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보스턴의 작은 교회에서, 주일 학교 교사였던 킴볼이 구두 수선공 소년 무디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훗날 “프레더릭 마이어가 무디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서 저명한 성경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프레더릭 마이어는 윌버 채프먼에게 복음을 전해서 YMCA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윌버 채프먼은 “야구 선수였던 빌리 선데이에게 복음을 전했고, 부흥사가 된 빌리 선데이를 통해 빌리 그래함이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세워졌습니다.

특히 “1973년 빌리 그래함은 여의도에서 무려 33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해, 한국교회 부흥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고전 3:6절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한다!” 말씀합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은 열매를 맺으시고, 씨 뿌리고 물 주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점점 줄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열매 맺는 능력은 여전하지만, 우리가 바르게 씨 뿌리고 물 주는 사역을 감당하지 못함에” 있습니다.

게다가 “팬더믹으로 인해,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은 뿌려야 할 씨를 점점 잃어가고, 주는 물도 점점 말라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서 막바지에, 그동안 크레테에서 사역하던 디도와 세나, 아볼로를 니고볼리로 부르고, 디도 대신에 아데마와 두기고를 크레테로 보내서 사역하게”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사역자들의 이동을 명한 이유는, 이들 사역자 각자는 물론 이들이 헌신하는 사역지마다 더 많고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기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계속되는 “팬더믹으로 인해, 많은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으며 문 닫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힘들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지면서, 현상 유지만 해도 은혜다!”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이 힘들지만, 그래도 열매 맺고 부흥할 기회가 분명히 있는데도, 이를 찾기보다 오히려 위축되어 웅크리고 있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은 물론 과거에도, 우리는 항상 ‘힘들어 죽겠다. 불경기다.’ 한숨과 하소연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팬더믹 이후, 하나님의 교회와 기독교인이 다시 일어나서 제구실할 방법과 지혜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다시 “지혜와 힘을 모아서, 뿌려야 할 씨와 세상을 바꿀 물을 준비해서 선한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가 힘든 중에도,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려면, 배우며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은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 사람들은 크레테 성도를” 말합니다. 디도는 “크레테 사역을 정리하며, 크레테 성도가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좋은 일에 힘쓰는 삶을 배우게 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디도가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본인도 계속 배우며 좋은 일에 힘쓰며 살아가야 할 당위성이” 있었습니다.

아니! “바울과 디도, 다른 사역자와 크레테인 모두 계속 배워가야, 더 선한 열매를 맺어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법 없이 사는 사람, 선한 삶이 있다고 하지만,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앗을 뿌리고, 맑은 물을 주어서 열매를 맺으려면, 죄인인 인간은 계속 배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배움은 “내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것을 사모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인정해야 가질 수 있는 겸손”입니다.

실제로 “배우며 사는 인생과 자기 경험과 생각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더 많은 열매를 맺어가려면, 세상의 기술과 지식도 배워야 하지만, 무엇보다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성경에 관해 더 깊이 배워가야!” 합니다. 작년 “팬더믹이 시작되며, 모든 성도에게 성경을 필사해 보자! 무거운 도전을” 던졌습니다. 놀랍게도 “적지 않은 성도가 성경 필사에 참여했고, 교회에서 제공한 용지가 벌써 만장 정도가” 나갔습니다.

이미 “세 분이 성경 필사를 마쳤고, 저도 신약을 마치고 이사야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경에 관해 너무도 무지하면서,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최근 “에릭 레이먼드 목사가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를 솔직히 답해 봅시다!’ 칼럼을” 썼습니다. 레이먼드 목사는 “많은 기독교인이 바쁘고 분주해서 성경을 읽지 않고 배울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거짓말이고 틀린 말이다!” 지적합니다.

바쁘고 “분주해도 뉴스와 TV는 챙겨 보고, SNS는 물론 만날 사람 만나고, 필요한 것은 다 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에 “레이먼드 목사는 우리가 성경을 안 읽는 이유 5가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성경은 이해하기 어렵다. 성경 읽는 훈련이 안 되어있다. 성경은 진부하고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다.” 최근 “많은 분이 이제 한계다, 못 살겠다, 특히 영적 정신적 문제를” 호소합니다.

지난 “월요일 뉴저지 주지사가 교회마다 수용인원 50%가 현장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림이 웰빙과 정신 건강에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팬더믹 이후를 깊이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팬더믹은 “과학과 백신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예배를 회복하고, 말씀을 배워가야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생각과 경험이 다르지만, 이제는 우리가 다시 현장예배를 세워가야 할 때임에” 분명합니다.

지금은 “주저앉아 있기보다, 우리가 다시 말씀 앞에 서서 성경을 더 깊이 배워가야 할 때”입니다. 물론 “우리가 매번 성경에만 집중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말씀을 배울 시간과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요즘 매일 설교하면서, 부족해도, 엄마가 자녀에게 정성껏 밥을 지어 먹이는 심정으로 설교를” 준비합니다. 물론 “온전하지 않지만, 주일예배, 사순절 특새, 수요/금요 모임, 성경 일독 문제로 충분히 말씀을 배워갈 수” 있습니다.

눅 10:39절은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말씀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마치 제자가 스승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배우려는 자세로,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말씀을 배우려는 마리아를 ‘좋은 편을 택했다! 빼앗기지 않으리라!'” 칭찬했습니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워도, 마리아처럼,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열정과 사모함, 배우려는 태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 가정의 88%가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불과 37%만 일주일에 한 번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삶이 어렵다고, 점점 더 말씀과 멀어지며 열매 없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 4:6절은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도전합니다. 성경은 “말씀을 배우고 안 배우고를 생사의 문제, 흥망의 문제로” 말씀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가 다시 말씀을 배우려는 열정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어가기” 원합니다.

2.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서로를 향한 진정한 문안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5절은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말씀합니다. 문안하다 “아스파조마이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포옹하다. 존중하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고귀하게 여기고, 축복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과 디도, 아데마와 두기고, 세나와 아볼로는 모두 서로 문안하는 사이, 서로 존중하고 합력하는 관계”였습니다.

이처럼 “이들의 진정한 문안은 더 많은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더 나은 물을 공급했고, 더 많은 열매를 맺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관계가 깨지면,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잃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문안하고 존중하면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누구보다 바로 나를 위해서, 상대방이 내게 문안하며 다가오기 전, 내가 먼저 문안하며 다가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교회와 기독교인이 옹졸하다!” 비판합니다.

성경은 “‘나를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라!’ 하셨지만,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가 깨지면, 아예 안 보려 하고, 화해조차 거부하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은 영혼을 내 기준과 생각으로 외면하며 거부하고, 정죄할 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신속히 날아가는 인생, 안개와 풀처럼 짧은 인생인데, 서로 미워하고 살아가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큰 영적 손실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옹졸함을 이겨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기 원한다면, 서로 문안하며 살아가야 한다!”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로 다윗과 요나단을 꼽지만, 둘은 20~25세의 나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둘을 비교하면, 하나는 왕족이자 차기 대권 주자이고, 하나는 이름 없는 목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영향력과 자란 환경까지 달랐지만,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에게 진정으로 문안하여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다윗은 요나단 아들 므비보셋에게도 진심으로 문안”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과 문안이 깨졌기에,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문안하다. “이는 서로 다름을 전제로 하고, 서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할 미완의 단어”입니다. 부족해도 “우리가 서로 진심으로 문안할 수 있다면, 이로 인한 열매는 풍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오라! 모든 영혼을 진심으로 문안하며” 맞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진심 어린 문안이 죄인인 나를 살리고 영생으로” 이끄셨습니다. 우리가 “사후는 물론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가려면, 가까운 가족, 한 교회를 섬기는 우리가 서로를 향하여 진심 어린 문안이 있어야!” 합니다. 102년 전 “삼일 운동 당일, 민족 대표 33인이 종로구 인사동 소재 태화관에 모여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인 15명, 불교 2인이 서로 달랐지만, 함께” 모였습니다.

당시 “그들은 서로 믿는 대상, 목표와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지만, 그래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일본으로부터 국가의 독립을 위해 서로 하나가 되었지만, 서로 다른 33인이 합력하였던 기초는 한 목적을 위하여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문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존중하며 문안했기에, 삼일 운동은 상해 임시 정부란 열매는 물론, 일본의 식민 통치가 틀렸고, 한국을 향한 태도를 바꾸어야만 한다는 열매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요 13:34~35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주님부터 먼저 죄인인 내게 다가오셔서 문안하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나무는 서로 떨어져 있어도, 홀로 있어도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인간은 절대로 홀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강조한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는 모두 관계성, 서로를 문안함에 기초를 두기 때문”입니다. 올해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가 다시 마음을 열어서, 주님의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스파조마이 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과 가정, 각 구역과 교회에 더 풍성한 열매가 맺어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