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이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딸이 “‘얼마 전! 제가 선물로 드린 I-Pad 잘 사용하시죠?’ 묻자, 아버지가 ‘아주 좋아!'” 답했습니다. 잠시 후! “딸은 채소를 썰었던 도마를 보고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아버지가 “채소를 썰고 물로 행군 후, 식기세척기에 넣은 도마가 바로 자신이 사준 I-Pad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고가의 최신 I-Pad를 선물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I-Pad보다 더 귀한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도 말씀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매일 “말씀을 접하지만, 말씀의 가치와 능력, 말씀을 주신 이유를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오늘처럼 “어렵고 힘든 시대일수록,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을 주신 이유를 더욱 바로 알아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초자연적인 방법과 능력이 아니라, 말씀으로 선지자 요나와 니느웨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에게 말씀을 주시며, 니느웨를 살려라!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는 니느웨 백성 12만을 살리려, 다른 무엇보다 말씀을 주시려” 계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요나와 니느웨에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한 가지! 그들을 살리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지만, 세상의 다양한 조롱과 비판을” 받습니다. 이유는 “좋은 성경이 없고, 성경공부 자료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과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말씀에 너무 무지하고, 말씀을 주신 이유를 모르고 살아감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코로나-19가 극심해도, 우리가 말씀을 주신 이유를 바로 알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3월 17일부터 매일 음성으로 한소망 만나를 발송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새벽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말씀을 들어서 좋다는 분들이 많고, 더 간절히 새벽예배를 사모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말씀으로 한 친구 찾아가기 운동을” 시작합니다. 비록 “코로나-19의 아픔이 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살리려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내가 말씀과 일대일로 만나고, 나와 말씀을 전달받은 분이 하나 되고, 말씀을 전달받은 분이 하나님 말씀과 일대일로 만나게 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12월 5일까지, 주일 말씀과 매일 발송되는 한 소망 만나를 총 111일 동안 받으며 말씀의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본문을 통해 “왜 이 사역을 필요한지, 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지!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1. 말씀을 주심은 하나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해서 나를 바꾸기 위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말씀을 전하라! 명하셨지만, 요나는 일부러 다시스로” 향합니다. 요나는 “선민을 괴롭히는 앗수르 수도 니느웨가 말씀으로 은혜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스로 향하던 중, 요나는 풍랑을 겪으며 물고기 뱃속까지” 내려갔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며, 다시 말씀을 되새기며 회개했고, 새롭게” 변화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다시 주신 기회로 니느웨에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 완악했던 요나의 속사람과 그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나가 스스로 결단하여 바뀐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요나를” 바꾸었습니다. 히 4:12절은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우리 마음과 생각을 판단한다!” 말씀합니다. 딤후 3:17절은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선한 능력을 갖추게 한다!”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죄인인 나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리고, 바꾸려고 말씀을 주셨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보고 들음보다 묵상함에 더 큰 은혜가 있고, 묵상한 말씀을 삶으로 적용할 때, 말씀이 완악한 나를 바꾸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나를 바꾸기 원한다면, 말씀을 삶에 직접 적용하며, 말씀대로 살아봐야!” 합니다. 누군가 “성령도 내 더러운 성격은 못 바꿔! 장담하는 분을 본적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삶으로 적용했는데 안 바뀐다면, 나와 말씀, 둘 중 하나가 문제일 것”입니다. 두 명의 “기독교인이 나란히 앉아 기차 여행을 하는데, 한 사람이 두 개의 빵을 꺼내, 그중 하나를 먹었습니다. 옆에 있던 “기독교인도 출출했지만, 직접 빵을 달라는 말 대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셨지요!” 그러자 “빵을 먹던 기독교인이, 남은 빵을 입에 넣으며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같은 성경에,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평생 교회에 나오고, 직분이 있고, 말씀을 들어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들은 말씀을 내 위주로, 나 편한 대로, ‘내가 복음’을 만들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처럼 내 이기심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을 바꾸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정말 말씀에 위로받고, 말씀으로 내 삶이 더 바뀌기 원한다면, 꼭 기억해야 할 영적 명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가 “보고 듣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서 바로 나에게 직접 주시는 메시지로 받아야!” 합니다. 또한 “주시는 모든 말씀을 겸손함,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끝으로 “주시는 말씀은 모두 내 삶에 직접 적용하고 살아보라고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한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고 듣는 모든 말씀을 하나님께서 직접 내게 주시는 메시지로 듣고, 겸손! 간절함과 뜨거움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때로 “받은 말씀이 버거워도, 그대로 적용하여 삶으로 살아보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어쩔 수 없이 들어주거나, 내 교양을 위해 듣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10분의 한소망 만나를 준비할 때, 주석과 원어까지 꼼꼼히” 점검합니다. 10분의 “한소망 만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하며” 준비합니다.
이유는 “한소망 만나가 저를 살리고,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 모두를 살리는 말씀이 되길 기도하며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한소망 만나를 주심은, 내가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부족한 종이 말씀을 전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겸손과 간절함으로, 매일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며 살아보는 열정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혹자는 한소망 만나를 매일 노트에 기록하며 묵상하고” 적용합니다.
또한 “매일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묵상하고, 출근하는 차 안에서 묵상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힘들수록, 말씀만이 나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살릴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힘들수록 “전 교인이 말씀으로 한 친구 찾아가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일단 내가 말씀으로 살고, 또한 가정과 교회가 살리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2. 말씀을 주심은 받은 말씀을 주변에 전해서 많은 영혼을 살리기 위함에 있습니다.
요나서는 “선민에게 국한된 하나님 은혜가 이방인에게 확장되어 감을 보여준 선지서”입니다. 니느웨는 “항상 선민을 학대하고 괴롭힌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앞뒤 구분을 못하는 니느웨 12만을 살리려, 요나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시 “니느웨는 요나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왕과 짐승까지 굵은 베를 입고 온전히” 회개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 말씀이 선민을 괴롭혔던 이방 땅! 니느웨를 바꾸고 살렸던 것”입니다.
코로나-19는 “바쁜 우리 삶을 가정 안에 가두었고, 극심한 무료함과 답답함을” 주었습니다. 삶의 “기반을 흔들었고, 물질과 건강, 관계에까지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힘들기에, 더더욱 말씀을 묵상하고 전해서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이 아픔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누군가 구원받도록, 복음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주변의 지인 대부분이 교회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주변을 보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난 영혼, 하나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한 영혼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으로 한 친구 찾아가기 운동을 위하여, 말씀을 전할 영혼을 기도하며 정해야!” 합니다. 간절함으로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그 영혼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기도하며, 말씀을 전달해야!” 합니다.
바울은 “딤후서 4:2절에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개인적으로 “진심으로 회개하며, 말씀으로 한 친구 찾아가기 운동을” 계획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코로나-19가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습니다. 심중에 “곧 괜찮아지겠지! 막연한 기대로, 목사로서 이 시대에 꼭 감당해야 할 사역을 찾기보다 기다린 모습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온라인은 물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우리 성도들을 더 살피고, 한마디의 말씀이라도 더 잘 먹이고, 더 잘 전달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온라인으로 가정을 세우는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이고, 미국 곳곳의 목사님을 청하여 온라인 부흥회를 개최하고, 우리가 섬기는 네 선교사님의 선교보고를 통해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어려울수록 “더더욱 하나님 말씀으로 내가 살고, 주변의 누군가를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말씀으로 한 친구 찾아가기 운동에서, 내가 말씀을 전할 대상을 정할 때, 과거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시대이기에,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고, 나아가서 직접 대면하지 않고 카카오톡을 통해서 더 쉽게 하나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마틴 니뮐러 “목사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전쟁 책임 고백서’란 책에서, ‘전쟁은 히틀러만이 아니라, 목사인 내게도 원인이 있다!’ 다소 충격적인 고백을” 남겼습니다.
당시 “니뮐러 목사는 무려 7번이나 매번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끊임없이” 변명했습니다. “하나님! 아무도 제가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니묄러 목사는 “꿈이었지만, 그 목소리가 익숙해서 뒤를 보니, 바로 히틀러의 변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7번이나 같은 꿈을 주시며, 매번 준엄하게 니뮐러 목사를” 책망했습니다. “너는 목사로서 히틀러를 미워하고 항거만 했지,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았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네가 히틀러에게 말씀을 전했다면 그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지금은 “어렵고 힘들기에, 상황이 악화만 되어가기에, 하나님 말씀이 더 간절히 필요한 때”입니다. 제비는 “새끼에서 먹이를 주려고 하루에 평균 250번을 왕복한다고” 합니다.
제비가 “매일 250번 왕복하며 먹을 것을 주어서 새끼를 살렸다면, 우리도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한 깊은 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힘든 시대지만, “하나님 말씀만이 나와 내 가정, 주변 모두를 살릴 수” 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111일 동안 말씀을 전달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는 영혼이 살아나는 간증과 승리가 넘쳐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