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성가 “사역자인 강 명식 씨가 부른 ‘하나님 아버지!’란 찬양이 있는데, 그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제겐 참 두려운 게 많습니다. 잘 모르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부끄러운 일은 헤아릴 수도 없고 지치고 힘들 때도, 그때도 의연한 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좋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다행입니다.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좋습니다.
지난주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중, 이 찬양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목사로서 “잘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부끄러울 때도 많고, 지치고 힘들 때도 많지만, 그래도 의연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버거운 한 주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서, 정말 큰 다행이자 위안”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큰 다행인지! 새삼 깊이 깨닫게” 됩니다. 1세기 말 “초대교회는 이단과 영지주의, 세속 철학의 도전으로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미 거짓 선지자가 이 세상에 나왔고, 벌써 세상 곳곳에 있다.” 강조합니다.
게다가 “당시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는 기독교인의 삶을 더 힘들게” 했습니다. 요한은 “당시 곳곳에서 횡행하는 거짓과 이단 때문에, 바른 분별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요한은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1세기 성도들에게, 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참된 위로와 격려를 위해 요한일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1세기 말이나, 오늘이나 수많은 이단과 적그리스도가 생겨서, 교회와 성도를 어지럽히는 모습이 너무도” 똑같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이단이 너무 많고 우후죽순처럼 발생해서, 이단을 제대로 연구하고 대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너무도 뒤숭숭한데,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뉴스와 거짓 정보에 더 집착하며 힘들어”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싶지만, 실제 삶은 세상에 더 깊이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른 분별력을 잃어가기에, 우리 삶이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죽겠다. 힘들다! 고백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한탄과 하소연으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성경과 “역사에서 많은 영혼이 힘들고 어려운 삶에서 다시 일어났기에, 하나님은 우리도 위기와 아픔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을 통해 “매일의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이를 어떻게 이겨나갈지!” 살펴봅시다.
1. 힘들고 어려운 매일의 삶이지만, 항상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속하다! 이 단어가 총 7번 나오는데, 원어에서 이는 동사가 아닌 전치사”입니다. 속하다! “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누구의 인도를 받는가? 이것으로 소속이” 결정됩니다.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비롯된 소리, 세상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에 속한 삶이지만, 하나님에서 비롯된 소리,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하나님께 속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본문 1절에서, 위기 중 어디에 속해야 할지! 방황하는 영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여기서 “분별하다. 이 단어는 주로 금의 진위를 결정하고 확정할 때” 쓰였습니다. 실제로 “진짜 금이면 문제없지만, 가짜면 그 손해가 크기에, 그 분별에 얼마나” 신중했겠어요? 문제는 “금보다 귀한 생사가 걸린 복음, 참과 거짓 교리에서, 사람들이 분별력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에서 비롯된 소리,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께 속하라!” 명했습니다.
최근의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에 대한 거짓 정보와 질병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입니다. SNS를 “통한 유언비어는 불과 몇 분 만에 한 사업체를 몰락으로” 몰아갑니다. 자주 “미확인 정보가 우리 삶을 더 어렵고 힘들게”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거짓 정보에 흔들리는 이유는, 내가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집중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항상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가 죽고 “200만이 넘는 선민을 이끌고, 가나안 전쟁 앞에 선 여호수아를 상상해” 봅시다. 성경은 “침묵하지만, 얼마나 그 위축됨이 크고, 두렵고” 힘들었을까요? 하나님도 “여호수아의 버거움을 아시기에, 반복해서 힘을 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함께할 것이다. 율법을 붙잡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라! 끊임없이” 격려했습니다.
마침내 “여호수아가 두렵고 힘든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매번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나님에 비롯된 말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세가 죽고, 많은 전쟁 앞에서, 철저히 하나님께 속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뉴저지주는 가능하면,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자가 격리하라!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혼자 또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거보다 늘어난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며” 보내세요?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가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더 풍성히 누려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주일설교 영상과 새벽 음성 설교를 반복해서 듣기” 원합니다.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는 우리 자녀가 더 말씀과 가까이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시기”입니다. 지금의 “위기는 나와 우리 가정이 그동안 덮어 둔 하나님 말씀을 다시 펴는 영적 전환기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하나님 말씀을 받고, 하나님께 속해야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연약한 인간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세상에 속하면, 더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부족해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면, 하늘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이길 힘은, 더더욱 하나님께 속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에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보트가 뒤집혀서 두 사람이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마침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밧줄을 던졌고, 다행히 둘 다 밧줄을” 붙잡았습니다.
한 명은 “힘을 다해 밧줄을 붙잡았지만, 다른 한 명은 마침 옆에 흘러가던 통나무를 보고, 밧줄을 놓고 통나무를” 붙들었습니다. 순간! “얇은 밧줄보다, 굵고 튼튼해 보인 통나무가 더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굵고 튼튼해 보였던 통나무를 붙잡은 사람은 폭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통나무가 “굵고 튼튼해 보였지만, 강변과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족해도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속해야 함을” 압니다.
그러나 “현실은 눈앞의 통나무, 세상에 속할 때가 더” 많습니다. 아닌 줄 알면서 “천국 끈을 붙잡아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세상 끈을, 세상에 속한 삶을” 붙잡습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코로나 19로 인한 고난이 크지만,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삶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2. 힘들고 어려운 매일의 삶이지만, 항상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본문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매일의 삶에서! 더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네 단어를” 소개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잘 알아야 하고, 잘 믿어야 하고, 말씀을 믿은 그대로 분별하고 시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3절의 “듣다. 현재완료형으로 계속 말씀을 들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본문 6절의 “알다. 체험적으로 무엇인가를 아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은 “내게 주신 하나님 말씀과 은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하다. 이는 듣고 알게 된 말씀과 은혜를 삶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초대교회가 어렵고 힘들수록!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서, 복음을 듣고, 체험적으로 알고, 내 것으로 영접하고, 영접한 대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말씀을 듣고, 알고, 믿고, 살아가는 단계 중,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만일 “이 네 단계에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말씀 앞에 서서, 먼저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넘어지고 아픈 내 삶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세상과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한 번이라도 더 들어야 할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말씀 앞에 서서, 삶의 예배자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삶의 예배자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면, 그 믿음이 당연히 더 든든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잘 듣고, 깊이 알아가고, 믿음이 든든해지면, 우리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성장해야 이 어렵고 힘든 현실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전 10장에서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갈릴리 어부 출신인 베드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만큼 “사모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기 원했고, 하나님을 더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가 인도한 집회가 끝날 무렵, 고넬료 믿음은 더 굳건해”졌습니다.
마침내 “고넬료가 예수를 주로 시인해서, 감격과 은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영적 성장이 훗날 고넬료가 당하는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이기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더 깊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모함은 고사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위축감에 짓눌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적 사모함으로 내가 더 성장해야, 지금의 위기를 이길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사모함으로 성장할수록, 코로나-19보다 더 큰 하나님 은혜를 덧입을 수 있고, 내 삶이 더 든든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생계와 물질 문제, 내 이익이 걸린 문제의 경우, 그 간절함과 사모함이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의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이길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희생할 각오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힘들고 어렵다며, 이를 해결해 주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없습니다.
렘 33:3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합니다. 성경은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보다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부르짖으라!” 강권합니다. 내일부터 “오전 7:00, 오후 1:00, 오후 9:00, 하루에 세 번 중 편한 시간에 다니엘 기도운동을 전개하려!” 합니다. 위기의 “시간에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뿐”입니다, 간절함으로, “사모함으로 드리는 기도가 교회와 우리 삶을 자라게 하고, 고난과 아픔을 이기는 힘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청년이 “목사를 찾아와서,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가 청년을 데리고 강가로 가서, 청년을 밀어서 강에” 빠뜨립니다. 수영을 “못하는 청년은 허우적거리며 살라달라고 목사에게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가 청년에게, 이런 심정으로 기도하면 다 응답받을 수 있다!” 답했답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려고, 모두가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가 말씀을 듣고 알아서, 믿고 시인하여 더욱 성장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인력으로 극복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은혜와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기에, 어려울수록! 이 위기를 통해 영적으로 더 크게 성장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