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서 “차량 두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두 차량 모두 위험해 보였지만, 한 대는 음주운전 차량이고, 다른 차는 응급 환자를 태운 구급차”였습니다. 두 차량은 “같은 시간과 장소를 통과 중이었지만, 하나는 위험천만한 흉기였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시간과 장소, 상황을 ‘누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통과하는가?’ 이로 인한 결과는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척박한 광야를 통과 중인데, 이 광야를 어떻게 통과하는가로 인해, 우리 미래가 음주운전 차량처럼 될 수도 있고, 구급차처럼 타인을 세우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광야가 두렵고 불편하지만, 누구도 예외 없이 광야를 통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성경은 척박한 광야를 성장과 성숙을 위한 영적 통로로” 말씀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를 정결케 하고,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광야를 통과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는 광야를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광야는 “심히 건조하고 척박한 땅,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땅으로, 일교차가 극심해서,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필요한 땅”입니다. 그런데 “본문 16절은 광야를 일반 상식과 조금 다르게” 표현합니다. 광야는 “광대하고 위험하며,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는 곳, 복을 주시는 땅으로” 묘사합니다.
분명한 것은, “애굽의 노예가 광야를 통과하면서,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로” 거듭났습니다. 2020년!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했던 척박하고 큰 광야를 통과 중이고, 지금도 엄청난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건강에 대한 염려, 경제적 어려움, 관계 단절, 우울증과 마음의 상처 등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록 “백신이 개발되어 고난의 터널 끝이 작게 보이지만, 여전히 낙관할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가 척박한 광야를 통과하며, 좌절과 낙담보다, 하나님 주시는 복과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광야를 통과하며, 출애굽 1세대처럼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새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송년 주일! 우리가 지금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척박한 광야를 통과해야 할지!” 살펴봅시다.
1. 광야를 통과하며 지난날의 악함과 아픔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요셉 때 “70여 명의 이스라엘 자손이 입 애굽했지만, 400년 후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겉은 선민이었지만, 생각과 상식, 문화와 사고는 모두 애굽 사람과” 똑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애굽화 된 선민을 부르셨고, 영적인 정화를 위해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선민은 “그렇게 40년간 광야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애굽의 악함과 우상숭배를 버리지 못한 출애굽 1세대는 전부 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출애굽 2세대는 애굽의 영적 잔재를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 주신 율법을 채워서, 마침내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우리는 모두 Pandemic, 코로나-19란 말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비록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내가 평생 쌓아온 것이 불과 1년 만에도 무너질 수 있음을 깊이” 절감했습니다.
많은 분이 “그동안 스스로 잘 믿는다고 자부했는데, 내 신앙이 너무 쉽게 무너졌고, 코로나-19를 겪으며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방향감각마저” 잃었습니다. 이에 “누구도 올해 겪은 광야의 삶을 내년으로 가져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를 통과하며 올해의 아픔과 상처, 실패를 반드시 버리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2020년 “척박한 광야를 통과하며, 하나님께서 내 신앙의 깊이를 확인하게 했고,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이 생각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또한 “내가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필요했는지, 광야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부터 광야를 통과하며, 정리할 것, 버려야 할 것, 내려놓을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연초에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들’이란 팻말을 로비에” 세웠습니다.
이는 “전 교회가 새롭게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들을 분별하여 버리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버려지는 물품이 늘어갔는데, 각종 술, 외설 테이프, 추잡한 액세서리, 불량서적, 담배 등이” 쌓여갔습니다. 교회는 “매월 시간을 정해 이를 모두 소각했고, 광야 같은 일 년을 통과하며, 더욱 부흥하고 성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을 안 버리고, 오히려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버리며” 살아갑니다.
절대로 “버리면 안 되는 신앙, 말씀 묵상과 예배, 기도와 봉사는 쉽게” 버립니다. 실제로 “많은 신앙인이 코로나-19를 겪으며, 그 신앙이 더 피폐해졌다!” 고백합니다. 반면에 “두려움과 욕심, 이기심, 좌절과 낙담, 버려야 할 것은 오히려 더 커졌다!” 말합니다. 우리는 “연말이면 내년에는 살 빼야지! 생각하고 안 맞는 옷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도 안 빠지고 옷도 못 버려서,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됩니다.
핵심은 “버려야 새 은혜가 채워지고, 악순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유산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한 후, 집으로 돌아가겠다!” 결심합니다. 그렇게 “탕자는 둘째 아들의 지위, 자존심과 창피함, 체면을 버리고 내려놓은 채” 귀가했습니다. 만일 “탕자가 뻔뻔스럽게 자신의 모든 권한과 지위를 가지고 귀가했다면” 어땠을까요?
탕자가 “다시 둘째 아들이 된 이유는, 광야를 통과하며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것을 내려놓는 지혜를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명한 “찬양! ‘광야를 지나며!’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내 빛이 되시는, 친구가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이처럼 “광야는 다른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 손만 잡을 수 있고, 아니! 주님 손만 잡아야 하기에,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여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를 통과하며 과거의 악함을 버리지 못하면 다시 악순환이 시작되지만, 버리고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새롭게 내 인생을 이끌어가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는 “화요일부터 특새가 시작되는 데, 말씀과 기도로 척박한 광야를 통과하며,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내려놓고 승리할 수 있기” 원합니다.
2. 광야를 통과하며 미래를 향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출애굽 1세대는 “광야의 척박함과 무더위, 밤의 추위에 고생하며, 마침내 모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출애굽 2세대는 광야를 통과하며 만나, 놀랍고도 다양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무엇보다 “율법,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이방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삶이 하나님 백성다운 삶인지” 배워갔습니다. 그렇게 “장정만 무려 60만, 그 외의 많은 사람과 엄청난 수의 짐승까지, 목마름 없이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나아가서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광야를 통과하며, 무려 40년 동안 발이 부르트지 않고,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매사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선민 공동체는 “이처럼 척박한 광야를 통과하며,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 공급하시는 은혜로, 미래를 계획하며 영적으로 더 깊어지고 성장해” 갔습니다. 2020년! “광야를 통과하며, 혹자는 힘들었지만, 혹자는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기도가 더 깊어지고,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코로나-19가 엄청난 광야였지만,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얻을 수 없는 은혜와 체험이 적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이 “올해 2020년 광야를 통과하며, 교만함이 낮아짐으로, 자기 의로움이 자기 비움으로, 이기적 삶이 이타적 삶으로, 부정적 삶이 긍정적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곧 “2021년인데, 광야를 통과하며 더더욱 새롭게 되려면, 버릴 것을 버린 그 자리에 항상 긍정적 관점으로 하나님 은혜를 더 많이 채워가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광야를 통과하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먼저는 “광야를 통과하며,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 파묻혀, 자포자기하는 모습으로, 이는 최악의 모습”입니다. 이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은 과거의 악함을 버리는 모습이고, 끝으로! 광야를 통과하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긍정적 관점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 후 승천까지, 40일간 제자들과” 동역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아직 성령을 체험하기 전이어서 여전히 미숙하고” 연약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배반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평안을 빌었고, 말씀을 다시 주셨고, 미래에 감당해야 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 무능하고 연약했던 제자들을 향해 이처럼 긍정적 관점으로 다가가셨기에, 제자들은 포기를 극복하였고, 마침내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넘어진 제자들에게 ‘너희는 정말 안 되겠구나! 구제 불능이야! 가르쳐도 소용이 없구나!’ 부정적으로 책망했다면” 어땠을까요? 문제는 “광야를 통과하는 아픔과 고난은 항상 있지만, 긍정적 관점이 광야의 척박함을 이기게” 합니다. 특히 “예배와 말씀의 은혜 안에서 긍정적 시각을 가진 영혼은 절대로 열매 없이 광야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어떻게 되겠지! 모르겠다!’ 무기력과 부정적 관점은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출애굽 2세대는 “1세대와 똑같은 광야를 통과했지만, 하나님 주시는 긍정의 에너지로 넘어지지 않았고,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힘들고 어려울수록 긍정적 에너지를 가지고 코로나-19가 극심한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옛날에 “어떤 왕이 자기 치아가 하나씩 빠져나가는 꿈을 꾸고, 신하들에게 꿈을 해몽하게” 했습니다. 어떤 “신하는 왕의 친척과 가족이 하나씩 죽어서, 나중에 왕만 남을 꿈이다!” 해몽했습니다.
왕은 “신하의 불길한 해몽에 크게 분노했고, 그 신하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는, 왕은 집안 모든 가족 중에서 가장 장수하실 꿈입니다.” 해몽했습니다. 왕은 “기뻐하면서, 꿈을 해몽한 신하에게 큰 상을” 주었답니다. 신하 둘은 “똑같은 꿈을 해몽했지만, 결정적 차이는 부정적 관점과 긍정적 관점에” 있었습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우리가 인생의 척박한 광야를 통과하며,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깊은 도전을” 줍니다.
특히 “긍정적 관점은, 연약한 인간이 말씀과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가질 수 있는 하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거룩하고 긍정적 관점을 가지면, 비록 우리가 척박한 광야를 통과할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입니다. 2020년 “송년 주일! 여러분은 척박한 광야를 지나오며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깨달았나요? 부족해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며 긍정적 관점으로 광야를 통과하며 신실하게 미래를 준비하여, 큰 열매 맺어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