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수아 묵상(01-200219) ▶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었지만(수 1:1~6)

살다 보면, “반복되는 좌절과 절망이 쌓여,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주변에 피해 주지 않고 살았는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우두커니 서 있을 때도” 많습니다. “엄청난 좌절이 전화위복으로 그 사람의 인생에 최대의 분기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전화위복의 기회는 항상 있다!” 이처럼 “명언은 우리 삶에서 절망 중 전화위복이 분명히 있지만, 모두가 이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영혼이 더 깊은 절망과 상처에 빠져서, 큰 아픔 중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절망을 넘어야 길이 열리고, 낙담과 좌절로 넘어지면 길이 닫힘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가 밟는 모든 땅을 줄 것이다. 가나안이 너희 영토가 될 것이다.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이다. 가나안을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절망과 낙담에 빠진 여호수아에게 다양하고 구체적인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용기와 격려에 비례해서 또 다른 반복 구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모세는 “하나님께서 내 종이라고 말씀할 정도로, 성경 전체를 보아도! 가장 크게 쓰임 받은 사역자”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전쟁을 앞둔 그 중요한 시기에, 모세가 죽고 더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40년 광야 생활은 척박했지만, 생사를 결정하는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될 가나안 전쟁은 생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치열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모세가 가장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여호수아와 선민이 가지는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요? 이민자의 “삶은 매 순간 페달을 힘껏 밟아야 나가는 자전거처럼 힘들고” 버겁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찾아오는 절망은 이민자의 삶을 더 힘들고 아프게” 합니다.

많은 이민자가 “새벽에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화들짝 놀라고, 불안해!” 합니다. 때로, “전혀 생각지 않았던 절망과 좌절이 나를 짓눌러서 옴짝달싹을 못 하게 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방이 모두 막혀도, 위가 열렸기에, 우리는 하나님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한소망 교회도 “과거 선민과 여호수아가 느낀 절망과 좌절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부흥과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소망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과거보다 많이 약해졌지만, 우리 한소망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를 묵상하며, 비록 힘들고 어려운 절망과 좌절이 있었지만, 하나님 주시는 은혜와 말씀을 토대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귀한 계기가 되기” 원합니다. 첫 시간인 오늘 “모세가 죽었지만,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모세가 죽은 절망과 아픔이 있어도!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끝났다. 포기하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문 곳곳에서, 힘들고 어려워하는 여호수아와 선민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요단을 건너서, 선민에게 주신 땅으로 전진하라! 모세에게 약속한 땅, 너희가 밟는 모든 땅을 주겠다! 선민의 조상에게 약속한 땅을 차지하도록 앞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은 “비록 위대한 일꾼 모세가 죽었지만, 더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말씀한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동행하고, 승리하도록 책임지겠다!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절망 중에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문제는 목표의 성격”입니다. 우리가 “전진해야 할 목표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여야!” 합니다. 만일 “절망 중 내가 인간적으로 정한 목표라면, 더 힘들고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주신 목표라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기에, 충분히 성취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삶에 모세가 죽은 것처럼 찾아오는 절망이 많지만! 그래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와 교회에 주신 목표를 향해 힘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끊임없이 “모세가 죽는 절망이 찾아오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영적 명제가”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모두가 함께 일어나서, 매사를 더불어 동역해야!” 합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절망과 좌절이 클수록, 우리는 더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와 교회에 주신 목표를 향해 힘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전! 사도들의 상황은 모세가 죽은 것처럼, 절망과 좌절 그 자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일부는 고기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오합지졸이었던 사도들이 다시 능력의 사도로 변화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땅끝까지 증인 되는 삶을 새로운 목표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고, 사도들은 한 번도 분쟁하지 않고, 항상 더불어” 동역했습니다. 그렇게 “함께하며 동역한 기록이 사도행전이고, 그 능력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문제는 “좌절과 절망이 아니라, 우리가 목표를 바르게 보는가? 하나님 주신 목표를 향해 우리가 얼마나 하나 되는가?”에 있습니다. 함께 “동역하면, 없던 힘이 생기고, 보이지 않던 길이” 보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 많은 것을 갖추고 있기에, 성도 모두가 연합하고 일치함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2011년!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무려 70만 톤의 암석이 무너지면서 33명이 700m 지하에 고립되는 절망적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33명의 “광부는 17일 동안 48시간마다 비스킷 반 개, 생선 통조림 두 숟갈, 우유 반 컵으로 연명하며, 끝까지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투를” 벌였습니다. 마침내 “17일 만에 33명의 생존 소식이 알려졌고, 구조대의 구조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름 “13cm의 구멍을 통해 산소와 물, 음식과 조명, 통신 기구를” 공급했습니다.

그렇게 “무려 69일 만에 33명 전원이 구조되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리더인 “루이스 우르수아의 인도로, 끈끈한 동료애로 반목과 분쟁, 원망을” 이겼습니다. 절망 중에도 “우리는 살 수 있다! 서로 격려하고 하나 되어, 마침내 기적과도 같이 생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33인 중, 왜 절망한 사람,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겠어요? 그러나 “33인은 리더를 중심으로 서로 신뢰하며, 절망과 무기력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도 전진할 수 있고, 전진하지 못할 정도의 절망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 되지 못함이 문제지만, 하나 되면, 가나안 정복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교회에서 “전도와 사역도 중요하지만! 하나 되어야 교회가 교회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힘들고 “어려워도!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절망이 있지만, 서로 하나 되어 하나님 주신 목표로 함께 나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2. 모세가 죽는 절망과 아픔이 있어도!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여호수아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과거 “힘들고 어려울 때!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묻고, 지시대로 하면 매사가” 형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가 죽었고, 생사를 걸고 수많은 이방인과 가나안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본문 6절에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명령합니다. 당시 “하나님의 격려가 꼭 필요할 정도로, 여호수아의 절망과 좌절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가나안 전쟁은 400년간 정착하고 살아온 이방인과 싸워야 할 전쟁”이었습니다. 선민이 “광야에서 40년을 전쟁 없이 살았기에, 가나안 전쟁은 절대로 쉬운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하나님께서 반복하여 격려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민과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했기에,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자인 “우리도 강하고 담대해야 함을 알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생각지 않은 문제들, 다양한 어려움과 위기에 위축되어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주일에 “은혜받고, 월요일에 세상에 나가면 다시 두렵고 위축될 때가” 많습니다. 은혜가 있어도! “건강과 신분 문제, 경제적 문제, 자녀로 인한 문제가 여전히 나를” 괴롭힙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도움도 아는데, 약하고 두려울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함은 세상과 인간이 아닌,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영적 선물”입니다.

강하고 “담대함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시는 영적 은혜”입니다. 실제로 “모세가 죽었지만, 강하고 담대하려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이 내 삶을 강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본문에서 “선민은 가나안 앞에 섰지만, 40년 전의 상황은 본문과 많이” 달랐습니다. 과거! “선민은 정말 출애굽이 가능할까? 광야에서 살 수 있을까!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성취하셨기에, 가나안 입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출애굽 약속을 성취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 전쟁의 승리를 약속했고, 이를 성취할 것을 온전히 믿어야!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이 “악해도, 부조리가 많아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로 해변의 모래알과 같은 미디안과 싸워서” 대승했습니다. 기드온은 “32,000명이 300명으로 줄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겠다! 약속의 성취를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취를 확신했기에, 기드온과 300명 용사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연약해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말씀하고” 응답하십니다.

때로 “말씀을 통해, 기도와 성경 공부를 통해, 대화를 통해 말씀하고” 응답하십니다. 그렇게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말씀, 도전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 방법대로 성취되기에,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최근에 “주일학교의 한 아이와 대화 중, 어떤 일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손가락만 걸고 끝내려 했는데, 아이가 저를 이상하게 보면서, ‘이게 다가 아닌데!’ 아주 난감해”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자,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복사하고, 도장 찍고, 스캔하고, 코팅까지 해야 해요!” 속으로 “약속 한 번 하기 참 힘드네! 또한, 어린아이가 이렇게 복잡한 약속 과정을 다 외우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아이와 약속한 후, 제 마음이 참” 씁쓸했습니다. 우리가 “약속은 많이 하지만, 얼마나 안 지켰으면 이렇게 복잡한 과정으로 약속을 확인하게” 되었을까요?

성경에서 “하나님 약속이 무려 36,500여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은 모세가 죽는 아픔이 있어도, 약속하신 것을 항상 그대로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문제는 “약속의 성취가 분명히 있지만, 강하고 담대하지 못해서, 이를 누리지!” 못합니다. 삶에서 “모세가 죽는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기에,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어도! “하나님 약속을 믿고, 강하고 담대함으로 하루하루 승리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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