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칼 바르트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꼽힙니다. 바르트는 “무려 8,000쪽에 달하는 교의학을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한 번은 “어떤 기자가 바르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쓴 모든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이에 “바르트는, 성경이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답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철저하게 믿고 신뢰해야 할 분”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다면, 그분은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향한 하나님 사랑도, 너무 크고 깊기에, 이해보다 믿고 감사해야 할 은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크고 깊은 하나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사랑을 알면, 세상을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본문 1절에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말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너무도 큰 사랑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세상이 알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나님 사랑은 현재와 미래, 영생까지 책임져 주시는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은 죄인인 인간에게 소망을 주시고, 인간을 깨끗하게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처럼 큰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미혹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 영광을 가렸고, 주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기까지, 미혹에” 넘어졌습니다. 요한은 “이처럼 큰 하나님 사랑을 받고도 넘어진 초대교회가 너무 안타까웠고, 이를 막기 위해 펜을 들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걷고 뛰며 혼자 생활할 수 있지만, 인간은 누군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어주는 사랑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하나님 사랑이 없으면, 연약한 인간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과 하나님께서 붙이신 누군가의 사랑이 있어야,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 땅의 모든 삶은 물론, 영생에 이르기까지 내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고아처럼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람답게 이 땅을 살려면, 너무도 큰 하나님 사랑을 반드시 체험해야!” 합니다.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 사랑과 멀어지기에, 너무도 자주 넘어지고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무한하신 하나님 사랑을 매일 더 깊이 체험해 가는 인생 여정”입니다. 우리가 “꼭 깨닫고 체험해야 할 하나님 사랑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은 큰 사랑으로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본문 1절은 “하나님께서 큰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인정하셨다.” 말씀합니다. 또한, “본문 2절은, 하나님 사랑이 현재는 물론 천국까지 나를 하나님 자녀로 이끄신다!” 말씀합니다. 바울은 “엡 2:3절에서,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말씀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 아가페 사랑이 나를 하나님 자녀로 세우셨다!” 증언합니다.

조건 없이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 자녀, 하나님 나라 상속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으로 새로운 신분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죄인인 우리에게 이 땅의 평안과 영생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사랑이 이처럼 위대하지만, 초대교회는 이를”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에서 세상의 자녀, 다시 진노의 자녀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도 어렵고 힘든 삶을 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택하셨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자녀 된 영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어떤 가정에서 “딸이 친구들이 놀린다고 치아 교정을 해 달라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엄마가 “그게 얼마나 비싼데! 그냥 살자! 말하자, 딸이 반항하며” 말합니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나를 이렇게 낳았잖아!” 기막힌 “엄마가, 얘! 너 태어날 때 이빨 없었어!” 말했대요! 구체적으로 “나는 하나님 자녀이기에, 악한 세상을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내 구주로 영접해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상속자이기에, 부모의 모든 것을 다 사용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기에! 위축되고 기죽을 필요 없이 당당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인 내 모든 문제를 책임지시고, 항상 승리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공격에도 나를 보호하시고, 막아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롬 8:37절은,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내가 하나님 자녀님을 의심하게 하고, 미혹과 속임수로” 다가옵니다. 사사 기드온은 “불과 300명 군사로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미디안과 싸워” 이겼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고, 당당하게 싸움에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똑같은 하나님 사랑을 받고 살아가지만, 당당하고 담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영적 당당함은 상황과 처지로 인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녀의 영적 당당함은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는 것과 철저하게” 비례합니다. 레나 마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부모가 레나 마리아를 믿음으로 양육해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3살부터 “수영을 배워서, 세계 장애인 수영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세계적 복음성가 가수가 되었고, 많은 기독교인은 레나 마리아를 천상의 음성을 가진 사역자로” 인정합니다. 또한, “저서,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런 “레나 마리아의 영적 고백은 더 큰 감동을” 줍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이고 사랑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과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다.” 이민자의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그 어떤 어려움과 고난보다 더 큰 하나님 사랑!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도” 함께합니다. 비록 “죄인으로 넘어지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내 이름을 당신 손바닥에” 새기셨습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고, 나는 하나님 자녀임을 항상” 기억합시다. 세상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약해지지 말고 당당하고 담대함으로” 살아갑시다. 이처럼 “하나님 사랑으로, 하나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항상 “큰 사랑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악한 세상에서 주의 자녀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2. 하나님은 사랑으로 내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없애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한은 “본문 5절에서, 주님에게는 죄가 없지만, 인간은 분명히 죄인임을” 말합니다. 동시에 “요한은 주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내 크고 끔찍한 죄를 다 없애 주셨다!” 선언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영지주의에 미혹되어서, 이미 엄청난 죄를 용서받았지만, 죄의식에 빠져” 살았습니다. 마침내 “다시 죄인처럼 살아서,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죄로 돌아갔기에, 교회는 불화와 분쟁으로 어려워졌고, 구원의 감격마저” 잃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내 죄를 용서하심을 깨닫지 못함에” 있었습니다. 죄 사함의 “능력을 잃었기에, 이전보다 더 악한 길로 향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누구도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누구도 죄책감으로 아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해결할 수 있다면,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이 내 죄를 다 씻었다!” 말씀합니다. 요 19:30 절에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원어 테텔레스타이는 모든 빚, 죄를 다 갚았다. Pay Off를” 뜻합니다. 동시에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인간이 두려워하는 죽음 문제도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내 죄를 다 없애주셨기에, 우리는 평생 믿음의 길을 걸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6절은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한다.” 말씀합니다. 주님도 “공생애 때, 시험받고, 배고프고, 박해와 핍박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주님은 “참 하나님이었지만, 참 인간이셨기에, 우리 각자가 겪는 모든 아픔을 다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서,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다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은 “나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식과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족해도 “믿음의 길을 걷는 영혼만이 세상이 모르는 하나님의 너무도 큰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여전히 우상의 위협에” 흔들렸습니다. 이들은 “출애굽 1세대가 불 신앙으로 광야에서 사망함을 이미” 목격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상 숭배에 빠져 믿음의 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수 24:15 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현대는 “그 어떤 시대보다, 말씀을 더 쉽고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문제는 “더 쉽고 다양하게 말씀을 접할 수 있지만, 믿음의 길에서 더 많이 벗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꿈에서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질질 끌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여인은, 주님! 제 십자가가 너무 무거우니 십자가를 조금만 잘라주세요!” 말합니다. 주님께서 “여인의 말대로 해 주었지만, 여인은 여전히 무겁다!” 하소연합니다. 그렇게 “여인의 하소연으로, 십자가가 점점 작아졌고, 당연히 무게도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문제는 “여인이 요단강에 도착했는데, 놀라운 모습을” 목격합니다. 사람마다 “무겁게 지고 온 십자가를 다리 삼아서, 요단강을 건너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십자가는 너무 짧아서 요단강을 못 건너서 크게 울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우리 “삶이 버겁고 힘들지만, 내 십자가 바로 지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비록 “지금 내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모든 것이 다 주님 안에서 있기에, 감사함으로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에서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허락하시고, 이를 지고 갈 힘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질 십자가가 힘들어도! 그래도 감사함으로 그 십자가를 지고 믿음의 길을 걸어야 더 큰 하나님 사랑을” 체험합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시험과 상처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항상 “믿음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 사랑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