜 콩을 주는지, 이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눈앞에 있는 콩을 주워 먹는 것에 마음을 다 빼앗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돼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리석은 돼지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을 천국 백성이라고,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지만, 우리는 더 멀리 보지 못하고 매일 땅의 것에만 집착하고 살아갑니다. 지금 눈앞의 분노, 상처, 아픈 감정, 이익, 명예, 편 가름 등에만 집중합니다. 마침내 더 멀리 보고 누릴 수 있는 특권과 사명을 외면하고, 한 번뿐인 인생을 허송세월하며 낭비합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났지만, 모두가 바울의 회심과 변화를 안 믿었고, 마침내 길리기아 다소로 낙향하여 10여 년을 칩거해야 했습니다. 당시 바울의 심정을 생각하면, 유대인과 기독교인 모두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배척할 때,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그 10여 년의 칩거 때, 눈앞의 억울함이 아니라, 멀리 보았고, 불완전한 사람의 대응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았습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눈앞보다 영원을 보았기에, 사도 바울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기독교인의 덕목으로 사랑과 믿음은 물론 소망도 꼭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소망은 지금 눈앞이 아니라, 더 멀리, 더 온전한 것, 더 높이, 더 깊게 보는 영적인 시각을 의미합니다. 최근 외적으로는 코로나바이러스, 독감, 그리고 불경기 등으로 힘들고, 내적으로는 육체적 질병, 경제적 문제가 나를 짓눌러도, 좀 더 멀리 보고, 좀 더 온전한 것을 보고, 안 보이는 하나님 은혜를 보고 힘을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