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부부가 금혼식 아침 식사 때, 남편이 평소처럼 갓 구운 빵의 귀퉁이를 잘라서 주자,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평생 맛없는 빵 귀퉁이만 주더니 금혼식인 오늘도 똑같군요! 나는 참 불행한 여자예요!” 남편이 “미안해하며, 나는 어려서 어머니가 주신 빵에서 귀퉁이가 제일 맛있어서 당신에게 항상 제일 좋은 부분을 양보한 건데!” 답했습니다. 이 부부는 “50년 이상을 동고동락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빵 귀퉁이를 주는 남편은 행복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평생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삶에서 “행복, 효도, 사랑, 이는 참으로 아름답고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행복, 효도, 사랑이 전혀 다르게 표현되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선한 “의도였지만, 그것이 사랑, 효도, 행복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영혼은 이처럼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사랑, 효도,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도 거부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절대적 개념의 사랑, 효도,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이란 단어가 무려 7번이나 반복하여” 쓰였습니다. 이는 “그만큼 초대 교회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주제가 하나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꼭 있어야 할 절대적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 두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 “본문 19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 말씀합니다. 또한 “본문 21절은, 하나님 사랑은 계명으로 받은 것이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두 가지 이유는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와 너무도” 똑같습니다. 실제로 “부모님은 항상 나보다 나를 먼저 사랑하고 정성을 다하기에, 부모를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부모를 사랑함이 꼭 지켜야 할 계명이다!” 말씀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일 년 중 부모님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성경은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하고,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명령합니다. 천륜인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수 있고, 부모에게 참된 효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에 기초한 자녀 사랑과 부모를 향한 효도만이 가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코로나-19로 부모와 자녀가 대면하여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가 각자,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부모를 향한 참 효도, 자녀를 향한 참된 사랑이 우리 가정에 가득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본문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그것이 참된 효도와 참된 자녀 사랑이 되는지!”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주변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본문 20절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형제를 사랑하는 삶이어야 한다!” 말합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가까운 형제를 미워하고” 배척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사랑도 잃어버리고, 삶으로 하나님 영광마저 가리고” 말았습니다.

요한은 “보이는 형제, 가까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말합니다. 실례로 “우리가 주변의 가까운 형제를 사랑하려면 미움을 이겨야!” 합니다. 미움! “미세는 강한 의지로 타인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에게 아가페 사랑은 불가능하지만, 미워하지 않음은 그래도 실천할 만한 도전”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미움부터 이겨야!” 합니다.

미움과 사랑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아는 사람과 관계에서 생기는 마음가짐과 태도”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개선할 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 이 말에 다윗에게 큰 시기심을” 가집니다. 그 결과, “사울은 다윗에게 두 번이나 창을 던졌고, 훗날 3,000명 호위부대를 이끌고 끝까지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문제는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 해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미움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왕위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울이 다윗을 미움보다 사랑하고 아꼈다면 왕권을 지키고, 어쩌면 성군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각자 다 다르기에, 그 다름이 때로 갈등을 유발하여 미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미움은 계속 자라서 관계를 깨고, 내 영생마저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움에는 하나님 사랑이 없기에, 절대로 참된 효도, 참된 자녀 사랑이 불가능함을” 기억합시다.

코로나-19는 “우리 신앙은 물론 인간관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옆에 있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하게” 됩니다. 매 주일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친교하고, 대화하고, 찬양하고 봉사함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미움과 “갈등이 얼마나 헛된지,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함을 깊이 절감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코로나-19는 인간이 연약하고 제한적인 존재임을 절감하게 해서, 한 번뿐인 인생을 허송세월하지 말고,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더욱 예수 잘 믿고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했습니다.

마침내 “미움을 극복하고 사랑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부모가 “미움을 이기고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어야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가 미움을 이기고,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부모에게 참된 효도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움과 사랑은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미움을 극복하고 이겨야!” 합니다.

어떤 “목사가 양로원에서 설교 중, 미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분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자, 목사가 어떻게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할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많았는데 다 죽었어!” 말했습니다. 우리 삶에 “미움이 있을 수 있지만, 미움은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미움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바른 사랑과 부모를 향한 자녀의 바른 효도를” 막습니다. 인간이 “부모와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효도, 참된 자녀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미움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미움을 이기고, 신앙인답게 참된 자녀 사랑과 참된 효도를 이루기” 원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말씀에 기초한 삶이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요한은, 하나님 사랑은 계명으로 받은 것이다. 계명인 하나님 사랑을 지켜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말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계명에서 점점 멀어져서, 마침내 계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향한 효도와 자녀를 향한 사랑도! 항상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야 함을 한결같이” 강조합니다. 이에 “요한은 말씀에 기초한 삶은 성경이 교훈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살아가야 한다!” 말합니다.

말씀은 “죄인인 인간이 가감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가 있기에,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믿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계명으로 받았지만, 이를 그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세상 철학과 “이단의 유혹, 자의적 해석으로 계명을 바꾸고 합리화하며 말씀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잘 믿기 원하면서, 받은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살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 비상식적이라고” 거부합니다. 역사를 보면 “많은 이단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가감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성에 맞지 않는 성경 내용을 초대 교회가 만든 신화라고, 성경 전체를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은 약자가 강한 자를 이기는 성경의 내용을” 금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가 아니라, 문화와 내 경험이 만들어 놓은 예수를 믿으며 만족을” 찾습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만들어진 예수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지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효도는 자녀가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자녀 사랑도, 부모가 하나님 주신 말씀 그대로 믿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이전보다 말씀과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불충분합니다. 코로나-19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해야 하고, 다시 말씀 그대로 믿고 살아가야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받았지만,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야곱은 “편한 아버지 집을 떠나서, 20년 동안 이민자로서! 밤에 잠도 못 자고, 수많은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마음 깊이 사랑했던 라헬보다, 라반의 속임수로 레아를 먼저 얻게” 됩니다. 과거 “야곱은 앞을 못 보는 아버지를 속였지만, 라반은 눈뜬 야곱을 너무 쉽게 속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과거 하나님 주신 약속을 그대로 믿었기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기업을 일구어” 갔습니다. 정말 “효도하고 싶다면, 정말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싶다면,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살아갈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능력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79년 “이집트 모슬렘 지도자 칼리프 뮤즈가 기독교인을 박해할 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교회 대표를 불러서 공개적으로 마 17:20 절을 읽게” 했습니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칼리프 뮤즈는 “교회 대표에게 이 말을 믿는지! 물었고, 믿는다고 답한 교회 대표에게 이렇게” 협박했습니다. “그렇다면 일주일 안에 저 건너편 바위산을 옮겨놓아라! 아니면 너희 기독교인은 모두 죽는다!” 교회 대표는 “이 사실을 전 교인에게 알리고, 모두가 간절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과연 “이처럼 엄청난 협박! 아니! 기도의 결과가”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한 주일 후! 바위산 일부가 실제로 공중에 들리어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뚜벅뚜벅 걷는 것과 같다고 해서 그 지역을 모까땀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모까땀 지역은 이집트 교회의 성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원한다면, 먼저 내 신앙, 내 믿음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부터 “말씀만 진리이고, 말씀대로 살아야 승리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각 가정에 참된 효도, 참된 자녀 사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가정이 말씀에 근거한 효도와 자녀 사랑을 실천할 때, 코로나-19 회복은 물론, 우리 가정과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채워질 것”입니다. 한주도 “말씀을 받은 그대로 믿고 살아감으로, 참된 효도, 참된 자녀 사랑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