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인이 타고 다니던 말이 도망가자, 이웃 주민들이 찾아와서 노인을” 위로했습니다. 이에 “노인은 ‘괜찮다! 큰일 아니다!’ 의연하게 말했는데, 며칠 후 도망간 말이 많은 야생마를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이웃 모두가 “크게 축하하자, 노인은 좋은 일인지 두고 봐야 한다며 크게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변방에서 온 말을 타다가 낙상하여 다리가 부러졌지만, 노인은 이 일도 큰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얼마 후! 전쟁이 발생하여 많은 청년이 출정하여 사망했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 골절로 인해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 회남자란 책에 나오는 새옹지마 고사”입니다. 우리 “인생은 평생 생로병사, 희로애락으로 끊임없는 Up & Down이” 반복됩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도 그 인생이 일직선으로 항상 승승장구하며 목적지를 향해 살아갈 수 없고, 오히려 Up & Down을 경험하며 S자로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 최우선 신앙과 계산 없는 순종으로 극심한 가뭄 중에도 평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살만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생명처럼 소중한 아들이 병들어 위중함을 넘어 죽고” 맙니다. 이에 “사르밧 과부는 가장 먼저 엘리야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당시 엘리야가 청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듣고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래도 “엘리야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죽었던 아들을 살려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쁨과 절망, 생명과 죽음이 오가는 Up & Down이 너무도” 컸습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 사업과 건강, 믿음과 인간관계, 경제 상황과 미래에 대한 꿈이 Up & Down 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회는 “물론 세계 전체도 Up & Down 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혹자는 이 고난에 좌절하여 넘어지지만, 혹자는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도” 합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흔들리고 불안한 것보다, 내 신앙이 Up & Down 하며 굳건하지 못하고 흔들림이 더 큰 문제”입니다. 세상은 “코로나-19로 인해 힘들고 죽겠다며 하소연하지만, 우리는 요동하지 말고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Up & Down이 심한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인생의 Up & Down이 극심할수록,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두 번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본문 18절에서 “사르밧 과부는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며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여!’ 엘리야를” 부릅니다. 또한 “본문 24절에서,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자, 사르밧 과부는 놀라고 감탄하며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쉬 하엘로힘은 하나님 일을 수행하고 대행하는 사람이란 뜻인데, 우리는 이 단어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사람!” 엘리야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꾼 능력은, Up & Down이 극심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이쉬 하엘로힘으로 굳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와 기독교인을 조롱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사람, 이쉬 하엘로힘으로 살아가지 않음에”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 삶을 보면 하나님 사람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교회에 출석하고, 직분이 있고, 성경을 가지고 다니고, 자동차에 물고기 문양을 부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은 Up & Down이 극심한 세상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고, 어떤 경우에도 세상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비극은 코로나-19를 겪으며,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가는 영혼은 점점 줄어가고, 세상에 함몰되어 살아가는 영혼이 더 많아짐에”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과연 우리 중 하나님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서, 훗날 천국에서 만날 영혼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이쉬 하엘로힘은 교회 안보다, Up & Down이 극심한 세상! 교회 밖에서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갑니다. 내가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세상이 먼저 나를 하나님 사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Up & Down이 “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보다 더 정직해야 하고, 더 법을 잘 준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행전 5:29절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말씀합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이 너무도”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체포해서 협박과 회유를 병행했지만,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겠다! 생명 걸고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설 것이다.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Up & Down이 “극심한 세상이었지만,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았던 사도들을 지키고” 보호하셨습니다.
우리가 “Up & Down이 극심한 이 땅에서 세상 편에 서면 잠깐은 편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세상은 항상 내 편이” 아닙니다. 반면에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께서 나는 물론 우리 후손까지 하나님 은혜로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가 18세기 두 인물을 비교하여 글을” 썼습니다. 한 명은 “미국 영적 대각성 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드이고, 다른 한 명은 당대 유명한 무신론자였던 맥스 쥬크스”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계는 5대 동안 1,394명의 자손이 배출되었는데, 사회에 유익이 되는 지도층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실례로 “대학 총장 13인, 대학교수 66명, 법조인 130명, 목회자 100명, 의사 60명이” 나왔습니다. 맥스 쥬크스도 “5대에 걸쳐 1,292명의 자손이 배출되었지만, 자손 중에서 310명이 빈곤층, 전과자 150명, 알코올 중독자 100명, 여인들 절반은 매춘부였고, 무려 540명이 정부에 큰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달랐을까요? 이유는 “조나단 에드워드가 남긴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모두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 살아가라!” 핵심은 “Up & Down이 극심한 세상에서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았는가?”에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엉망인 지금, 해결책은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인 각자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감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한주도 “Up & Down이 있지만, 항상 하나님 편에 서서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2. 인생의 Up & Down이 극심할수록,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죽은 아들을 보고 이제 끝났다! 포기하지 않고 엘리야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당시 “엘리야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상식적으로! “엘리야는 죽은 아이를 보고 ‘죽었으니 다 끝났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죽은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다락방으로 올라갔고, 아이가 살아나길 원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본문 20절에서 “부르짖다! 와크라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으로 도움을 호소하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 “생명이 사망이 되었지만, 엘리야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로 죽었던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생명과 죽음, 절망과 소망, 눈물과 웃음의 Up & Down을 경험하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엎드림에 능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Up & Down이 아무리 극심해도, 하나님께 끊임없이 도움을 청하는 엎드림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Up & Down이 극심해지면, 살아계신 하나님보다 가변적인 세상과 사람을 더 많이 찾아” 갑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샤워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신체 중,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가로 그 나이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10대는 얼굴, 20대는 가슴 근육, 30대는 복근, 40대는 배를 보고, 50대는 이마 주름을 본다!”
세상은 “항상 변화무쌍하고 가변적이어서, 절대로 정답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Up & Down이 극심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정답과 생명,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삶의 Up & Down이 극심할수록 더더욱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항상 기도하며 주신 사역을 감당했다고 곳곳에서” 증언합니다. 실제로 “주님은 간절히 기도하고 12명의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새벽마다 “항상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병이어 사건 후! “사람들이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인기가 최고조일 때도, 주님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내 영혼을 받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도 Up & Down이 극심한 현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헌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연약하고 부족한 나는 더 간절함으로, 더 끊임없이 하나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상보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처음에는 뜨거웠던 기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금은 힘들고 죽겠다는 하소연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간절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때”입니다. Up & Down이 “심한 세상에서,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할 때, 역전과 변화, 회복과 치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응답이 분명히 있지만, 내가 세상의 Up & Down에 낙담하여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왜 이렇게 코로나-19가 길어지지? 이제는 지쳤다! 될 대로 되라! 나 하나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도, 다시 살리고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토머스 머독이 “링컨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링컨은 남북전쟁으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머독은 한밤중에 어디선가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놀랍게도! “링컨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나라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지켜 달라고!’ 눈물로 절규하듯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때! 머독은 지도자가 기도하는 한 이 나라는 바르게 설 수 있다! 큰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지난 6월 1일, 인종 차별 시위로 미국 전역이 들끓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참모진을 대동하고 세인트존스 교회 앞에서 성경을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경찰은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켜야!” 했습니다. Up & Down이 “극심한 오늘, 과연 어떤 모습이 정말” 필요할까요? 우리가 “과연 어떤 모습을 본받아야 하고, 어떤 모습을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까요?
지금은 “외적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노력보다,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렵기에, Up & Down이 극심하기에, 우리가 더 간절하게,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 때”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어렵고 곤고할 때, 끊임없이 드리는 기도에 반드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힘들지만!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서 세상의 Up & Down을 극복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