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과 사별한 여인과 술주정뱅이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인이 만나서, 자기가 더 불쌍하다며, 대화를” 나눕니다. 먼저 “술주정뱅이 남편을 둔 여인이, ‘차라리 그런 남편은 없는 게 더 나아요. 지겹고 힘들어요!'” 말했습니다. 이에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그래도 당신이 나보다 훨씬 나아요! 당신은 남편이 언젠가 좋아지겠지, 기다릴 수 있잖아요. 하지만 나는 그런 기다림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나보다 더 행복하지요!'” 답했습니다.
기다림은 “힘들고 어려운 내 삶에 의미와 소망을 주고, 넘어지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다시 미래를 꿈꾸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삶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행복과 은혜가 존재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반면에 “기다림이 없는 삶은 희망이 없고, 희망이 없음은 죽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기다리는 사람들인데 하나님 약속과 은혜, 회복과 치유, 주님의 오심과 영생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선민은 초막절 이후, 계속 집회를 이어가며, 아브라함을 묵상하고, 이어서 출애굽 사건을” 나누었습니다. 여전히 “국권조차 없는 포로의 삶이 힘들었지만, 이룬 것보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 더 많았지만, 선민은 출애굽을 통해 주셨던 하나님 은혜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서, 다시 홍해를 건너는 은혜, 다시 말씀을 받는 은혜, 다시 반석에서 물을 주셨던 은혜, 다시 땅을 차지할 은혜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유는 “선민이 간절히 기다리던 하나님 은혜가 임해야 선민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기독교인은 “대림절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전해야 하고, 진심으로 주님을 환영해야 하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준비해야 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매년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대림절을 맞기보다 어떻게 주님을 기다려야 할지, 2021년 대림절 첫 주에 주시는 메시지를 같이 나누기” 원합니다.
1. 대림절에 우리는 주님의 이기게 하시는 은혜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1절은 “주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들을 돌을 큰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말씀합니다. 본문은 “마치 출애굽 과정을 보고 설명하는 것처럼, 출애굽 역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반석에서 물이 터져서 200만 선민과 가축이 모두 물을” 마셨습니다. 최강의 “애굽군을 하나님 은혜로 홍해에서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포로에서 돌아온 선민이, 왜 이처럼 출애굽 과정을 구체적으로” 묵상했을까요? 선민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모든 악과 대적, 고난과 눈물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은혜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려 2년간 이어진 팬더믹에 너무 지쳐서, 다른 무엇보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문제는 “지금의 아픔과 어려움은 인간의 힘과 노력, 과학과 의학으로 절대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능력과 은혜만이 지금 내 삶의 아픔과 어려움을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머리로 알뿐, 실제 삶은 주님 주시는 승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모르고, 이민자로 먹고살기가 너무 팍팍해서, 주님의 오심을 확신하지 못하고, 심지어 기다릴 마음의 여유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를 이기게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1732년 “52세였던 헨델은 몸이 점점 마비되면서, 점점 반신불수가 되어” 갔습니다. 당연히 “일할 수 없어서, 있던 재산마저 탕진하고, 급기야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을 때, 친구 찰스 제넨스가 헨델에게 이사야 서를” 전해줍니다. “이 말씀의 주인이 당신을 일으켜 세워 줄 겁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곡을 써 보세요!” 당시 “심히 곤고했던 헨델은 제넨스가 주신 이사야 서를 읽으며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습니다.
그렇게 “무려 24일간 육체적 통증과 침식마저 잊으며 유명한 메시아를” 작곡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깊은 절망에 빠져있던 헨델에게 새로운 힘을 공급했고, 마침내 고난과 눈물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메시아는 “그렇게 환난과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주님 은혜를 기다리며 만들어진 역작”입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도 있고, 반대로 져도 되는 전쟁, 져야 할 전쟁도 있는데, 문제는 우리가 이를 바르게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져도 되는 전쟁에 더 적극적이고, 이겨야 할 전쟁에 너무도 소극적”입니다. 실례로 “마귀의 미혹, 죄와 불신, 배타성과 미움, 불평과 원망, 나를 공격하는 악과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내가 살 수 있고, 구원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져야 할 전쟁에서 져야, 하나님 은혜가 공동체와 내 삶에 더 큰 평화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의 은혜, 악을 이기게 하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악과 싸워 이기게 하는 주님의 은혜가 꼭 필요하기에, 그 은혜 받기를 갈망하는 기다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인생이 기가 막힌 웅덩이, 사망의 골짜기에 빠졌었다고 고백했고, 바울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서 삶의 여망이 없었다.” 말합니다.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했고, 주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어려움과” 싸웠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고백하며 하만과 피 흘리기까지 힘껏 싸워서” 이겼습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하시는 은혜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는가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과 신분 문제, 건강과 관계 문제, 내면적 문제로 당하는 어려움이 참으로” 큽니다. 그러나 “주님은 롬 8: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말씀합니다. 연말을 “맞이하며,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고난과 어려움에 쉽게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신실함으로 주님의 이기게 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고된 이민 생활이지만, 이기게 하시는 은혜를 기다리며 한주도 승리하기” 원합니다.
2. 대림절에 우리는 주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선민에게 애굽과 구별된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실제로 “선민이 400년간 노예로 있으며 경험하지 못했던 정직한 규례와 율법, 거룩한 안식일을 주셔서 선민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당시 선민이 잘하고 신실해서 새롭게 되는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선민은 목이 곧고 완고해서 그 악이 컸지만, 하나님께서 선민의 허물보다 새롭게 되는 은혜를 더 크게 주셔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포로에서 돌아온 선민은 출애굽 때처럼,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새롭게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말씀 앞에” 섰습니다. 죄인이 “기독교인이 됨은 십자가의 복음, 성육신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죄인이 새롭게 됨은 절대로 내가 이루는 능동형이 아닌 하나님 은혜로 받는 수동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살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이룰 수 있지만, 영육간에 새롭게 됨은 철저하게 하나님 은혜로만 가능” 합니다. 또한 “죄인인 인간은 반드시 복음으로 새롭게 되어야, 과거와 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아버지 주사 때문에 힘들었는데, 아빠가 술을 끊어도 아이 기억에 아버지가 준 상처가 여전히” 컸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술을 먹고 크게 소리치는 것을 사자성어로 써 보세요!’ 국어시험을” 보았습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힌트로 끝 자가 ‘가’임을 알려주자, 아이가 답을 ‘아빠인가!'”로 썼대요! 우리가 “은혜로 새롭게 되어야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이기고, 더 멀고 깊게 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팬더믹의 아픔, 상처와 눈물, 억울함과 고통, 미움과 원망은 지금의 상황과 처지가 새롭게 된다고 새롭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새롭게 되어야, 내 삶과 주변이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내면적 새로움이 없이는 절대로 새롭게 되는 은혜는 임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복음과 은혜로 새롭게 되어야, 내 삶과 미래가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새롭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도 “낡은 가죽 부대로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여전히 나도 만족하지 못하는 내 신앙으로는 절대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경매장에서, 경매자가 낡고 흠 있는 바이올린을 팔려고 ‘1불이요, 1불!'” 소리쳤습니다. 다행히 “어떤 사람이 2불을 불렀지만, 더는 가격이 오르지 않았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서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느슨한 줄을 조이고 아름다운 연주를” 했습니다. 경매자가 “다시 바이올린을 들어 보여주자, 누군가 1000불을” 외쳤습니다.
이어서 “서로 경쟁하며 가격을 올려서 낡은 바이올린이 삼천 불에” 팔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롭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2불에 불과한 낡고 초라한 바이올린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새롭게 되면, 우리는 삼천 불에 이르는 귀한 바이올린처럼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심중에 “‘언젠가 주님이 나를 새롭게 하겠지!’ 막연한 생각보다, 내가 간절한 믿음으로 새롭게 되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새롭게 “되려는 열정이 있어야, 주님의 오심을 더 간절히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가 “새롭게 되려고 베드로가 전할 말씀을 간절히 기다렸고, 12년 혈루증 걸린 여인이 새롭게 되려고 주님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병든 나사로의 병이 새롭게 나아지기 원하며, 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사모함과 간절함으로 주님을 기다린 영혼은, 모두가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그 인생과 미래까지도 새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팬더믹의 아픔과 삶의 고통을 이기고,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2021년 “대림절,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려서 받는 은혜로 날마다 새롭게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