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데이비드 씨멘스는, 마귀가 인간을 물질적, 환경적으로 미혹하며 공격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심리적 공격이다!” 말했습니다. 먼저 “사탄은 인간의 자존심을 짓밟으며” 다가옵니다. “너는 아무 재능도 없어, 너는 너무 무능해, 할 줄 아는 것이 없잖아!” 둘째로 “사탄은 우리의 약점과 불투명한 미래, 불안함을 조장하며 공격해” 옵니다. “너는 미래가 없어, 너는 아무 쓸모가 없어, 네 죄가 얼마나 큰지 알아? 너는 너무 게으르고 미련해!”
이처럼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부드럽고 교묘하게, 그럴듯한 속임수로 나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이 마귀의 공격인지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미혹에 넘어져” 실족합니다. 문제는 “마귀의 공격은 우리의 생사, 영생과 영벌을 결정할 정도로 치명적이기에, 우리는 대적의 공격을 바로 알고, 반드시 영적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크레테의 다양한 연령층에 속한 성도를 바르게 양육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당시 “크레테 섬은 악한 짐승/거짓말쟁이/게으름뱅이가 많았던 영적 황무지였지만, 그래도 교회 안에는 노인 남녀, 청년 남녀, 다양한 계층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크레테 섬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크레테 성도가 대적 마귀의 공격으로 부끄럽게 되지 않도록, 이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권할 목적으로 디도를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대적 마귀의 악한 공격이 나이와 성별에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다가옴을 강하게 경고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팬더믹을 지나고 있기에, 누구나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여전히 악한 마귀는 삼킬 자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변 곳곳을 보면 볼수록, 마귀의 물리적 환경적 공격, 영적이고 심리적 공격은 날마다 더 집요해져” 갑니다.
문제는 “그럴수록, 어렵고 힘들수록, 겁먹고 위축되지 말고, 더더욱 믿음과 말씀 위에 서서 대적의 공격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매번 “마귀가 ‘다 힘들어, 다 죽을 지경이야, 그러니 너도 대충해!’ 속삭여도, 다시 내 신앙을 점검하며, 나부터 영적으로 더 무장해야!” 합니다. 악한 “대적의 집요하고 교묘한 공격은 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 말씀과 믿음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악한 대적의 공격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봅시다.
1. 대적의 공격을 이기려면,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왜 크레테의 남녀노소에게 필요한 덕목을 일일이” 말했을까요? 또 “바울은 본문 7절에서, 왜 디도에게 너부터 선한 일에 본이 되어야 한다!” 말했을까요? 핵심은 “만일 디도가 지금부터라도 크레테 성도를 바르게 가르치면, 아직 시간과 기회가 있어서, 점점 선하게 변화되어 대적의 공격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크레테 인은 대적의 심각한 공격을 몰랐지만, 바울이 보기에, 이는 참으로 급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 더는 크레테 인이 악한 짐승/거짓말쟁이/게으름뱅이로 살아가면 안 되었고,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말씀 붙잡고 세월을 아끼며 대적의 공격을 이겨야!” 했습니다. 본문에서 “크레테 교회와 디도를 향한 바울의 교훈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필요입니다. 이유는 “지금 우리를 향한 대적의 공격이 극심하고, 시간도 많지 않은데, 위기의식보다 세월아 네월아 허송세월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우리 사정을 봐주지 않고, 단번에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강하고 두렵게”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고, 방황하고 주저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우리 인생이 지나는 과정을 세대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대는 기어가고, 20대는 걸어가고, 30대는 뛰어가고, 40대는 수레를 타고 가고, 50대는 말 타고 가고, 60대는 날아가고, 70대는 바람처럼 지나가고, 80대는 번개처럼 지나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적의 공격이 강해질수록, 더더욱 시간을 아껴야 하고, 주어진 시간에서 더 많은 것을 건지고 살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지금 세월을 아끼며 살지 못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우리 장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주님처럼 천사의 수태고지를 통해 태어났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은혜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말년이 참으로” 초라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괴력만 믿고, 한 번도 다른 사사처럼 체계적으로 군사를 동원하여 대적과 맞서지!” 않았습니다. 매번 “이방 여인의 치마폭에 빠져, 욕망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당시 “삼손은 어느 사사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세월을 아끼지 못해서, 마침내 적군에게 생포되어 눈이 뽑히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도 “대적의 공격은 점점 더 위협적이고 강해지고 있기에, 나부터 영적으로 깨어서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현실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더욱 내 삶을 바꾸고 세월을 아껴야 하는데, 실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고 “틀린 줄 알면서, 아직도 여전히 ‘나중에, 지금은 아니야! 좀 더 생각해 보고!’ 변명과 핑계에 빠져 시간 낭비하며” 살아갑니다. 두렵지만 “악한 마귀의 가장 큰 전략은 우리가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고, ‘힘들고 어렵다!’ 원망하며 쉽게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가 우리 인생 70년을 이렇게 세세히” 구분했습니다.
“수면에 20년, 일하며 20년, 식사로 6년, 놀면서 7년, 꾸미고 치장하며 5년, 전화 통화로 1년, 술 담배로 2년, 잠깐의 휴식에 2년, 사람 기다리며 3년, 신발 끈 매며 반년, 기타 3년” 우리가 “하나님 주신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무엇을 행하며 살아가야 할지! 깊이 자문해야!” 합니다. 세상은 “오늘 이 시대를 100세 시대로!” 말합니다.
오늘날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연장되었다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할 일도 더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기억력 좋고, 젊고 건강한 청년만 사용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월을 아끼며 남은 삶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는 영혼을 힘있게” 쓰십니다. 한 소망 교회가 “다시 회복되고 더 힘있게 쓰임 받으려면, 바로 나 자신부터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미국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의 나이는 78세”입니다.
78세에도 “사명대로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우리가 너무 쉽게 ‘은퇴해야지! 나이 때문에 안돼!’ 핑계 대는 것은 절대로 지혜로운 모습이” 아닙니다. 바라기는 “나부터 세월을 아껴서, 더는 원망과 상처, 후회와 회한이 아니라, 다시 한 목적, 한 비전을 향하여 우리가 힘을 합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한 소망 교회와 우리 각자가 세월을 아껴서 선한 일을 하며 대적을 이겨나가기” 원합니다.
2. 대적의 공격을 이기려면, 신중한 언행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크레테를 목회할 때, 다양한 연령층을 섬기는데 필요한 구체적 방법을” 말했습니다. 특히 “본문 7~8절에서,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 말합니다. 바울은 “디도가 성도를 섬기고 동역할 때, 신중하고 본이 되는 언행이 꼭 필요함을 강조” 했습니다. 실제로 “디도는 연로한 남성은 아버지처럼, 연로한 여성은 어머니처럼 다가가야!” 했습니다.
또한 “젊은 여성과 남성에게도 형제와 자매처럼 본이 되고 신중한 언행으로 다가가야!” 했습니다. 만일 “디도 자신이 본이 되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하면,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적의 “공격은 엄청나게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니라, 신중하지 못하고 사려 깊지 못한, 사소한 언행을 통해” 시작됩니다. 교회에서 “받는 시험과 상처 대부분은 물리적 폭력보다, 신중하지 못하고 사소한 언행으로 시작되어 점점 커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상처를 준 영혼은 발 뻗고 자는데, 상처받은 영혼은 며칠을 아파하며 괴로워” 합니다. 이처럼 “신중하지 못한 언행은 작아 보이지만, 공동체와 인간관계를 깨는 파괴력은 참으로”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고 사소한 말 한마디부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실제로 “역지사지! 내가 싫고 불쾌한 일을 타인에게 하지 말아야 하고, 내가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내가 지키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의 “전승을 보면, 베드로의 눈 밑에 작은 홈이 패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고,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해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안 물었는데도, ‘모두 주를 버려도 나는 절대로 안 버립니다!'” 장담했습니다. 주님이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이를 극구”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고, 맹세하고 부인했고,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대적의 공격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가 베드로를 자신 있게 비판하고 책망할 수” 있나요? 우리도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주님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죄송함도 없이,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당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언행이 신중해야,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고, 주변을 살리고, 대적의 공격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나의 작은 언행이 타인을 살릴 수도 있고, 넘어뜨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고의 “작은 교회에서 주일 미사 중, 신부를 돕던 소년이 실수로 성찬으로 쓸 포도주를” 엎질렀습니다. 그 순간 “신부는 많은 사람 앞에서, 아이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습니다. “어서 썩 물러가! 다시는 제단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당시 “엄청난 상처를 받았던 아이가 성장하여, 유고의 유명한 독재자, 요시프 티토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도시의 교회에서, 한 아이가 미사를 돕다가 역시 성찬용 포도주를” 엎질렀습니다. 이에 “신부는 동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가서 당황하는 아이에게” 속삭입니다. “괜찮아! 나도 너처럼 그런 적이 있어! 네가 앞으로 신부가 되겠구나!” 훗날 “이 소년이 성장하여, 풀턴 쉰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티토는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교회를 박해하는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풀턴 쉰은 신중한 언행으로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신중하다! 소프로나는 ‘마음이 건전한, 제정신인, 술에 취하지 않은’이란 뜻”입니다. 신중함은 “맑은 정신과 마음을 가진 삶, 말씀과 합한 삶을” 뜻합니다. 신중한 언행은 “오직 말씀을 확신함으로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입술의 말은 신중한가? 경솔한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아직 “안 늦었기에, 지금부터라도 신중할 수 있다면, 내 삶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언행이 신중하면, 악한 대적의 공격을 이기고, 나는 물론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우리 악함과 죄 성을 아시고도, 신중한 언행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죄인인 “내가 주님의 신중한 언행, 신중한 사랑으로 살았기에, 나도 주변을 향한 신중한 언행을 가져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힘든 “시간을 살아가지만, 신중한 언행으로 대적의 공격을 이기고,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