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0년경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북유럽 인구 1/3, 영국 인구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많은 “신실한 성직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흑사병을 이기기 위해 봉사하다가” 죽어갔습니다. 당시 “교회는 성직자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급하게 성직자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 결과 “수도원이 점점 세속화되었고, 성직자의 부패가 점점” 가중되었습니다. 다행히 “150년 후인 1493년! 어거스틴 수도원이 엄격한 규정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어거스틴 “수도원은 무엇보다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회개와 예배 회복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마틴 루터가 이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영적 훈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처럼 어두운 영적 터널을 뚫고 빛으로 나온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은 어두운 동굴에 갇힌 것이 아니라, 터널을 지나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터널은 “동굴처럼 어둡고 캄캄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직진해야 밝은 빛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 “과학은 물론 기독교인이 우리를 위협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절대로 질 수”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자세로, 어떤 영적 무장으로 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가?”에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권세를 확인하려고,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다윗은 “인구 조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이것이 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징계 앞에” 섭니다. 본문 15절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무려 7만 명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말씀합니다.

불행히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전역에서 불과 사흘 만에 7만이” 죽었습니다. 어쩌면 “슬퍼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도 단기간에 일어난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이 질병으로 7만을 잃고 보인 태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7만이 희생된 전염병이 철저히 하나님 주권 아래 있음을”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인간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질병을 막을 수 있다!” 교훈합니다. 다윗은 “7만이 죽은 후 바뀌었지만, 우리는 현재 어려움을 겪으며 다윗에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 19로 세계 곳곳이 두려움으로 위축되어, 정상적 생활을 못 하고” 있습니다. 주식 폭락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 게다가 언제 이 어려움이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나도 코로나 19 감염 여부도 모른 채, 교회도 편하게 못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이 다 하나님 주권 아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학과 “의학의 역할이 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만 이를 멈출 수”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삶의 전역에 퍼진 어려움을 보고 위축되고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가 다윗처럼 다시 일어나 새로워지길” 원하십니다. 본문을 통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퍼진 아픔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봅시다.

1. 전역에 퍼진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우리 각자가 먼저 온전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7만이 죽은 후,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원어에서 “다윗은 자신을 뜻하는 1인칭 대명사 아노키를 반복해서” 썼습니다. 모든 “재앙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철저히 인정한 것”입니다. 특히 “악을 행했다/범죄 했다, 유사한 단어를 반복해서 자신의 죄를 더 강조”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7만의 죽음이 바로 나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회개했던 것”입니다. 특히 “본문은 다윗 가정에는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더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당시 “다윗의 통곡과 회개가 얼마나 간절하고 뜨거웠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발생한 전염병은 분명히 다윗에게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19는 적어도, 나 하나의 죄로 인해 벌어진 일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큰 재앙 앞에서, 다윗처럼 내 죄와 허물을 낱낱이 고백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회개하며 “나를 비우고, 내 죄와 허물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위기를 “지나며, 다시 한번 내 영적인 상태를 깊이 점검하고, 거짓과 악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면 회개할수록! 하나님께서 비워진 그 자리에 새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채워진 은혜가 환난과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위기 앞에서 원망과 불평, 핑계와 변명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 변명과 핑계가 위기 극복과 내 신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로 부임 6개월인데, 교회가 회복되다가 이처럼 주춤하니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와 우리 각자가 다시 깊은 회개의 자리에 서기 원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저도 “새벽에 기도할 때마다, 저의 부족과 연약함이 교회에 누가 되지 않았는지, 지혜롭지 못한 선택과 결정으로 하나님 영광을 안 가렸는지, 교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더 깊게 살피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으로 회개하며” 엎드립니다. 그리고 “새 힘을 주셔서 더 깊이 말씀을 깨닫고, 어려울 때 꼭 필요한 말씀, 아픔을 어루만지는 말씀의 통로가 되기” 기도합니다. 회개는 “바로 지금, 저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도전”입니다.

깊고 “온전한 회개에 하나님 주시는 회복과 치유, 풍성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떤 장로님이 4번 도로에서 찍은 교회 사진을 제게” 보내셨습니다. 사진에 “영롱한 무지개가 한소망 교회를 밝고 선명하게 둘러 덮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받고, “한소망 교회가 이처럼 은혜롭게 회복되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과거 “우리 교회는 노아의 홍수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한소망 교회가 다시 회복되고 세워지기” 원합니다.

돌아보면, “교회의 아픔은 누군가!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실은 내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고, 무관심과 책망, 지적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의 위기가 교회의 아픔과 어려움 때문은 아니지만, 코로나 19, 위기 앞에서 우리 각자가 다시 한번 진심으로 회개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절대 못 하시는 두 가지가 있다!”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영혼에게 영생을 줄 수 없고, 아무리 큰 죄인도 회개한 영혼은 영생을 주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깊이 회개했기에, 그를 크게”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방탕한 삶을 온전하게 회개한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삭개오가 회개했을 때,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하셨습니다.

현재 “많은 이민자가 사업이 어렵고, 삶이 버겁고 곤궁해서, 눈물로 애통하며” 울부짖습니다. 물론 “지금의 어려움과 고난, 질병이 멈추도록 간절히 울부짖어야 하지만, 이와 비례해서, 내 죄와 허물, 신실하지 못함도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퍼진 병을 멈추셨듯,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깊고 온전한 회개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기” 원합니다.

2. 전역에 퍼진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우리 각자가 간절함으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갓 선지자는 “본문 18절에서, 7만이 죽은 후, 다윗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안타깝지만! “전염병으로 7만이 죽기 전에 이처럼 간절하게 제단을 쌓아서, 엄청난 재앙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7만이 죽은 후! 가장 먼저 제단을 쌓아라!” 명령하십니다. 놀랍게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 주신 명령에 순종하여 제단을” 쌓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관점은 물론 다윗이 보기에도, 선민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예배의 회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본문 25절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특히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라!” 명령합니다. 번제는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로, 온전한 헌신과 의탁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번제를 통해 다윗이 많은 인구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화목제는 함께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먹고 나누며, 사랑과 화평으로 하나 됨을 이루는 제사”입니다. 이는 “사흘의 질병으로 인해 상처받고 아픈 백성을 어루만지고 살피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실제로 “사흘 만에 7만이 죽었기에, 그 통곡과 아픔이 얼마나” 사무쳤겠어요? 다윗은 “말씀대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서, 엄청난 재앙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회개는 “나와 하나님과 관계이고, 내 안의 죄를 깨끗이 씻어내는 영적 정화 운동”입니다. 반면에 “예배는 회개로 비워진 내 영혼이 다시 하나님 은혜로 채워지는 영적인 생수와” 같습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는 물론 이웃 관계도 많이” 소원해졌습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물론 “내 상황과 건강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줄지 몰라! 방송으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장소도 “중요하지만,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가?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비록 “가정에서 예배드리지만, 그동안 평안하게 예배드림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위기를 통해 “더 간절하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예배가 주변에 어려움 당하는 영혼! 이웃을 향한 화목제로 나타나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많은 교회가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피해가 작은 교회에 더 치명적이기에,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의 월세를 감당하고, 교역자들의 생활을” 돕습니다. 어떤 “교회는 수제 마스크를 만들어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하고, 어떤 교회는 주변 상가의 소독을 돕기도” 합니다. 위기를 통해 “지금까지 개교회주의, 성장주의를 표방했던 한국교회가 화목제를 드리는 교회로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소망 교회는 오늘처럼 어려운 위기의 때에 무엇을 감당해야!” 할까요?

먼저 “교회에서 코로나 19에 가장 취약한 노년층과 어린이를 위한 예방과 안전에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면역력이 약한 우리 환우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더 간절하고 뜨거워야!” 합니다. 또한 “내가 도울 수 있는 영혼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실제적인 봉사와 헌신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나아가서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바른 예배가 회복되어서, 회복된 예배가 가정과 직장, 사회로 퍼져 나가야!” 합니다.

위기 중에도 “내가 영적으로 바로 서고, 바르게 돕고 헌신하려면, 먼저 내 안에 바른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요시야 때 “말씀을 찾은 후, 모두가 가장 먼저 말씀대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는 “단순히 절기를 지킨 것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바른 예배가 회복되었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예배가 회복된 후, 넘어져 가던 국가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과 전염병의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습니다.

2020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이처럼 큰 위기와 겹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하고, 바른 예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부터 2주간 교회는 주중 예배를 잠정 중단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힘들수록 “이번 주도 내게 주신 삶의 예배 자리를 더 굳건하고 신실하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곳곳에 퍼진 질병을 극복하고, 더 온전한 예배자로 굳건히 서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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