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밤 9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1차 TV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망가진 지금, 앞으로 4년간 미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아야 하기에, 모두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두 후보는 정책과 비전을 소개하기보다, 인신공격과 말 끊기 등으로 토론을 마쳤습니다. 많은 언론과 SNS는 아이들과 TV 토론을 보다가 TV를 껐다고 합니다. 이유는 대통령이 되려는 결과에만 집중하여 그 과정이 너무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리더를 자처하면서, 자녀들과 함께 관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그 과정은 절대로 아름답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꿩 잡는 게 매다!’ 결과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결과만 본다면, 주님의 십자가는 실패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역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회 최하층이나, 반역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는 십자가에서 너무도 무기력하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으신 책, 이 땅의 삶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무기력한 십자가 죽음, 결과보다, 십자가 죽음을 택하신 이유, 십자가 죽음까지 헌신하신 모습, 많은 영혼을 세우고 살리시며 헌신한 공생애 사역, 그 과정을 믿기에,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역사는 결과만 보고, 승자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철저하게 인본주의적 사고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언제나 시작과 동기, 과정과 결과, 모든 것을 꼼꼼하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결과를 소원한다면, 오늘 주어진 하루, 과정을 더 말씀 붙잡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실하게 과정을 밟아갈 때,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채우심, 앞서가심과 이끄심이 선한 결과를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들지만, 더 나은 결과를 원한다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과정을 신실함과 믿음으로 채워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