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이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여행하면서, 때로 자동차를 얻어타고, 때로 힘든 길을 걸어서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에 “누군가가 ‘기나긴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자 청년이” 답합니다. “여행 중 가장 힘든 것은 산길과 따가운 햇빛, 사막의 열기도 아니었고, 신발 속으로 계속 들어오는 작은 모래알들이었어요!” 우리 “인생을 보면, 큰 장애물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작은 장애물이 내 삶의 발목을 잡을 때가 더” 많습니다.
실례로 “가정불화에서 오는 모래알, 직장과 사업에서 생기는 모래알, 입술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발생하는 모래알, 어긋난 관계에서 들어오는 모래알 등등, 삶의 장애물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삶의 장애물을 겪으며 더 성장해 가지만, 누군가는 장애물에 넘어져 포기하고 실족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인생에 장애물은 없을 수 없기에, ‘크고 작은 장애물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갈지’ 이로 인해 우리 삶과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장애물에 넘어지지 않고, 이를 이겨 내고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산발랏과 도비야, 느헤미야 앞에 있던 두 명의 큰 장애물을 처음” 소개합니다. 이들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재건할 때, 비아냥거리며 음해했고, 암살 기도와 거짓 유포 등등 참으로 힘들게” 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분노하며 아팠지만, 결과적으로 산발랏과 도비야가 오히려 느헤미야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받은 사명을 완수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힘겨운 장애물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지만, 누구도 장애물을 환영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사람은 누구나 장애물을 만나면 두렵고 힘들어하지만, 하나님은 그 장애물을 통해 나를 단련하실 때가 더” 많습니다. 이에 “욥 23:10 절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말합니다. 올해는 “6.25 71주년인데, 혹자는 6.25 동족상잔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6.25는 참으로 힘들고 아팠던 상처이자 장애물이었지만, 6.25를 통해 한국은 더 힘을 냈고 성장하고 단단해”졌습니다. 또한 “누군가는 팬더믹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핵심은 장애물인 팬더믹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장애물이 항상 있기에, 이를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갈지!” 살펴봅시다.
1. 삶의 장애물이 항상 있지만, 내게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장애물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본문 12절에서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것이 있었다.’ 이를 직역하면 ‘나의 하나님이 나의 마음 안으로 무엇인가를 넣어 주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주신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음을” 뜻합니다. 느헤미야는 “동족의 환난과 불타고 허물어진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기도하며, 자신이 쓰임 받기” 원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선한 길로 이끄시며, ‘무엇을 어떻게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말씀을 마음에 넣어” 주셨습니다.
나아가서 “삶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무엇을 선택하고 누구와 동역할지, 어떤 메시지가 필요한지’ 느헤미야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넣어 주신 말씀으로 산발랏과 도비야, 상황과 시간의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의 형통함을 원하듯, 하나님도 우리가 장애물을 이기고 승리하기” 원합니다. 생각할수록 “삶의 장애물이 항상 우리 앞에 있지만, 주께서 채우는 은혜가 장애물보다 항상 더” 큽니다.
하나님은 “항상 내 삶의 장애물을 나보다 더 잘 아시고, 길을 열어주시며 막아주시고, 다른 길로 돌아가도록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메시지보다, 삶의 장애물에 더 마음을 빼앗겨서, 실족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심지어 “삶의 장애물을 이길 수 있는 메시지가 있지만, 이를 놓치고 곁길로 빠지는 경우도 참으로” 많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망명 중, 아말렉이 갑자기 시글락을 약탈하여,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이로 인해 “다윗과 그 무리는 재산은 물론 많은 가족이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당시 “무리가 얼마나 기막히고 힘들었으면, 다윗을 돌로 치려” 했겠어요?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장애물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길을 물었고, 하나님의 답변대로”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주신 말씀대로 아말렉을 쫓아가서 잃었던 모든 것을 다시 찾았고, 헤어졌던 가족과 다시 하나가 되었고, 나아가서 엄청나게 많은 전리품까지 얻어서,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삶의 “장애물은 인간의 지혜와 과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넣어 주시는 메시지로 이길 수” 있습니다. 만일 “인간의 지혜와 과학으로 장애물을 이길 수 있다면, 많은 장애물이 점점 줄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장애물이 줄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장애물이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 말씀만 못 보고 못 듣던 것을 열어주고, 새 힘을 주어 장애물보다 더 큰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게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 14: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말씀합니다. 삶의 “장애물이 항상 있지만, 항상 장애물을 이기게 역사하는 성령님의 가르쳐주심과 생각나게 하심을 놓치지 말고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몇 달 전, 미국의 유명한 여성 다이빙 선수 로라 윌킨슨이 다리가 골절되어,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코치는 “윌킨슨의 올림픽 출전 불가를 통보했고, 그 가족들도 안 된다고” 막았습니다. 그러나 “윌킨슨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빌 4:13 절을 읽고, 외우고 묵상하며,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마침내 “이 말씀이 새 힘을 주어 장애물을 이겨 냈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희망과 힘을 넣어 주었고, 장애물을 이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삶에 어떤 장애물이 있고, 그 장애물을 어떻게, 무엇으로 극복하려” 하세요? 지금까지 “인간적 방법으로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우선 그 인간적 방법부터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라도 성령께서 내 안에 넣어 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만이 “가장 옳고 바르고, 가장 선하고 정확한 답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해도 “삶의 장애물 앞에서, 내 자아의 소리보다 하나님 말씀을 택하는 영혼은 항상” 승리합니다.
특히 “항상 있는 장애물로 힘들 때, 주님께서 반복하여 주시는 말씀이 있다면, 이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꼭 필요한 메시지를 설교와 묵상, 대화와 독서를 통해 반복하여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해도 “반복되는 메시지를 붙잡으면, 삶의 다양한 장애물을 이길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주도 “우리가 성령께서 내 안에 반복하여 넣어 주시는 메시지를 굳게 붙잡고, 항상 있는 장애물을 극복하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삶의 장애물이 항상 있지만, 절대로 낙망하지 말고 더 힘을 내야 합니다.
본문 13절은 “느헤미야가 깊은 밤, 다 무너지고 불탄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거닐었다.” 말씀합니다. 심지어 “본문 14절은, 성문과 성벽이 완전히 무너져서 짐승 한 마리조차 지나갈 수 없었다.” 말씀합니다. 깊은 밤! “무너진 예루살렘 성문과 성벽을 직접 보고, 그곳을 지나는 느헤미야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참담했을까요? 짐작건대! “간접적으로 들었던 상황보다, 느헤미야가 직접 보고 겪은 상황에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느헤미야가 다시 금식하며 아파했다. 눈물 흘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무너지고 불탄 예루살렘을 직접 보았고, 장애물이었던 도비야와 산발랏의 공격이 상상보다 컸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힘을” 냈습니다. 실족은 “눈앞의 장애물보다, 장애물에 주눅 들어 낙심하고 약해지는 마음, 불신 때문에” 생깁니다. 낙담과 “좌절이 작고 사소한 장애물을 과대평가하고, 극복 불가능한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 16:33절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합니다. 우리 “삶에 장애물이 항상 있지만, 우리가 겁먹거나 주눅 들지 말고 세상을 이긴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오히려 삶의 장애물을 통해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 가정의 총무로 일하며, 안주인의 엄청난 모함을” 받았습니다. 노예가 “안주인을 욕보이려 했다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이처럼 장애물이 컸지만,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낙심하고 포기했다. 좌절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비록 “억울하게 투옥되었지만, 오히려 요셉은 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당시 “요셉이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의지함이 현실과 상황을 바꾸어” 갔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마음을 돌리셨고, 감옥에서 훗날 총리로 일할 수 있도록 실제적이고 귀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삶에 항상 장애물이 있기에,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해결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장애물에 빠진 영혼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이끌어주셔서 역전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애물을 만나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동에서 “양들이 어떤 샘물을 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목동은 죽은 양을 다시 살릴 수 없었고, 다시 양을 살 수도 없어서, 크게” 낙담했습니다. 그런데 “목동이 기도하는 중 ‘힘들어도 양이 죽은 원인을 찾아보자!’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목동은 양이 먹고 죽은 샘의 분석을 의뢰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 결과 “그 샘물은 석유였고, 목동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감사하며, 엄청난 거부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장애물이 항상 있다면서, 먼저 낙담하고, 안 된다고 단정하며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면서 낙담의 원인, 장애물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 한다면, 다시 소망과 길이” 열립니다. 사람은 “누구도 삶의 장애물을 만나자마자, 바로 넘어지고 실족해서 어떻게 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장애물을 극복할 시간과 방법이 있고, 이를 찾을 수 있기에,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이끄심은 내가 깨닫고 붙들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도록” 다가옵니다. 문제는 “부족하지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을 분별하고, 신뢰하고 감사하는가?'”에 있습니다. 삶의 “장애물은 모두에게 항상 있지만, 하나님의 이끄심을 신뢰하는 사람에겐 항상 새로운 길이 열림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장애물을 만나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이끄심이 작은 구름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작은 구름이 점점 더 커지고 확실해질 것”입니다. 요기 베라가 “‘야구는 끝나야 끝나는 것이다!’ 말했는데, 삶의 장애물이 힘들어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기에, 끝이 아니기에,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한주도 “많은 장애물이 우리 삶에 항상 있어도, 낙담과 좌절보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확신하며, 날마다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