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하와이 사이에는 울릉도의 1/3 크기, 인구 만 명가량의 작은 섬나라 나우르가” 있습니다. 한때 “나우루는 화학비료의 주원료인 인광석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어서,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았습니다. 특히 “1980년 초, 나우르는 인광석 채굴로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었고,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국민이 극심한 안일함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2003년 그렇게 많던 인광석이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천혜의 도움, 인광석을 받았지만, 흥청망청 낭비해서 30년만인 2005년, 국가파산을”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나를 돕는 하나님의 손은 내가 알 수도 있고, 전혀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절대로 목적 없이 나를 이 땅에 보내지 않았고, 지금도 한결같이 나를 도우시고 선하게” 이끄십니다. 문제는 “항상 나를 돕는 하나님의 손과 은혜가 있지만, 내가 이를 선용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불타고 허물어진 현실에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깊이 체험하며 살아가는 인생 여정”입니다. 본문 8절에서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직역하면 ‘내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선한 손’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상심하여 울고 금식하며 기도하던 느헤미야를 도우셔서, 아닥사스다를 붙여 주셨고, 어려운 사정을 고백할 용기를 주셨고, 어떤 도움을 청할지 통찰력을 주셔서 허물어지고 불탄 현실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셨고, 느헤미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놓치지 않고 선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똑같은 시간과 기회를 받지만, 모두가 그 기회와 시간을 선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선한 손으로 도와도 그 소중한 기회와 은혜를 거부하거나 흘려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있다는 것보다, 그 은혜의 가치를 알고,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짧지 않은 팬더믹 중에도, 지금의 평안함을 누림은 모두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없다면, 잠시도 생존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항상 있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더 많은 열매를 맺을지!” 살펴봅시다.

1.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을 경험하려면, 내 삶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동족의 환난과 불타고 허물어진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아닥사스다 왕이 달라진 표정과 어투를 물을 정도로, 그 충격이” 컸습니다. 특별히 “당시 신하가 슬픈 표정으로 왕을 염려하게 한다면, 중벌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만일 느헤미야가 솔직하게 도움을 청했는데 왕이 노여워한다면 얼마나” 낭패였을까요? 게다가 “과거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건축을 금한 적이 있어서, 느헤미야는 더더욱 조심스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은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여 “원어는 ‘전율하다.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가 두려울 정도로 위험했지만, 온 마음이 예루살렘 회복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렇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집중했기에,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도우셔서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내가 기뻐하는 것이 다르고, 게다가 내가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보다 항상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는데 내가 고집부리고, 하나님은 정직하라 하시는데 나는 손해 보고 바보 된다며 편법을 택하여 하나님의 도움과 점점” 멀어집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예배 자리를 지키라 하시는데, 나는 여러 변명과 핑계로 세속적 자리를 먼저” 찾아갑니다.

이에 “우리는 ‘지금 내가 행하려는 일, 계획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먼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찾고, 선택하고, 좌우로 흔들리지 말고 그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부족해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할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선한 손을 깊이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울 “합정동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가면, 곳곳에 아름다운 묘비 내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헐버트 “선교사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묻히기보다 조선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윌리엄 홀 선교사는 ‘내가 조선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 때 언제나 나의 심장도 함께 뛰었다. 나는 아직도 조선을 사랑한다.’ 켄드릭 선교사는 ‘만일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감동적인 묘비들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20세기 초, 가장 어둡고 낙후된 조선에 집중하여,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했고, 진심으로” 섬겼습니다.

이들은 “모두 조선을 섬기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임을 확신했고, 많은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조선에 집중했기에, 많은 영적 열매를 맺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문제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집중보다 분산이 더” 많습니다. 실례로 “차분히 앉아서 기도하고 말씀 묵상할 시간도 확보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수고했지만, 하나님 기뻐하는 일이 아니어서, 공허감만 더 커질 때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헌신하지만, 하나님 기뻐하는 것보다 세속적 방법을 추종하여 후회할 때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이 세속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룩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신앙으로, 나는 신실하다고, 구원받았다고 자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를 돕는 하나님 손을 경험하려면 하나님 기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나는 절대로 주님을 배신하지 않아! 장담했지만, 이는 철저히 자기 의로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을 계기로, 베드로는 철저하게 하나님 기뻐하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매사에 “자기 위주로 살았던 베드로가, 성령의 음성에 집중하며”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집중의 방향을 바꾸었을 때, 불타고 허물어진 베드로의 인생도 바뀌었고,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선한 손이 그 인생을 책임지셨고, 사도로 힘있게” 사용했습니다. 지금 “온라인과 현장에서 예배드리는 영혼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다행히 “아직 안 늦었기에,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찾고 선택하고, 그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인생은 “피었다 지는 꽃과 안개 같기에, 헛된 일로 시간 낭비할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내가 다시 말씀 위에 선 예배자로, 다시 기도하며 봉사하는 능력을 회복하여,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하기” 원하십니다. 한주도 “하나님 기뻐하는 일을 찾고 집중해서, 나를 돕는 하나님의 선한 손을 붙잡고 승리하기” 원합니다.

2.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을 경험하려면, 미래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두려웠지만, 깊은 묵도 후, 아닥사스다에게 몇 가지를 요청하자, 왕은 이를 모두 허락해” 주었습니다. 본문 4절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묻자, 느헤미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루살렘 회복을 위해 생각했던 준비와 계획을 조목조목” 구합니다. “예루살렘 성읍 건축을 허락해 주시고, 이를 위해 나를 보내주소서! 유브라데 강 서쪽 총독에 명하여 유다로 가는 길을 열게 하소서! 건축 재목을 주소서!”

당시 “느헤미야는 왕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웠지만, 예루살렘 재건을 위한 계획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한 느헤미야를 힘껏” 도왔습니다. 사람이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도움이 아무리 커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음은 환난에 깊이 함몰되었거나, 매번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아예 꿈을 꾸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도 팬더믹 이후를 준비하자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영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과거처럼 또다시 준비 없이 ‘어떻게 되겠지 뭐!’ 생각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체험할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준비는 내 방식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꼼꼼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최근 “PCUSA는 지난 2020년 한해에 무려 오만명, 약 120개 교회가 감소했다!” 발표했습니다.

지난 “2018~2019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특히 이런 현상은 미국 장로교회와 다른 모든 교단, 개교회까지도 그 상황이 거의” 같았습니다. 특히 “팬더믹을 겪으며 그 상황은 더 나빠졌고,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현재 “누구도 교회와 사회, 우리 신앙이 팬더믹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미래를 복음에 맞게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훗날 어려움에 봉착해서 준비하기보다, 성령의 지혜로 미리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한 소망 교회는 5가지 비전 위에서 성장했는데, 후세대를 시대의 리더로 길러내고, 제자훈련을 통해 평신도 리더를 길러내고, 지역사회에 유익을 주고, 선교 명령을 실천하고, 이민자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교회, 문제는 팬더믹 후 이 비전 성취가 더 어려울지, 아니면 가능할지, 이는 우리 각자의 영적 준비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각자가 미래를 말씀에 합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과거에 교회가 컸다. 부흥했다는 것은 큰 능력” 없습니다. 교회가 “정말 부흥하고, 다시 교회다워지고 5가지 비전을 실천하려면, 나부터 영적 본질을 붙잡고, 복음에 맞게, 지혜롭게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준비는 시설과 시스템 구축, 더 나은 환경 구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다시 영적 본질을 붙잡아야,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삶과 가정, 교회의 미래가 더 나아지려면, 다시 말씀과 기도, 예배와 봉사, 영적 본질을 붙잡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당회와 목사는 물론, 바로 나부터 영적 본질을 붙잡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부족해도 “우리 각자가 영적으로 회복되면, 교회가 더 굳건해져서 힘있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타고 “무너진 현실에서, 느헤미야는 기도와 말씀, 본질을 붙잡고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승천 후, 기도와 말씀으로 미래를 준비하여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고넬료와 “많은 이방인이 간절함과 기도로 은혜받고자 준비했을 때, 성령님이 임재하여 그들의 미래를”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영적 본질을 붙잡고 준비하면 승리하지만, 준비가 빠진 원망과 불평, 자기주장에는 열매가 없다!” 말씀합니다. 이제 “교회는 7월 첫 주부터 모든 주중 예배, 수요일과 금요일, 새벽예배까지 현장예배로 재개할 예정”입니다.

또한 “구역장 모임, 사역부서장 회의, 교회학교, 친교까지 팬더믹 이전과 똑같이 진행하려” 합니다. 물론 “안전 문제, 익숙하지 않음도 있겠지만, 핵심은 우리 각자가 얼마나 영적 본질을 붙잡고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여기에 따라 교회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말씀과 기도의 본질을 붙잡고 미래를 준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선한 손을 통해 이번 한주는 물론 항상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