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용어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은 기혈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하면 안 아프고, 막히면 아프다는 뜻”입니다. 실례로 “누구나 혈액 순환이 중간에 막혀 원활하지 않으면, 건강이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흐름에 관한 중요성은 한의학은 물론 우리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은혜가 “내 삶과 영혼에 끊어지지 않고 잘 흐르면 신실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은혜가 막히면 상처받고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하나님과 수직적 소통, 그리고 세대 간, 교인 간 수평적 소통과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원활합니다. 반면에 “건강하지 못한 교회는 수직적 흐름은 물론 수평적 흐름 모두 막혀” 있습니다. 팬더믹을 “겪으며, 온라인 예배로 버티어 온 영성이 우리 신앙의 영적 흐름을 막아설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끊어지고 중단된 영적 흐름을 다시 이어가려는 노력보다 여기가 좋사오니! 쉽게 자족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요 15:7절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교회와 기독교인의 영적 건강은 하나님과 얼마나 연결되고 소통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하는 대적의 공격이 강해지자, 모든 상황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도 “느헤미야와 선민은 합력해서 절반은 갑옷을 입고 절반은 일하면서 성벽 재건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대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항상 나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고, 밤낮으로 적의 공격에 긴장해야!” 했습니다. 느헤미야도 “옷을 벗고 편히 쉬지도 못하면서, 성벽 재건 사역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당시 “대적자의 공격이 극심했지만, 그래도 느헤미야와 선민은 성벽 재건 공사가 중단되어 끊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합력”했습니다. 하나님 “선물인 믿음은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생을 얻기까지 끊어지지 않게 끝까지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은 세상의 공격에 그 믿음이 흔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믿음은 절대로 끊어지지 말고 영생을 얻기까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내 믿음 “내 영적 여정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나도 살고, 내 가족도 살고, 교회도 살고, 주변 모두가 살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명, 귀한 믿음과 영적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가며 승리할지!” 살펴봅시다.

1. 영적인 흐름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긴장감(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선민은 대적의 악한 의도를 눈치챘고, 하나님도 그들의 악한 꾀를 막아” 주셨습니다. 특히 “본문 15절은 ‘우리가 다’ 선민 모두가 성벽 재건에 합력했다.” 말씀합니다. 당시 “선민은 성벽 재건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려고,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대적의 공격을 철저하게” 대비했습니다. 심지어 “절반은 한 손으로 일하고 절반은 한 손으로 병기를 잡기까지 힘들었지만, 성벽 재건 사역은 끊어짐 없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선민은 깊은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밤에는 성을 지키고 낮에는 일했기에, 예루살렘 재건 사역은 중간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위기가 기회라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기회가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기회가 오면, 사람은 기뻐하고 좋아하다가, 마침내 긴장이 풀어지고 방심하다가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위기는 너무 잘 될 때, 평안하다 자부할 때, 갑자기 생각지 않게 찾아올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전 10: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경고합니다. 물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매번 긴장하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누구나 영적으로 긴장하고 위기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미혹에 속아서 실족하지!” 않습니다. 특히 “육체적 긴장감과 위기의식은 건강을 해치지만, 영적 긴장감과 위기의식은 나를 죄로부터 보호하는 능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오점은 밧세바 사건과 하나님을 노엽게 한 인구 계수 사건일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으로 명예와 신뢰를 잃었고, 자녀 간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습니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범하고,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암몬을” 죽였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켜서, 대낮에 아버지 후궁들과 동침하는 악행까지” 저질렀습니다. 또한 “인구 계수 사건을 통해, 다윗은 사랑하는 국민 칠만 명을 순식간에” 잃었습니다.

문제는 “두 사건 모두, 다윗이 너무 잘 나갈 때, 매사가 형통할 때, 시대적 번영이 최고조일 때”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평안해서, 영적인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잃었을 때, 엄청난 재앙을 만났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영적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잃으면, 악의 공격을 받고, 넘어지고 실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며 영적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해야!” 합니다.

세상의 “첨단 과학과 사람들이 추구하는 유행이 내 영적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호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영적으로 공든 탑을 쌓기는 어렵지만, 영적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공든 탑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항상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내 신앙생활을 깊이, 또한 꼼꼼하게 점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과거 “노예 상인이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붙잡을 때, 해변에 천막을 쳐놓고, 빨간색 깃발을 휘날리고, 나팔을 흥겹게 불며, 음식을 차려 놓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멀리서 바라보던 흑인들이 빨간색에 마음을 빼앗기고, 음식 냄새를 맡으며, 한둘씩 천막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흑인들은 자극적인 빨간색, 음식 냄새, 흥겹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잃은 채 붙잡혀서 노예선을 타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흑인들은 빨간색을 가장 싫어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 후, 한 소망 교회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할 안수 집사와 시무 권사를 세우는 공동의회가” 있습니다. 직분자를 “선출한다는 것은 교회에 일꾼이 있다는 것이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기에,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는 물론 선출되는 직분자 모두가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주의 일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그렇게 “영적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하고 헌신해야, 본인의 믿음을 지킬 수 있고, 교회도 평안할 수 있고, 하나님께도 영광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팬더믹을 통과 중인데, 우리 각자가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영적으로 선한 흐름을 계속 이어가서, 교회다움, 기독교인다움을 더욱 굳건하게 지켜나가길” 원합니다.

2. 영적 흐름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힘들고 어려워도 주어진 일에 계속 수고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본문에서, 현재 진행 중인 예루살렘 재건 공사가 크고 넓다고” 말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재건 공사는 성벽 전체에 걸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었습니다. 당시 “공사도 버겁고 힘들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대적의 공격까지 있었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느헤미야와 선민은 어렵고 불편했지만, 한 손으로 일하고 한 손으로 방비하며, 밤에는 파수하고 낮에는 일하면서, 심지어 물을 길을 때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느헤미야 옆에는 무장한 자, 건축하는 자, 나팔 부는 자가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재건 사역을 멈추지 않으려고, 느헤미야와 모두가 힘써 수고했음을” 말씀합니다. “심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불변하는 삶과 세상의 법칙”입니다. 우리 “삶이 버거워도, 영적 열매, 삶의 열매는 내가 수고하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은 작은 수고에도 항상 좋은 것, 풍성함으로 채우시는 하나님 은혜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처럼 하나님 은혜가 있고, 해야 할 일도 있지만, 수고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고하고 헌신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하고, 하면 안 되고, 쓸데없는 일에 더” 힘씁니다. 그러나 “내가 선한 일, 하나님 기뻐하는 일에 수고할 때, 영적 흐름은 더 원활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을 자세하게” 고발합니다. 둘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마음대로 착복하며 예배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또한 “둘은 선민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름을 완력으로 빼앗았고, 제사를 멸시했고, 게다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회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했습니다. 당시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 하면 안 되는 일, 참으로 악한 일에 수고하고 힘을 씀에” 있었습니다. 교회 일은 “억지로 할 수 없고, 하지 않는다고 책망하기도 쉽지 않기에, 자원해서, 받은 은혜로 솔선수범해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각자가 기쁨으로 자원하여 수고해야, 영적으로 건강한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가는 것”입니다. 부족해도 “내가 못하고 할 수 없는 일보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일을 찾아서 수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각자가 받은 은혜로, 교회에서 맡은 일에 봉사할 때, 선한 전통을 계속 계승해 갈 수” 있습니다. 혹자는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봉사하며 상처받기보다, 조용히 내 신앙을 지키겠다!” 말합니다.

그럴 수 “있지만, 하나님 일에 수고와 헌신이 끊어지면 편할 수 있지만 내 영적 흐름도 끊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고하지 않아서 영적 흐름이 끊어지면, 이 땅은 물론 영생을 향한 여정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수고하되 어떻게 무엇에 수고할지, 수고하는 방향성과 마음가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국 “산본 교회를 섬기는 이상갑 목사는 청년사역자에게 세 가지 수고하는 마음가짐으로, 진심, 전심, 열심을 강조하여” 말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누구나 진심이 빠지면 형식과 습관에 빠질 수 있고, 외식에 빠질 수 있기에, 수고하되 마음을 다하는 진심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주어진 일에 항상 주님께 하듯 전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수고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귀한 전통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고 오해를 해도, 하나님 기뻐하는 일, 교회에 덕을 끼치는 일에, 전심으로 수고하는 사역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열심을 가지고 수고하면 역동적 변화가 일어나고, 닫힌 문조차 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진심, 전심, 열심을 통해서 일하시고, 축복의 통로를 열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부족한 내가 십자가 복음,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았는데, 지금 여러분에게도 진심, 전심, 열심을 가지고 수고함이” 있으세요? 저는 “오늘 세워질 중직자와 우리 각자가 진심, 전심, 열심을 가지고 수고해서, 하나님께서 열어가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 직분은 명예직이 아니고, 출세의 도구도 아니고, 상하를 규정하는 기준이 될수도” 없습니다. 오늘 “공동의회를 통해 세워질 중직자 모두가 하나님 주신 은혜와 믿음으로, 진심, 전심, 열심을 가지고 수고하고 헌신해서, 영적 생명력이 대대손손 이어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한주도 우리가 악한 세상으로 나가지만, 주께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신실함으로 수고해서, 거룩한 믿음과 영적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더 견고해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