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LG는 40대의 젊은 총수가 취임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최근 “LG는 110년 역사의 월풀을 제치고, 올해 생활가전 세계 1위 기업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2019년 시가총액보다 올해 75%가 늘었는데, 그 이유를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합니다. “➀ 선택과 집중, 잘 되는 것을 키우고 안 되는 것을 정리하는 태도, ➁ 기술을 중시하며 공격적 대응 태도, ③ 과감하고 실용적인 기업 문화로 소통하고 도전하는 태도”
팬더믹과 “세계적 경제 불황에 안주하기보다 변화에 성공했기에,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달라져서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교회와 기독교인의 자세는 정반대가 더” 많습니다. 교회는 “변하는 세상에서 불변하는 복음을 지켜야 할 사명이 있지만, 교회 문화,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과거에 붙잡혀 있을 때가 더” 많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달라지지 않음은, 교회를 구성하는 기독교인이 달라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가 미래에도 살아남으려면, 지켜야 할 것과 달라져야 할 것을 바르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방백, 레위 사람, 제사장이 견고한 언약을 세워 인봉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선민이 “초막절부터 집회를 이어가며 내린 결론은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자와 공의로 선민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선민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은혜에 역행하여 불순종했기에, 이방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를 “깊이 깨달은 선민은 이제부터라도 과거와 달라지려고 모두가 인봉하며 변화를” 결단했습니다. 이유는 “변화되지 않으면 미래의 생존마저 불투명함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20명과 명예직분자 5명을 세우는 임직식이” 있습니다. 임직식을 “행함은 교회가 이전과 달라져서 더 굳건해지기 원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워지는 영혼들, 세우는 우리가 달라져야 우리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팬더믹은 “우리 뜻과 무관하게, 이전과 달라져야 함을 강요하고, 억지로라도 달라지도록 우리 삶을 강하게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림절은 우리가 연말의 세속적 문화에 빠지지 않고, 신실하게 달라져야 하는 절기”입니다. 대림절 “셋째 주일인 오늘, 귀한 일꾼을 세우며, 우리가 이전과 달라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1. 우리가 이전과 달라지려면,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배우며 성장해야 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선민은, 본문 36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포로가 되었다!” 고백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누리라고 주신 복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고, 악행을 이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선민은 이처럼 자신들의 과오를, 포로로 70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깊이” 인지했습니다. 선민은 “과거 지나간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통해, 무엇이 틀리고 잘못되었는지, 철저하게 배우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포로에서 돌아온 선민은 연이어 집회를 이어가며, 눈물로 말씀 앞에 섰고, 재를 무릎 쓰고 회개하며 과거의 악행을 통해 배우고 자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소망이, 선민의 미래를 새롭게 바꾸어가는 결단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선하고 좋은 것을 통해 배우며 자라지만, 지혜로운 영혼은 악하고 틀린 것을 통해서도 배우고” 성장합니다. 어쩌면 “과거의 악행을 직시하며 깨닫고 성장하는 것이 더욱 참된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누구도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과거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부인하고, 나는 문제 없었다고, 잘 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과거의 악행을 극복하려면, 주변 사람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고집”부립니다. 그렇게 “과거를 통하여 배우려 하지 않기에, 매번 성장과 발전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와 동행한 1차 선교 사역 중, 밤빌리아 버가에서 중도 포기”했습니다. 이로 인해 “2차 선교 사역을 앞두고 바울과 바나바의 분쟁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가에게 “중도 포기도 큰 상처인데, 자기 때문에 두 스승이 다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마가는 오히려 부끄러운 과거를 통해 배우고 성장했기에, 마가복음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생각할수록 “과거의 아픔이 부끄러웠지만, 오히려 과거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서, 본인과 가정, 초대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에게나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고, 공개하기 부끄러운 연약함이”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과거의 아픔을 감추기에 급급하기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힘들어도 “과거의 문제와 아픔을 바르게 알고, 그것부터 고치며 배워갈 때, 새롭게 되어 성장과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끄러운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며 새롭게 되어가는 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1907년 초 “길선주 목사가 장대현 교회에 모인 2000여 명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 친구가 죽으면서 자기 아내에게 전해 달라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내일 당장 그 돈을 그 부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당시 “길선주 목사가 과거의 허물과 죄를 인정하고 고치려 하면서 1907년 대부흥이” 일어났습니다.
1992-06-18 “서울 63빌딩에서 한국인 최초로 템플턴 상을 받은 한경직 목사를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경직 목사의 고백은 모두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한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셔서 한국 교회를 위하여 일하게 하셨습니다.” 한소망교회는 “약 10년,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 우리 교회의 미래는 우리 각자가 어떤 모습으로 달라지는가로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어려움을 통해, 또한 선하고 귀한 전통을 배우며 새롭게 되면 교회의 미래가 달라지지만, 과거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다시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 “세워지는 임직자와 우리가 과거를 통하여 배워서 이전과 달라져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은 과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자라가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아픔과 교훈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여 이전과 달라져서 살아남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2. 우리가 과거와 달라지려면, 진심으로 달라지려는 실제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38절은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은 과거에 행한 모든 악과 불순종과 패역 모든 것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방백, 레위 사람, 제사장 모두가 견고한 언약을 통해, 과거와 달라지겠다.” 결단하였습니다. 당시 “선민은 과거와 달라지겠다고 말이 아닌, 간절히 기도하고 공개적으로 인봉 하며 결단”하였습니다.
결단을 “국어사전은 결정적 판단을 하거나 단정 짓는 것으로 정의하지만, 저는 다르게 해석하려” 합니다. 결단은 “맺을 것을 맺고 끊을 것을 끊는 것이기에, 진정한 결단만이 과거와 달라지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심중에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잘하고 문제없어! 그릇된 교만과 자기 의로움이 달라지려는 결단에 가장 큰 적”입니다.
우리가 “정말 달라지려면, 맺을 것과 끊을 것을 분별하며, 이를 실천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굳게 결단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거룩한 부름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왔습니다. 당시 “75년간 살았던 익숙함이 가득했던 고향과 지인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에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적 행동으로 결단하며”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결단한 대로,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 땅의 복과 자녀의 복을 주셨고, 훗날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물론 “마음으로 작정한 결단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어렵지만, 그 결단을 실천해 가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이 우리 삶에” 임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결단해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했던 과거와 달라질 수” 있을까요?
목사가 “심방을 가면, 모든 가정이 저마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합니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은 목회자가 심방에서 잘 먹어야, 더 크게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제가 LA에서 처음 담임 목회를 시작했을 때, 심방 중, 어떤 가정에서 칼국수를 대접했는데, 맛있다는 한마디에, 한 달 동안 칼국수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심방 때마다 ‘오늘은 적게 먹자!’ 결단해도 안 먹으면, 성도들의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보면, 또 먹게” 됩니다. 그래서 “매번 ‘오늘까지만, 내일부터!’ 외치면서 또 먹고 먹으며 결단이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부탁은 “목회자가 심방에서 먹는 것보다, 예배드리고 축복함에 더 집중하도록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바꿔야지! 마음으로 결단하지만, 실제 삶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이를 실천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불행히도 “그렇게 작고 사소한 결단조차 실천하지 못하기에, 우리 삶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고, 매번 똑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이 과거와 달라지려면 내 언행, 예배드리는 태도, 말씀 앞에 서는 태도, 주변 동역자와 관계까지 신실하게 바꾸어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실례로 “우리 삶에서 작정한 결단이 무너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부터, 작은 일부터, 바로 지금부터, 가까운 일부터 결단했던 것을 하루하루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달라지려는 결단을 실천하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지키지도 못하는 결단은 나를 영적으로 더 무디게 만들 것”입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내 삶을 새롭게 바꾸려는 결단이 필요한 절기”입니다. 특히 “오늘 세워지는 임직자와 우리가 내 삶을 바꾸어가는 구체적 결단이 꼭 필요”합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나를 바꾸지 않아서 실족한 경험이 많기에, 이제부터라도 바꾸면 우리는 달라지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할 수 있는 것, 작은 일, 지금부터 가까운 일부터 결단해서 과거와 달라져서 살아남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