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부가 숲에서 큰 나무를 베려는 데, 나무의 요정이 나타나서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 나무를 베지 않으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부부는 “나무를 베지 않기로 약속하고, ‘무슨 소원을 구할까!’ 생각하다가 남편이 갑자기 혼잣말을” 했습니다. “출출한데, 소시지 하나 먹으면 좋겠네!” 놀랍게도! “바로 소시지가 나타나자, 아내가 남편에게 화를 내며” 말합니다. “소원이 기껏 소시지 하나예요? 그 소시지 당신 코에 붙었으면 좋겠네요!”
이에 “소시지가 남편의 코에 불어” 버렸습니다. 이제 “이 부부가 세 번째 소원으로 무엇을” 구했을까요? 우리는 “이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도 이 부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복이 있음과 복을 누림은 너무도 다른 개념”입니다. 여러분은 “복 있는 삶과 복을 누리는 삶 중 무엇을” 원하세요?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큰 물질을 주지만, 다른 사람이 그 물질의 복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한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이 있음을 알 뿐 아니라, 그 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삶이 다르고, 맺는 열매도 다르다!” 말씀합니다. 특히 “본문 3절은, 의인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모든 동사가 미 완료 형인데, 이는 복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짐을” 뜻합니다. 이처럼 “의인은 끊임없는 복을 누려서 심판을 견디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살아갑니다.
궁극적으로 “본문은 오직 하나님만 복을 주시고, 그 복을 누리게 하실 수 있다!” 강조합니다. 지난 “8월 17일부터 어제까지 총 111일간, 말씀으로 한 친구 찾아가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혹자는 “말씀을 전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지만, 혹자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핀잔도” 들었습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을 모르는 지인과 실족한 분에게 말씀을 전해서, 말씀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함께 2020년의 아픔을 극복하자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같은 말씀을 공급받았지만, 모두가 말씀의 은혜를 누렸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혹자는 “영적으로 깊은 복을 누렸지만, 혹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말씀의 은혜에서 스스로 멀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2020년 “대림절 둘째 주일,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 주신 복을 찾고 누리며 살아갈지!” 살펴봅시다.
1. 복을 누리며 살아가려면 하나님 편에 서도록 항상 나를 바꾸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는 모두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이처럼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서 살아가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심판에 넘어지는 인생이 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면, 마침내 악인이 되고 그 인생이 망할 수밖에 없다!”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기보다,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리에 설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니! “나부터 나도 모르게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리인지 잘 몰라서, 하나님 반대편에 서기도” 합니다. 때로 “문제가 있고 틀린 줄 알면서도 고집과 반대를 위한 반대로, 하나님 반대편에 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 편에서 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나부터 삶의 방향을 바꿔서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은 세상과 주변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세상과 주변 사람, 교회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누군가를 바꾸려는 시도가 많은가? 아니면 나를 바꾸려 하는가? 자문과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많은 분에게 우리 교회에 관해 들은 공통된 의견이” 있습니다. “주차장은 물론 가장 좋은 입지조건, 과거의 엄청난 부흥, 자녀 교육이 유명해서 젊은 층이 많은 교회, 김치찌개가 맛있는 교회!” 실제로 “한 소망교회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고, 나아가서 성도 모두가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나부터 더 하나님 편에 서는 삶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래야 우리 교회가 더 많은 영혼을 살리고,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부임한 지 14개월이 되었는데,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기를 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을 그래도 잘 듣는 편인데, ‘아멘!’으로 화답하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씀 앞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주일예배는 열심히 잘 지키지만, 주중 예배와 성경공부, 특별 프로그램에 큰 관심이 없고, 너무도 소극적”입니다. 바쁘고 “어렵지만, 다양한 교회 프로그램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자녀를 더 잘 양육할 수 있고, 교회 본연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 목사와 당회, 중직자도 바뀌어야 하지만, 사실은 나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부족한 “내 생각과 고집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하나님 편에 서는 삶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바뀌지 않으면, 나는 물론 교회의 미래가 절대로 밝을 수” 없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 장으로 계산이 빠르고, 성공 지향적이고,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냉혈한으로” 살았습니다. 그랬던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후,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더는 세리가 아닌 하나님 백성으로 살겠다.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마침내 “자신과 가족까지 하나님 주신 복을 깊이 누렸고, 손가락질받던 인생이 천국 백성이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우리가 하늘의 복을 받고 누리려면, 이제부터라도 세상과 사람 편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도록 나를 계속 바꿔가야!” 합니다. 실례로 “내 고집과 의로움보다, 진심으로 교회와 교인 다수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자녀들이 믿음 가운데 커가도록 도와야 하고, 선교와 복음전파에 열정을 다하는 삶으로 바꾸어가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나를 바꾸면 신령한 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지만, 내가 아닌 주변이 바뀌어야 한다고 고집부리면, 악순환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20년 “많이 힘든 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우리 각자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은혜와 복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2020년 “대림절 둘째 주, 나 자신과 말씀을 나눈 영혼이 함께 하나님 편에 서는 삶으로 바뀌어서, 날마다 하늘의 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기” 원합니다.
2. 복을 누리며 살아가려면 항상 말씀의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3~4절에서 “시편 기자는,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 열매 맺고 풍성하게 되지만,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말씀합니다. 의인과 “악인의 가장 큰 차이는 뿌리의 유무, 은혜를 공급받는 통로가 있는지 없는지에” 있습니다. 의인은 “시냇가의 물을 계속 공급받아서 열매 맺고, 잎사귀가 항상 마르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악인은 은혜를 공급받지 못해서,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바람에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의인을 살리는 시냇물을 본문 2절에서, 주야로 묵상해야 할 여호와의 율법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공급받으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지만, 말씀 공급이 없으면 바람에 나는 겨처럼 이리저리 날릴 수밖에” 없습니다. 복이 “있음과 복을 누림이 다르듯, 말씀이 있음과 말씀을 공급받는 것도 별개의 문제”입니다. 기독교인이 “세상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이 공급되고 이를 받고 살아가는 은혜”입니다.
상식적으로 “물을 공급받는 나무와 잘려나간 나무가 같을 수” 없습니다. 2020년! “거의 모든 교회가 온라인 사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너무도 쉽게 다양한 설교와 강의, 신학 지식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검색보다 검색하여 찾은 내용이 얼마나 내 삶에 풍성한 영적 양식으로 공급되는가?”에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말씀 공급이 끊어지면 복과 멀어지고, 복을 복으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후, 사도와 많은 제자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더는 “말씀 공급을 받지 못하여 낙담과 좌절로 믿음을 잃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눅 24:32절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을 공급하신 결과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이 “공급되자,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침내 “말씀을 다시 깨달았고, 삶의 방향이 바뀌어 말씀의 복을 다시 누리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장은 이처럼 말씀을 공급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힘들수록 “우리가 더욱 하나님 말씀을 공급받아야, 지금의 아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말씀이 “공급되면, 깨닫지 못하고, 못 보고 못 듣던 것을 깨닫고,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공급되면 내 신앙이 바른길을 가게 되고,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공급받고 살아가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이 없어서, 환난과 핍박 때문에, 갑자기 성경이 없어져서 말씀이 주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각자가 교회에서 공급되는 말씀과 은혜만이라도 놓치지 않으면, 받을 복이 참고 넘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기도 제목을 나누며 함께 기도할 기도의 동역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말씀을 공부할 수 있고, 누군가와 간증을 나눌 수 있고, 아파하는 환우들을 돕고 위로할 기회도 참으로” 많습니다. 물론 “이민자로 바쁘고 분주하지만, 힘들고 어렵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더욱 하나님 말씀을 공급받아야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켈리 박사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이자 외과 의사요, 전도자로” 유명합니다.
켈리 박사는 “늘 양복에 장미를 꼽고 다녔는데, 특이하게도 장미가 항상” 신선했습니다. 이에 “많은 학생이 왜 장미가 시들지 않는지! 이유를 물어보자, 켈리 박사가 양복 안쪽을” 보여 주었습니다. 양복 “안쪽에 작은 물병 주머니가 있었고, 장미가 그 물병에 꽂혀” 있었습니다. 이때! “켈리 박사가 학생들에게 전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시들지 않고 향기 나는 인생을 살려면, 삶의 뿌리를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합니다!”
2020년을 “보내며, 지금 내 삶은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고, 누구에게 무엇을 공급받고 살아가는가? 답을 찾아야!” 합니다. 만일 “세상에 뿌린 내린 삶이라면 멈추어야 하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말씀에 인생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럴 때! “연약한 우리 인생이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2020년 “대림절 둘째 주일!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풍성히 공급받으며, 하나님 주신 복을 누리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