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는 “헌당 20일 만에 6.25 발발로, 한경직 목사와 성도 대부분이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유독 김응락 장로만 교회를 버리고 피난 갈 수 없다! 교회를 끝까지 지키겠다며” 남았습니다. 그러나 “약 석 달 후!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하며, 김응락 장로는 순교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순교 전 “김응락 장로는 북한군에게, ‘교회에 들어가서 잠시 기도하게 해 달라!’ 부탁했고, 교회당 계단을 오르며 찬송 95장을” 불렀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뿐일세” 북한군은 “기도를 마친 김응락 장로를 예배당에서 총으로” 죽였습니다. 영락교회는 “45세에 순교한 김응락 장로의 담대한 영적 유산을 기억하여, 기념비를 세워 그 신앙을 기리고” 있습니다. 담대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적 유산을” 남깁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담대함보다 두려움에 빠져”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코로나-19를 극복하려면, 두려움보다 영적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 말하면서 본문 12절에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게다가 서로 사랑하지 못해서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반복해서,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은 사랑이다!” 강조했습니다. 특히 “요한은 본문 17절에서,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말합니다.
담대함 “파르레시아는 성도가 이 땅에서 신실한 신앙생활을 마치고, 심판대 앞에서 가지는 담력을” 뜻합니다. 문제는 “우리도 심판을 생각하면, 담대함보다 두려움이 더” 큽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어려워도 우리가 담대해야 귀한 영적 유산을 대대손손 남길 수 있다!” 도전하십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자녀들이 기쁨으로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세상의 공격과 도전을 이길 수 있고, 그렇게 얻은 귀하고 복된 영적 유산을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계승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이 되었지만, 뉴욕과 뉴저지는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하여, 그 두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 눈에 희망보다 절망, 더 커지는 불안감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나야 끝난 것이다! 야구 명언처럼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만, 아직 안 끝났기에, 우리는 담대함과 소망으로 다시 무장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이 주일을 맞으며! 내가 담대해야 우리 자녀와 가정이 담대하고, 나아가서 교회와 사회가 담대함으로 이 환난을 이길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영적 “담대함은 인간적 노력과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담대함으로 우리 자녀에게 귀한 유산을 남기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담대함을 영적 유산으로 남기려면, 사랑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본문이 “기록될 때, 초대교회는 일상생활은 물론 영적으로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요한이 여러 번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냈다! 증언했지만, 초대교회는 이 복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세상의 공격을 받고, 두려움에 빠져서 담대함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훗날 “하나님 심판은 고사하고, 지금의 믿음 자체가 너무도 부끄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를 향한 요한의 태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 “요한은 보아너게처럼 책망과 질책보다,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초대교회 성도에게” 다가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 하나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당시 “위축되고 주눅 든 초대교회에 요한의 위로와 격려는 큰 힘이 되었고, 나아가서 귀한 영적 유산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코로나-19는 “가족이 함께하는 장점도 있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 실례로! 최근 가정 폭력이 계속 증가추세”입니다.
부부가 “함께 일을 못 하니 수입이 줄고, 걱정과 염려로 더 예민”합니다. 자녀들이 “집에서 너무 지루해하고 답답해해서, 별것도 아닌 데, 서로 마음 상하고 다툴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가족이 작은 일에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귀한 유산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이발을 못 해서 너무 불편하고” 답답했습니다. 이에 “아내가 2주간 남성 이발 관련 동영상을 보았다기에, 제 머리를” 맡겼습니다.
문제는 “맡겼지만, 너무 불안해서, 이발하는 내내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제가 너무 고맙다고, 다음에 또 해 달라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과의 불화와 갈등은 더 큰 좌절과 낙담으로” 다가옵니다. 반면에 “어려울수록! 가족의 위로와 격려, 칭찬은 큰 용기와 담대함을” 줍니다.
나오미와 “룻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서, 담대함으로 험한 세상을” 이겨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위로와 격려로, 수많은 환난을 담대함으로” 극복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서, 담대함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담대함이 등장할 때의 공통점을 보면, 항상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영적 유산이” 컸습니다. 세상이 “악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위로와 격려는 모두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줍니다.
최근 “영국 초등학교 교사 젠 포울스의 이야기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젠 포울스는 “매일 제자 78명에게 주려고, 18Kg 되는 점심을 준비해서, 무려 8Km를 걸어서 아이들 집을 일일이” 방문했습니다. 이유는 “주변 지역 초등학교 학생 41%가 무상급식을 받고 있었고, 코로나-19로 인해 그 생활이 더 어렵고 힘들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적어도 한 끼라도 배불리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젠 포울스의 “고백처럼, 그가 배달한 점심은 봉쇄된 도시에서 배고픈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한 끼가” 되었습니다. 이 교사는 “아이들 식사와 후식,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아이들 숙제까지 꼼꼼히” 챙겼습니다. 이처럼 “교사의 사랑을 경험한 한 아이의 글을”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세상을 구한 것과 같아요! 점심을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계속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주니까요.” 훗날 “이 교사의 수고가 얼마나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을까요?
오늘 “우리는 누군가 먼저 내게 사랑과 배려, 위로로 다가와 주기를” 기다립니다. 문제는 “내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이 커지고, 마침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사랑과 배려로 다가가야 함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작은 위로와 배려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삶에서 “위로와 격려는 거창할 필요 없고, 거금이 안 들어도 되고, 오히려 전화 한 번, 작은 엽서, 작은 격려와 위로의 글과 사진으로도 넉넉하고” 충분합니다.
문제는 “위로와 격려가 없음에 있지, 작은 위로와 격려는 우리 삶에 큰 유산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까지 “8주째 온라인 예배인데, 예배드릴 수 있음이 감사지만,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해서, 모두가 정말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번 한주도 “먼저 가족과 구역 식구, 가까운 지인에게 사랑과 위로를 전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지금 코로나-19로 힘들지만, 사랑과 위로로 서로를 살피며, 담대함으로 승리하는 영적 유산을 남기기” 원합니다.
2. 담대함을 영적 유산으로 남기려면, 두려워하지 말고 소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8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요한은 “본문 18절에서, 무려 네 번이나 두려움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두려움 “포보스는 이제 곧 다가올 환난과 고난으로 인한 두려움을” 뜻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땅에서 영적 담대함을 상실했기에, 훗날 심판대에 서는 것도 당연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은 “이처럼 초대교회의 연약한 신앙을 잘 알았기에, 이렇게” 도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사랑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어! 어떤 환난과 어려움에도 담대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고 회복될 수 있으니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인 1/3이 일자리를 잃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 연말에 다시 코로나-19가 창궐할 수 있다는 소식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가까운 “지인이 코로나-19로 죽어가고, 백신과 치료제, 대체 약품에 관한 기사가 있지만, 이 또한 실현되어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할퀴고 있는 지금, 우리 자녀에게 정말 남겨야 할 영적 유산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더 나아질 수 있다! 하나님 주시는 소망을 붙잡아야 한다!” 힘들지만! “소망과 믿음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면, 그 영적 유산이 우리 자녀에게 얼마나 강하게” 남겠어요?
코로나-19가 “힘들수록 우리 소망은 더 커져야!” 합니다. 소망은 “지금은 안 보이지만, 앞으로 더 나아짐을 믿는 영적 유산”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보고 듣는 대로 판단하기에, 어려운 현실만 보면 당연히” 넘어집니다. 지금 “코로나-19가 버겁지만, 우리부터 이 어려운 환난을 믿음으로 이겨야! 훗날 우리 자녀의 믿음과 소망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할 수” 있습니다. 삼상 21장에서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합니다.
당시 “다윗은 아기스를 두려워해서, 일부러 미친 체하며 침까지” 흘렸습니다. 비록 “생존을 위해 미친 척했지만, 다윗이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다윗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미래는 더 좋아질 것이란 소망을 붙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미친 척하며 침 흘리는 것이 너무 비참했지만, 그 비참함보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려움과 고난에 좌절하고 낙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나! 너무 비참하고 안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참함과 참담함을 이기고, 그래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거야! 앞으로 더 나아질 거야! 더 큰 은혜가 있어!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마치 “아이가 아픈 후 단단해지는 것처럼, 우리가 소망으로 이 어려움을 이기면 더 단단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 국민 다수는 집을 잃고 지하실에서” 생활했습니다.
당시 “어떤 학자가 독일 가정 몇 곳을 둘러보고 조교에게” 물었습니다. “완전히 무너진 독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조교가 불가능하다!” 답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아니야! 그들은 반드시 일어날 거야! 답하고, 이유를 묻는 조교에서, 지하실 탁자 위에 있던 꽃병을 보았는지” 되물었습니다. 조교가 “보았다! 답하자, 학자가 자신 있게” 답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유야! 폐허 중 꽃을 가꾸었다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는 증거야!”
이처럼 “우리도 힘든 중에도 소망을 붙잡으면, 마침내 코로나-19를 이기고 더 귀하고 복된 영적 유산을 남길 수” 있습니다. 소망은 “코로나-19로 무너진 현실에서, 나와 내 자녀, 가족과 우리 교회, 사회를 다시 살리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유는 “낙망과 좌절은 악한 마귀가 주지만, 소망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힘들 때, 더 나아진다는 소망을 잃으면, 일부가 아니라 영적 유산 전부를 잃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주시는 소망을 잃으면, 나와 내 가족의 미래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항상 좋은 것으로 역전시키는 하나님 은혜,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능력, 나와 내 자녀, 가족을 사랑하는 하나님 사랑을 소망 중에 굳게” 붙듭시다. 한주도 “소망과 담대함으로 절망과 낙담을 이기는 영적 유산을 우리 자녀에게 남기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