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인비는 “역사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삶인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는 소중한 보고”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 마음을 닫으면 나와 무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내가 어떤 자세를 가지는가? 이를 통한 도전은 역사뿐 아니라, 성경의 교훈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밤! 체포되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주님은 진심으로 십자가의 고난이 지나가길 간절히 소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한 세 제자는 이에 너무도 무관심했고, 주님께서 세 번이나 깨워야 할 정도로 깊이 잠들고” 말았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너무도 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님의 기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 뜨겁고”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간절한 기도와 달리! 유대인과 로마 군인은 주님을 잔혹하게 끌고” 갔습니다. 당시 “주님은 충분히 그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지만, 무저항 비폭력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마치! “101년 전, 한국에서 있었던 3.1 운동과 너무도 유사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3.1 운동을 시작한 101주년이지만, 우리에게 101년 전, 일어난 3.1운동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일 뿐, 큰 영적 도전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3.1운동을 살펴보면, 그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 메시지가 참으로” 큽니다. 실제로 “3.1운동은 철저하게 기독교인이 주축이 되어서 주도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101년 전! 3.1운동을 통한 영적 교훈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3.1운동 기념 주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을 함께” 살펴봅시다.
1. 하나님 백성은 항상 평화를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세 제자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일부러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깨어 있으라! 말씀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세 제자가 무기력했다면, 주님이라도 더 강하게 유대인과 로마 군인에게 대항해야!” 했습니다. 당시! “주님은 마 26:53절에서! 열두 군단의 천사! 로마 편제로 1군단이 6,000명이기에, 72,000명의 천사를 부를 수 있다!” 말씀했습니다.
만일 “하늘의 천사 72,000이 내려와서 로마와 전쟁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당연히 “성경의 예언이 달라지고, 폭력으로 인해 평화가 깨졌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생각지 않은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천사와 함께 유대인과 로마 군인을 공격한다면! 감정적으로는 시원했겠지만, 구속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과정을 인내하시며 인류 구원을 위해 평화적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101년 전! “3.1운동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저항으로 일관하신 주님과 너무도 유사”합니다. 일견! “답답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주님은 평화적으로! 폭력과 박해를 극복”하셨습니다. 3.1운동은 “일본의 식민통치와 무단통치, 경제적 수탈과 문화적 억압을 약 2개월간 무저항으로, 만세운동으로 전개한 운동”입니다. 당시 “1,700만 인구 중 기독교인이 1.3%였지만, 만세운동의 30%가 기독교인이었고, 체포와 투옥된 인사 22%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이 독립선언서를 전국에 흩뿌렸고, 민족 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이 16명”이었습니다. 또한 “3.1운동 때! ‘독립단 통고문’이란 글은 만세운동이 얼마나 평화적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어떤 일이든 일본인을 모욕하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고, 주먹으로 때리지 말라! 이는 야만인이나 하는 바니, 독립의 주의를 손상할 뿐이니 주의하라!” 당시 “만세운동을 통해 많은 영혼이 사망하고, 다치고 폭행당했지만, 철저하게 평화적으로” 응했습니다.
그래서 “3.1운동은 세계 곳곳에서 강대국에 시달리던 여러 국가의 평화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20년!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도 3.1운동의 영향이” 컸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3.1운동은 참으로 답답하고 억울한 운동”입니다. 그렇게 “한국을 괴롭히고 짓밟았던 일본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고, 오히려 평화적 대응으로 더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3.1운동은 더 많은 열매를” 남겼습니다.
현대는 “평화보다 폭력! 합법보다 불법! 온유함보다 악착같음이 더 환영받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3.1운동을 통해! 세상과 다르게 평화를 추구하고, 더 많이 참고 인내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비록 “억울하고 답답해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는 평화적이고 온유한 방법으로 세속적 방법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평화는 “내 생각과 계획으로 지킬 수 없고! 오직 하나님 마음을 품을 때만 지켜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 마음보다! 내 생각과 감정, 억울함과 아픔, 편견과 고집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평화보다 갈등과 분열, 상처가 더” 많습니다. 실제로 “하나님 마음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은 그 열매가 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계산적이었던 롯보다 하나님 마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에게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감정적인 형들보다! 하나님 마음으로 용서하고 품어준 요셉을 더 위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공격하던 유대인보다! 하나님 마음으로 인내하며 헌신한 바울을 더 크게” 쓰셨습니다. 3.1운동 “101주년인 오늘! 우리는 과거 믿음의 선진처럼! 힘들고 억울해도! 내 뜻보다 하나님 마음으로 평화를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나를 더 복되게 하시고, 더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이번 한주도 3.1운동의 영적 도전! 겟세마네의 주님처럼 평화를 전하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하나님 백성은 항상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힘들었지만! 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눅 22:43절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말씀합니다. 당시 “같은 기도가 세 번이나 반복되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심은 그만큼 주님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눅 22:44절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땀이 핏방울이 됨은! 간절한 기도로 주님의 모세혈관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기도로 무장되셨기에! 참혹한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성자 하나님은 물론 모든 성도에게 큰 능력과 힘을” 주었습니다. 문제는 “모든 성도가 기도의 능력은 알지만! 실제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3.1운동은 철저하게 기도로 시작되었고, 특히 ‘독립문 통고문’이란 만세운동 행동강령은 기도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세운동에 참여하려면 매일 세 번 기도하고 참여하라! 특히 주일은 금식 기도해야 하고,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월요일은 사 10장, 화요일은 렘 12장, 수요일은 신 28장, 목요일은 약 5장, 금요일은 사 59장, 토요일은 롬 8장을 읽고 만세운동에 참여하라!” 이처럼 “3.1운동은 세상의 의협심이 아니라 기도로 무장되어 전개된 사건”이었습니다. 매일 “말씀 묵상과 매일 기도로 무장되어 국가를 위해 생명을 걸고 나섰던 영성운동”이었습니다.
당시 “3.1운동 참석자는 대충 되는대로 기도하기보다! 간절함과 뜨거움으로 기도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는 일본의 국권침탈 전후로 국가를 위한 기도가 참으로 간절하고” 뜨거웠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이 을사조약(乙巳條約)이란 말 대신에, 일본이 힘으로 이 조약을 체결했기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란 단어를 더 많이” 씁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을사늑약 전부터! 국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3.1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마침내 “기독교인의 간절한 통곡과 탄원이 섞인 통성기도가 새벽예배와 철야 예배에”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며, 생명을 걸고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의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기도로 준비하고 만세운동을 추진했기에! 3.1운동은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지만, 현대 성도는 주님처럼! 3.1운동 참석자들처럼! 간절하고 뜨겁게 기도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힘들고 “죽겠다고 하소연하지만! 기도를 잃어버리고, 점점 기도와 더” 멀어집니다.
중요한 “일을 기도보다 혼자 결정하고, 통계와 사람의 말을 더 의존”합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기사와 제보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엎드려야!” 합니다. 실제로 “기도가 제일 나중인 안일함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유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기도 없이 추진한 일은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언제나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고 순종함에” 있었습니다.
출정 전. “적을 추격할 때! 사소한 일도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습니다. 실제로 “기도 없이 행한 밧세바 사건, 인구 계수만 큰 실패로” 남았습니다. 이처럼 “다윗과 주님도 간절히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처럼 “어수선하고 불안할 때일수록!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기도는 “한 사람의 인생과 질병,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라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3.1운동 참석자처럼! 주님처럼!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순절 “첫 주를 맞이하며, 주변에 코로나바이러스 등 많은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불안이 가중되고 있지만, 한주도 신앙인답게 간절한 기도로 승리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