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수아 묵상(04-200311) ▶ 여리고를 넘어가려면(수 2:1~7)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프랭크 루프는 오랫동안 관절염으로 고생해 온 장애인”이었습니다. 한번은 “병상에 누워있는데, 하나님께서 프랭크 루프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지금 당장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가만히 있니!” 프랭크 루프는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이 병상에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주변의 불신자와 낙심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복음 편지를 발송하는 사역을 시작하기로 결단”합니다.
비록 “자신은 병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매년 14,000여 통의 복음 편지를 보내서 수많은 환자를” 위로했습니다. 우리 삶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진짜 어려움은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좌절하는 내 연약함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실제로 “내가 겪는 위기와 어려움을 이기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이에 상응하는 도움과 은혜를 베풀며 나를 격려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에 위축되기보다 이를 넘어가려는 의지와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두 번의 정탐꾼을” 파송했습니다. 한 번은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을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여리고 정탐을 위해 2인을” 보냅니다.
당시 “가나안 전쟁을 시작하며! 첫 전쟁 상대가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여리고 성이었기에, 여호수아와 선민이 느끼는 부담이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선민 이스라엘은 여리고를 포기할 수 없었고, 다시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려워도! “반드시 여리고를 넘어가야 가나안 정복 전쟁이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도 “보이는 여리고는 물론 보이지 않는 여리고! 넘어야 할 고난과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코로나 19, 경제적 문제, 자녀 문제, 건강과 신분 문제! 우리가 다 넘어야 할 여리고들”입니다. 또한 “매일 부딪히는 마귀와 영적 전쟁도 우리가 넘어야 할 여리고”입니다. 지금 “여러분 각자의 삶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여리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 “각자가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려면, 반드시 여리고를 넘어가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영혼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의 여리고에 기가 질려 포기하고 후퇴할 때가 더” 많습니다.
때로 “여리고 앞에서 넘어가기보다 주저하고, 여리고를 외면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다양한 여리고의 버거움을 잘 아시지만, 그 여리고를 믿음으로 극복해야 한다!” 도전하십니다. 이유는 “부족한 우리가 여리고를 넘어갈 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여리고를 넘어가서 얻을 새 지평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 삶을 가로막는 여리고를 넘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우리가 여리고를 넘어가려면,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본문 1절은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말씀합니다. 정탐꾼, “멜락겔림은 전쟁에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특별히! “원어와 과거 성경에는 있는데, 지금 쓰는 성경에 빠진 단어가” 있습니다. 과거 성경은 “본문 1절에서, 정탐꾼으로 가만히 보내며 이르되! ‘가만히!’란 말이” 나옵니다.
가만히 “원어 헤레쉬는 비밀리에 조용히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선민에게도 정탐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했음을” 뜻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정복을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 잘 알 수 있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정탐꾼의 안전을 위해, 여리고로 정보가 넘어가지 않도록, 가만히 준비했던 것”입니다. 특히 “주석은 여호수아가 세운 두 정탐꾼이 신실한 영혼이라 말하는데, 사람도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강조”합니다.
이유는 “과거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탐 후, 10명의 불 신앙이 공동체에 미친 해악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과 “갈렙이 신실하게 보고했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리고 정복을 위해, 은밀하고 조용히 준비했고, 가장 신실한 영혼을 세워서 여리고의 사정을 알아보려 했던 것”입니다. 삶에서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음은 중요성을 모르거나, 교만하거나, 또는 무엇을 준비할지! 방향감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준비 없는 도전은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고” 위험합니다. 실제로 “준비했는데 실패하는 것과 준비하지 않고 실패한 것은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특히 “삶에서 꼭 넘어가야 할 여리고가 있다면, 철저하고 꼼꼼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만일 “넘어가야 할 여리고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내 앞의 여리고가 버거울수록! 더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 준비도” 필요합니다. 다윗이 “시글락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아말렉이 침공하여 모든 것을 약탈해” 갔습니다. 당시 “다윗의 추종자가 다윗에게 돌을 들 정도로, 다윗의 상황은” 힘들었습니다. 어쩌면 “다윗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여리고에 직면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말렉의 경로를 알고, 600명을 철저하게 준비하여” 쫓아갑니다. 출정 전 “하나님께 간절하게 묻고, 하나님의 응답과 확신을 듣는 영적 준비도” 마쳤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아말렉을 물리쳤고,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다 찾아서” 돌아왔습니다. 당시 “다윗의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가, 삶의 여리고! 돌에 맞을 위기를 이기게” 했습니다. 삶에서 “여리고를 넘어가려 할 때, 영적으로 준비된 영혼이 누리는 특권이 참으로” 많습니다.
영적으로 “준비하는 영혼은 여리고가 주는 두려움보다,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더 크고” 온전합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앞에서 망연자실하지 말고, 항상 더 철저히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지만, 그 역사가 가장” 깁니다. 무려 “1877년에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니, 그 역사가 얼마나 장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윔블던 테니스 구장은 일 년에 2주 사용을 위해서, 일 년 내내 준비함을” 아세요?
특히 “구장 매니저는 일 년 내내 잔디를 최상의 상태로 꾸준히 준비해서, 대회를” 치릅니다. 또한 “옛말에 양병십년 용병일일(養兵十年 用兵一日), 병사를 키우는 데 10년이 걸리지만, 그 병사를 사용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루를 “쓰기 위해 10년을 준비하고, 그래서 여리고를 넘어갈 수 있다면, 이는 절대로 낭비가” 아닙니다. 정말 “넘어가야 할 여리고라면, 하루 쓰기 위해 10년을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지금 잘 준비된 믿음이 있어야, 주님 주신 구원을 빼앗기지 않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된 영혼을 가장 선한 길과 승리로 이끌고, 복되고 귀한 동역자를 붙여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여리고에 위축되지 말고, 철저한 준비로 여리고를 넘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2. 우리가 여리고를 넘어가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파송한 정탐꾼 2인은 여리고에 있는 기생 라합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본문 2절에서, 누군가 여리고 왕에게 라합의 집에 정탐꾼이 숨어들었다!” 신고합니다. 본문 3절에서, “여리고 왕은 발 빠르게 라합의 집을 수색하여 정탐꾼을 찾으려” 했습니다. 비록 “두 정탐꾼이 무사했지만, 큰 위기였고, 여호수아의 계획이 실패할 뻔” 했습니다. 여기서 “두 정탐꾼이 이 위기를 넘긴 이유는, 철저히 하나님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도움이 발 빠른 여리고의 수사망에서 두 정탐꾼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두 정탐꾼을 라합에게 이끌었고, 라합이 이들을 도울 마음이 생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도움으로, 여리고 왕의 집요한 추격을 이기고,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삶에 “수많은 여리고가 있지만, 하나님 도우심이 없었다면 인간은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언제나 가장 좋은 길, 사람, 방법을 통해 나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때로 여리고가 너무 크고 힘들어 보여서, 하나님 도우심을 체험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도움이 항상 나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버거운 여리고를 만나면, 이를 피하도록 다른 길을 열어주며” 도우셨습니다. 버거운 “여리고를 넘어가도록, 새길을 열어주시고, 상황을 바꾸며” 도우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버거운 여리고를 넘어가기 위해, 하나님 도움을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여리고 정복은 “여호수아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정복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여리고 전쟁은 “하나님께서 이끄셨기에, 선민과 여호수아는 이를 믿고 따라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앞서가심을 따라갔기에, 두려운 여리고를 넉넉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2차 선교 사역 중, 갑자기 마케도니아 사람이 도움을” 청했습니다.
당시 “바울은 1차 선교 사역이 있었던 곳을 다시 방문하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마케도니아! 유럽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디기” 원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깨달았고, 자신의 계획을 뒤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뒤따라 감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리고를 여러 차례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바울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뒤따라갔기에, 유럽 대륙이 변화되는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오늘 “우리 문제는 하나님보다 내가 앞서가고, 하나님이 내 뒤를 따라오셔야 한다!” 생각합니다. 내 “죄와 실수로 어지럽혀진 곳을 하나님께서 알아서 정리해 주길 원하기도” 합니다. 때로 “신문과 방송, 여론에 휩쓸려 여리고를 정복할 수 있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소식과 도전은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공격을 위해 진격 중, 어떤 산의 정상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이 산이 아닌 것 같다!”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진격해서 다른 산의 정상에 섰는데, 나폴레옹이 또” 말합니다. “이산도 아닌가 보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군사들이 서로 수군거리며, 나폴레옹이 아닌가 보다!” 말했대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 도움으로 난공불락 여리고를 넘어가기 원하면, 절대로” 잊지 맙시다.
먼저 “여리고를 넘기 전! 하나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 기뻐하는 것이 가장 온전한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보니, 세상이 주는 것, 세상에서 일어난 일은 항상” 가변적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절대적 기준이 없고, 세상은 상황과 처지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을 뒤따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다행히! “성령님은 지금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부족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어려운 “여리고를 만나 고생할 때, 필요한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죄인이고 부족해도!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겠다! 돕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버겁고 힘들어 보이는 여리고가 아니라, 부족한 나의 불 신앙”입니다. 항상 “하나님 도우심을 의지하여, 힘들고 버거운 여리고를 넘어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